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에는 이 전 총재가 얼마 전 미국에서 귀국했던 이유가 이와 무관치 않으며, 이 전 총재의 일부 측근을 중심으로 ‘친창 계열’인 서청원 대표 등의 ‘대안 후보’를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치 불개입을 선언한 이 전 총재가 실제 이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측근들이 ‘악용’하고 있는지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측근 그룹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은 다양하게 포착되고 있다.
최병렬 비토론은 이 전 총재의 측근 모임인 ‘함덕회’의 출범으로부터 발화됐다. 함덕회란 양정규 의원의 지역구(북제주)에 있는 해수욕장의 이름. 올해 초 그곳에서 골프회동을 한 데서 유래됐다. 초청자인 양정규 의원을 비롯, 정창화 김종하 김기배 유흥수 목요상 하순봉 최돈웅 의원 등 중진 8인방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서울에서 한 차례 만남을 더 가지면서 이 전 총재의 중진급 측근들의 최대모임으로 부상했다.
‘최병렬 비토론’은 이 중 이 전 총재의 핵심 3인방으로 꼽히는 양정규 하순봉 김기배 의원 등에 의해 주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해 최병렬 의원으로부터 ‘측근정치의 원흉’으로 지목받고 대립했던 구원을 안고 있다.
지난해 3월 최 의원은 공개적으로 “당내 비공식라인 문제로 많은 사람이 아웃사이더 같은 심리를 느끼고 있다”면서 “이 총재와 가까운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여러 가지로 조심해야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당시 하순봉 의원은 “최 부총재야말로 이 총재와 자주 대화하고 당무에 깊이 관여한 사람이 아니냐”면서 “말이 말같지 않아 대꾸를 하지 않지만 참으로 비겁한 짓”이라고 맹비난하는 등 최 의원과 3인방은 극한으로 대립했다. 당시 사석에선 3인방이 최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최 의원은 곧이어 지난해 5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경선에 참여, 이 전 총재에게 “노풍을 잠재울 수 없는 사람”이라고 공격하며 또 한 번 대립각을 세웠다. 경선에선 이회창 후보 1만7천4백81표(득표율 68%), 최병렬 후보 4천6백94표(18.3%)로 이 전 총재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지만 두 사람은 다소 불편한 관계를 맺었다.
▲ 한나라당 대표직에 도전장을 던진 최병렬 의원에게 이 전 총재 측근인사들의 ‘딴죽’이 적지 않은 위협이 되고 있다. 지난해 한 행사에 참석, 나란히 앉은 두 사람 표정이 어색 하다. | ||
우선 이 전 총재의 일부 측근들이 최 의원의 대표 당선을 꺼리는 현실적 이유는 내년 총선 전 단행될 대규모 물갈이 부담이 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 의원의 깐깐한 성격과 그동안의 스타일, 과거 관계 등을 볼 때 이 전 총재 측근들의 입지 축소는 불가피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 의원 주변에서 장점으로 거론되는 카리스마와 독자적 생존능력 등이 거꾸로 이 전 총재 측근들에게는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전 총재 측근들 사이에서는 “최틀러(최 의원의 별명)가 당을 잡으면 우린 다 죽는다”는 말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최병렬 비토론의 또 다른 이유로 이 전 총재의 복귀 가능성이 꼽히고 있다. 지난 3월16일 다시 미국으로 떠난 이 전 총재는 어떤 형태로든 정계 복귀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 전 총재의 귀국 첫 일정이 대구 방문이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정계복귀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 전 총재가 당 총재 등으로 전면에 복귀하긴 힘들겠지만 당 고문 등으로 복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전망은 많은 편이다.
이 전 총재의 정계복귀를 두고 측근 중에도 찬반양론이 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대론자 중에도 ‘막상 복귀를 하겠다고 한다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측근들은 이 전 총재가 내년 총선에 전국 지원유세를 해주길 원하고 있으며, 영남권을 중심으로 이 같은 여론이 퍼지고 있는 중이다.
이 전 총재의 일부 측근들은 어떤 형태로든 복귀가 이뤄질 경우 최 의원이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 의원이 대표로 있을 경우 이 전 총재의 복귀 가능성이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최 의원 비토를 위해 이 전 총재의 몇몇 측근들은 서청원 대표나 강삼재 의원 카드를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다. 서 대표는 스스로 “다시 대표 출마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 입지를 좁혀놓은 상태지만 최근 출마 의지를 굳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 대표측은 출마시 명분으로 “당초 임시관리 지도부가 형성될 줄 알았는데, 당원 직선으로 힘있는 대표가 뽑힌다면 출마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다수의 의원들이 출마를 권유하고 있다는 현실적 이유만큼 출마의 강력한 명분은 없다. 재기하려는 서 대표와 ‘상대하기 편한’ 대표를 원하는 이 전 총재 측근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강삼재 카드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또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관측이다.
물론 이 전 총재의 모든 측근들이 최 의원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전 총재의 중진급 측근이 최 의원을 비토하고 있다면, 하부 측근들은 최의원 캠프에 들어가는 등 이분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최 의원 지지 그룹은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할 수 있는 위기관리능력과 지도력, 현실적 대안부재 등을 들어 최 의원을 거론하고 있다. 최 의원 본인도 대권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당을 위기에서 구하겠다는 ‘인큐베이터론’을 전개하며 광범위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최 의원은 현재 부산·경남 의원들과 서울의 일부 의원들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하순봉 의원 등 부산·경남 의원들 가운데도 이 전 총재의 영향력이 존재하고 있으며, 서 대표가 출마하면 수도권 표가 양분된다는 점에서 최 의원에게 커다란 위협요인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나라당 내 만년 2인자였던 최 의원이 이 전 총재 측근들의 의도대로 ‘창 빠진’ 한나라당에서 또다시 대표행이 가로막혀 2인자에 머물게 될지 주목된다. 김영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