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개에 휩싸인 장계교 일대의 새벽 풍경. 동틀 무렵 금빛으로 변하는 환상적 풍경.(맨 아래 사진) | ||
충북 옥천군 안내면 장계리는 대청호 동북단에 자리한 마을이다. 대청호는 전북 진안에서 발원한 금강이 금산·영동·옥천을 두루 흐르다 모이는 곳.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 큰 호수로 1980년 완공되었다. 장계리는 바로 그 대청호의 초입에 있다. 옥천나들목에서 37번 국도를 타고 15분쯤 달리면 장계리에 닿는다.
장계리는 요즘 안개가 환상이다. 평소에도 일교차가 큰 지역특성상 안개의 발생빈도가 높은데, 요즘은 특히 비 내린 다음 날 맑으면 거의 안개가 낀다. 이곳의 안개는 여타 육지의 안개와는 그 농도부터 다르다. 풀풀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뭉쳐 있으며 내리 눌려 있다. 마치 먹구름처럼 보이기까지 할 정도다.
부지런한 안개는 신새벽부터 눈치를 살피며 해가 뜨기만을 기다린다. 강물 위를 스멀스멀 기어가듯 하던 안개는 아직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해가 떠오르자 그 별것 아니었던 녀석이 갑자기 몸집을 거대하게 불리기 시작한다. 강물의 습기와 어제 내린 빗물의 습기, 대기 중의 습기까지 모두 빨아들이는 놀라운 식성을 과시한다.
장계리의 안개는 ‘괴물’로 변하기 직전, 가장 아름다운 한때를 선보인다. 막 동쪽 산기슭에서 올라온 태양과 치열한 기싸움을 벌일 때다. 강물 표면에서부터 올라온 안개가 태양을 가리면서 싸움이 벌어진다. 안개는 태양을 집어삼키고야 말겠다는 듯 달려들고, 태양은 그에 질 수 없다는 듯 강렬한 빛을 내뿜는다. 싸움은 약 5분간 지속된다. 그 동안 강물은 황금빛을 토하며 부서지고, 하늘은 파란 몸을 무시로 드러냈다 감춘다.
그러나 태양은 결국 안개의 힘을 이기지 못 하고 스러진다. 그리고 이내 안개의 횡포가 시작된다. 길이 200m 정도 되는 장계교를 순식간에 지워버리고, 산이며 강이며 하늘도 삼켜버린다. 남아 있는 것은 안개뿐이다.
기세가 오른 안개의 ‘독재’는 2시간 가까이 계속된다. 태양이 하늘로 제법 오르기 전까지 전혀 힘을 쓰지 못 하기 때문이다. 7시를 넘기면서 그나마 안개가 결계를 살짝 풀면서 장계교 일대의 풍경이 조금씩 존재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 때쯤이면 다리 위를 달리는 자동차와 확연히 구별되는 모터보트의 엔진음이 들린다. 장계리 어부들이 고기잡이에 나선 것이다.
어부들은 날씨와 관계없이 늘 이 시간이면 전날 던져 놓았던 그물을 거둬들이기 위해 장계교 아래로 나온다. 이 일대는 팔뚝만 한 붕어, 쏘가리, 메기가 그물을 당길 때마다 넘치도록 올라오는 황금어장이다. 어부들이 강에 등장하면 덩달아 황새들도 바빠진다. 어부들로부터 물고기를 얻어먹기 위해서다. 어부들은 고기잡이가 끝나면 황새들을 항상 챙긴다. 평소보다 덜 잡히든 많이 잡히든 항상 황새들을 위해 잡은 물고기를 넉넉히 강변에 던져두는 것이다. 어부의 고기잡이가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주변에서 유영하던 황새들은 물고기를 던지기가 무섭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채 간다. 공존공생의 현장이다.
이 멋진 풍광의 장계다리 일대는 1986년 이미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이곳에는 향토전시관과 놀이시설 등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장계관광지는 그간 사람들의 관심을 그다지 받지 못해 왔다. 사람들에게 어필할 장계관광지만의 특별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 장계관광지 내에 있는 카페, 정지용의 시 제목을 이름으로 달았다.(위 사진)정지용의 다양한 시들이 담벼락이며 건물 외벽에 그려진 장계관광지.(아래 사진) | ||
장계관광지 앞에는 향수의 구절을 간판 아래 새겨 넣은 ‘정원식당’, ‘강촌식당’, ‘대전식당’ 등이 있는데, 그중 ‘나무그늘식당’은 정지용 시 ‘피리’ 속에 등장하는 시어를 상호로 채택했다. 이 식당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장계관광지가 나온다. 이곳은 정지용이 꿈꿨던 ‘멋진 신세계’를 모티브로 꾸며질 예정인데 현재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 달이 가기 전에 완성된 멋진 신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정지용 시 중 하나인 ‘카페프란스’와 ‘모단가게’를 비롯해 ‘일곱걸음 산책로’ 등이 완성되었다.
카페프란스는 말 그대로 카페다. 멋진 신세계를 찾은 사람들이 쉬며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 그 옆에 있는 모단가게는 정지용과 관련된 아트상품과 지역특산품을 파는 곳이다. 모단가게에서는 국내 시인들의 시집을 모두 볼 수 있는 시집도서관이 들어서 있다. 시가 나오는 라디오방송국도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일곱걸음 산책로는 모단가게 아래에 있다. 시구를 써 넣은 낡은 벤치가 특히 마음에 드는 길이다.
한편, 장계 주변에는 둘러볼 곳들이 꽤 있다. 장계에서 37번 국도를 따라 보은 방면으로 조금 가다보면 도이리에 후율당이 나오고, 장계 동남쪽 안남면으로 건너가면 둔주봉과 독락정, 옥천지석묘 등이 있다.
후율당은 조선 중기의 의병장인 조헌이 옥천에 낙향해 살 때 지은 건물이다. 후율은 율곡 이이의 뒤(後)를 잇는다는 의미로 지은 조헌의 호다. 조헌은 임진왜란 때 후율당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를 수복하고, 금산싸움에서 순국했다.
독락정은 선조 때 주몽득이란 이가 지은 정자다. 한때 이곳은 서원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자가 앉아 있는 자리가 천혜절경이다. 뒤쪽으로 기암절벽이 버티고 있고, 앞으로는 금강이 유유히 흐른다.
둔주봉은 금강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곳이다. 안남면 초등학교 옆길로 오를 수 있다. 약 30분이면 족한 산길이다. 꼭대기에 정자가 설치돼 있다. 이곳은 금강 최고의 전망대다. 금강이 굽이쳐 흐르며 잉태한 한반도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
둔주봉에서 강 건너 보이는 동이면에는 지석묘가 있다. 청동기시대 것으로 탁자식 지석묘다. 원래는 대청댐 수몰지역에 있었던 것을 198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먹거리: 장계관광지 맞은편에 강을 따라 도는 길이 하나 있다. 이 길을 타고 2~3분쯤 가면 ‘뿌리깊은나무’(043-731-0567)라는 음식점이 나온다. 대청호반을 내려다보는 전망 좋은 집이다. 한방오리탕(3만 5000원), 붕어찜(2만 5000원), 메밀해물전(1만 원), 양반장국밥(5000원) 등의 메뉴가 있다.
★잠자리: 장계교를 넘어 조금 들어가면 현리가 나오는데, 이곳에 신촌한울마을(043-732-6000)이 있다. 농촌테마마을로 민박을 놓는다. 국도를 따라서 조금 더 가면 숲속파크(043-733-3906) 모텔도 있다.
★문의: 옥천군문화공보실 043-730-3081~4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