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노회찬 대표, 정세균 대표, 유시민 전 장관 | ||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지난 2월 23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앞서 지난 2월 18일 광주시의회가 경찰 150명을 동원해 2인 선거구제 분할을 반대하는 시민단체 관계자 등 50명을 강제로 해산한 뒤 본회의를 열어 관련 조례안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민주당을 맹성토한 것이다. 노 대표는 민주당이 장악한 호남권 기초의회가 기존 3∼4인을 뽑는 기초의원 선거구 정수를 2인으로 줄임으로써 진보신당 같은 군소정당의 설 자리를 봉쇄해버린 데 대해 배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야권 선거연대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과 ‘1 대 1 구도’를 만들어 진보진영에 의한 지방권력 교체를 이루자는 공감대에서 시작된 선거연대 논의가 ‘지역 패권’ 논란과 연대 방법론을 둘러싼 이견으로 무산될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야권은 지난 2월 16일 ‘2010 지방선거 공동승리를 위한 야5당 협상회의’란 공식 선거연대 협상기구를 발족했다. 이 협의체는 산하에 ‘야5당 정책연합위원회’를 두고 선거정책 연대 및 지방공동정부 운영방식을 검토키로 하는 등 출범 때까지만 해도 상당한 팀워크를 자랑했다. 물론 민주당에 대한 군소4당의 경계는 여전했지만, 합의문에 “각 선거에서 어느 일방이 독점하는 게 아니다”는 문구를 명문화한 만큼 민주당의 과도한 지분 챙기기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광주 파동’이 벌어지면서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안이한 상황인식’이 군소4당을 더욱 자극하는 결과를 낳았다. 정 대표는 지난 2월 23일 광주를 찾은 자리에서 “당 대표로서 유감의 뜻을 표해야 할 만큼 불미스러운 일이었다. 중앙당 차원에서 지방의회에 그런 지시를 한 적은 없다”며 ‘유감’을 나타내면서도 구체적인 시정 조치를 약속하지는 않았다.
이에 군소4당의 광주시당이 일제히 ‘민주당 심판’을 내걸고 ‘호남 일당독재’에 맞서 민주당 후보와 ‘1 대 1’로 승부를 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은 비상이 걸렸다. 부랴부랴 광주시의회 사태와 관련, 전북과 광주 등 선거구가 쪼개진 호남 일부 지역에 후보자를 내지 않는 ‘무공천 카드’로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우상호 대변인은 “중앙당에서 지방의회 차원의 결정에 간섭할 수 있는 실제적인 권한이 없다”며 “무공천을 하면 이들 4당이 기초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만큼 선거구 정수 조정에 따른 피해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사태 진화에 주력했다.
사단은 다른 곳에서도 터졌다. ‘지분공천론’을 둘러싸고 민주당과 참여당의 내재된 갈등이 곪아터진 것이다. 참여당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한 라디오 시사프로에 출연해 “광역후보는 경쟁력 위주로 단일화하고, 기초단체장 등은 정당별 국민지지를 감안해 단일후보를 숫자로 나누면 된다”고 말한 게 도화선이 됐다.
민주당은 즉각 “드디어 유시민이 본색을 드러냈다”고 집중 성토했다. 송영길 최고위원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서울시장 자리를 놓고 한명숙 전 총리와 신경전을 벌이며 지분협상을 하는 행위는 ‘노무현 정신’과 거리가 먼 것”이라고 비판했고, 박주선 최고위원도 “정부 심판에 적합한 후보로 단일화해야지 지분 나눠 먹자는 게 무슨 통합인가”라며 참여당을 ‘민주당의 기생정당’이라고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이 같은 민주당의 민감한 반응은 ‘유시민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서 기인했다는 지적이다. 2003년 유 전 장관이 이끌던 개혁당이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서 최고의결기구인 중앙위 지분 20%를 확보했던 ‘수법’을 다시 써먹고 있다는 인식인 셈이다. 실제 민주당 내부에선 참여당을 여전히 ‘유시민 사당’, ‘제2의 개혁당’으로 받아들이는 기류가 강하다.
이에 대해 참여당 양순필 대변인은 “유 전 장관의 주장은 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 후보 조정이 야권 선거연대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없으니 이를 핑계로 (민주당이) 연대를 거부하고 방해하지 말라는 뜻”이라며 “괜한 트집을 잡아 자신들의 허물을 감추려는 비겁한 행동”이라고 반박했다.
한 술 더 떠 민주당은 당 내부 ‘교통정리’도 쉽지가 않다. 최근 복당한 정동영 의원이 정 대표와 차별화된 ‘연대 방법론’을 들고 나온 것. 정 의원은 현행법상 타 정당 간에는 경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가설정당’(paper party)을 만들어 각 당의 후보를 입당시킨 뒤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야권 단일후보를 뽑고, 선거 후에는 각 후보의 지지율을 기초로 지방연립정부를 구성하자고 주장했다. 1인 8표를 행사해야 하는 지방선거에서 각 당별 기호에 따른 유권자 혼란을 막기 위해선 선거승리를 위한 ‘1회용 정당’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에서다. 정 의원은 이를 ‘지지자연합정당’으로 명명하며 “승리를 위해 1 대 1 구도를 만들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시민공천배심원제’라는 ‘공인된’ 연대 방법론을 꺼내든 주류 측 입장에선 정 의원의 주장에 “백의종군하겠다는 사람이 할 얘기가 아니다”(민주당 핵심관계자)며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한 당직자는 “이미 야5당 공식협상에서 폐기된 내용이고 정당정치의 희화화라는 비판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일축했다.
이처럼 선거연대 논의가 야5당의 판이한 상황인식으로 진척을 보이지 못하면서 “끝내 ‘일(한나라당) 대 다자’로 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선거연대 협상기구에 참여하고 있는 한 인사는 “내부에서도 회의감이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지방선거 패배는 2012년 대선 패배로 이어져 진보진영 전체의 공멸을 불러올 게 뻔해 결국은 극적인 합의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wonb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