▲ 화승총을 겨누는 아이. 비록 실탄 대신 화약만 넣었을 뿐이지만 자세가 사뭇 진지하다. | ||
화승총을 마주한 아이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며 연신 질문을 해댄다. 그러나 ‘탕’ 하는 소리가 고막을 찢듯 울리며 사방으로 퍼지자 종전의 태도는 온데간데없고 초롱초롱 신기한 눈빛으로 변했다. 1백 년 전까지만 해도 조상들이 전투에 사용했던 화승총과 각궁 등 무기를 체험해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현장, 춘천 의병체험마을로 한번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강원도 춘천시 남면 가정리는 의병의 고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의암 유인석, 외당 유홍석을 비롯해 여성 의병 윤희순 등 구한말의 수많은 의병들이 이곳에서 나거나 본거지로 활동했다. 이곳에 ‘의병체험마을’이 들어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의병체험마을은 나라를 위해 기꺼이 일어난 의병들의 기상을 기리며, 체험객들에게 나라사랑 마음을 심어주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놓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 자연 몸은 움츠려드는 법. 그러나 의병체험마을에선 귓불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칼바람도 아이들의 손발을 붙잡아 두지는 못한다. 활쏘기, 총쏘기, 감자 구워먹기 등 한바탕 놀다보면 어느새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이 송송 맺혀 있다. 어른들이라고 다를까. 굴렁쇠 굴리기, 널뛰기 등 추억의 놀이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의병체험마을에 입소하게 되면 누구나 ‘호패’를 허리춤에 차고 다녀야 한다. 조선시대 16세 이상의 남성이면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했던 호패. 다만 이곳에서는 착용에 남녀 구분이 없다.
호패는 자신이 직접 만들어야 한다. 재료는 미리 준비돼 있다. 가로 3cm, 세로 7cm 정도 크기의 작은 나무판자와 실, 조각칼, 연필 등이 재료의 전부. 이름과 나이, 전화번호를 비롯해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특징들을 적어 넣으면 된다. 이곳에서 호패를 만드는 이유는 단지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한번쯤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호패를 찬 순간부터 체험객들은 의병마을의 ‘정식 의병’이 된다. 의병이라면 당연히 무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뤄야 할 터. 자연스럽게 무기교육과 체험이 이루어진다. 사극에서나 봤던 전통 활과 화승총. 신기할 수밖에 없다.
▲ 오늘날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호패를 만드는 체험객의 모습. | ||
양궁의 과녁이 30~90m 거리에 있는 반면 국궁의 과녁은 1백45m 거리에 놓인다. 초보자들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에 사정을 고려해 가까운 곳에 과녁을 설치한 것.
체험객들의 대부분은 국궁을 처음 만져보는 이들이다. 활뿐 아니라 화살까지 모든 게 생소하다. 그러나 활과 친해지기까지는 채 1분도 걸리지 않는다. 시범자로 나선 의병마을 남귀우 사무국장이 어깨까지 시위를 당겨 과녁을 명중시키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고 다들 해보겠다며 난리다.
그러나 초보자에게 국궁은 무리. 체험객들에게는 물소뿔과 소힘줄, 대나무, 뽕나무, 벚나무껍질, 민어부레풀 등을 이용해 만든 각궁이 아니라, 시위를 당기기 쉬운 개량형 활이 제공된다.
“과녁을 마주보고 선 다음 활을 쥔 엄지손가락 위에 화살을 올리고 시위를 어깨까지 힘껏 당기세요.”
체험객들은 서툴지만 진지하게 따라한다. 잠시 후 과녁을 향해 일제히 날아가는 화살들. 일부는 명중이지만 또 일부는 훌쩍 과녁을 넘기거나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시위를 겨누는 체험객들. 자세만 보면 구한말 의병이 따로 없다.
화승총 체험은 안전을 위해 실탄 없이 진행된다. 그러나 공포탄을 써 효과음은 그대로다. 화승총은 화약과 탄환을 총신 내에 장전한 다음, 불이 붙어 있는 화승을 화약에 점화시켜 탄환을 발사하는 원리.
핵무기가 나온 지 50년이 넘고 레이저무기도 곧 나올 것이라는 지금 화승총은 골동품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쏟아지는 질문도 대부분 “진짜 총이냐?”는 식이다. 그러나 엄연히 의병들이 사용했던 무기. 단 비가 억수로 퍼부었던 어느 날인가 전투에서 화승이 비에 젖는 바람에 총을 쏠 수 없어 대패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벌써 의병이 다 된 것일까. 씁쓸하지만 재미있는 이 이야기에 웃음을 터뜨리는 이는 하나도 없다.
의병체험마을에는 무기체험 말고도 색다른 재미가 있다. 얼굴에 숯검정이 묻는 것을 신경 쓰다가는 놓치고 말 ‘감자 구워먹기’의 재미가 쏠쏠하다. 활쏘기 체험장 옆 공터에서 불을 피워 은박지에 싼 감자를 구워먹는데 그 맛이 꿀맛이다. 기다림을 참지 못해 중간에 꺼낸 감자는 속이 덜 익었지만 그 또한 별미라며 맛있게 먹는다.
▲ 춘천 가정리의 대표적인 의병인 유인석 장군을 기리는 묘역과 기념관(위), 아래 사진은 감자를 구워 먹는 모습. 뜨거운 감자를 호호 불며 먹다보면 어느새 추위는 멀리 달아난다. | ||
체험마을에서는 그 외에도 널뛰기와 굴렁쇠 굴리기, 투호 등 전통놀이체험이 가능하다. 마당 한켠에 널을 비롯해 모든 장비가 준비돼 있다. 또한 천연염색, 의병캐릭터 목판인쇄, 솟대 만들기 등의 과정도 준비돼 있는데 당일체험부터 2박3일까지 체험일수별로 프로그램이 다르다. 숙박은 마을에 마련된 세 동의 별채를 이용하게 된다. 수용가능 인원은 대략 1백 명 정도. 체험마을 확장을 통해 숙소와 체험공간도 더 늘릴 계획이다.
[여행 안내]
★문의: 춘천의병마을
(http://www.loyaltroops.or.kr) 033-263-8903
★숙식/비용: 숙박 1인 5천원(성인 8천원), 식사 1식 3천원(성인 4천원), 프로그램 참가비 1인당 5천원. 예약은 필수.
★가는 길: 경춘국도→강촌검문소→강촌 입구→창촌농공단지→가정리방향→소주고개 넘어 우회전→남면사무소 방향 직진→유인석 장군 묘역 우측에 의병마을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