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일 SBS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 일곱입니다’의 촬영 스태프가 자택에서 사망해 과로사 논란이 불거졌다. 사진=SBS 제공
전국언론노동조합에 따르면 사망한 스태프는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5일 동안 야외에서 76시간 동안 일했다. 휴게시간을 제외한다면 약 64시간가량을 일했다고 한다. 고용노동부의 만성과로 인정 노동시간은 주 60시간이다.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스태프 사망 사건으로 드라마 제작 현장의 살인적인 노동 강도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tvN 드라마 ‘아는 와이프’는 현장 스태프들이 직접 편지를 써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측에 전달하기도 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2016년 tvN 드라마 ‘혼술남녀’ 촬영 중, 열악한 방송 제작 환경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한빛 PD의 유지를 잇기 위해 설립됐다.
이 스태프는 “제작부의 갑질에 아무 말도 못하는 (우리는) 염전 노예보다 못한 존재인가”라며 “열정 페이다, 열정의 값이다, 나의 작품이다 했지만 남는 것 돌아오는 것은 쏟아지는 코피와 피로 누적, 잃어가는 건강, 멀어지는 가족들”이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제작사 측은 “스태프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별도의 휴식 공간을 마련하지 못했을 뿐”이라며 “제보(편지)가 있던 그 시기에만 5일 정도 무리한 촬영이 있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지는 폭로는 MBC 드라마 ‘숨바꼭질’ 스태프였다. 이들은 “촬영이 진행된 기간 동안 하루 평균 18시간 이상의 장시간 촬영을 하고 있다. 7월 30~31일, 8월 14~15일 2일 동안에는 40시간이 넘는 촬영을 했다. 모든 스태프들이 고통 받고 있다”고 폭로했다. 사실 관계를 파악한 MBC 측이 “주 68시간 근무시간 제한을 준수하기 위해 인원을 충원, 제작팀을 A팀과 B팀으로 나눠 운영하겠다”는 개선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OCN ‘플레이어’, JTBC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tvN ‘나인룸’ 등에서도 폭로가 이어졌다. 특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의 경우는 주 68시간 체제 도입 후 근무일수가 줄어 급여도 줄었지만, 1회 노동 시간은 여전히 20시간 가까이 유지됐다는 지적이 일었다. 일급제인 근로계약의 허점을 이용해 노동은 그대로 혹은 그 이상을 요구했지만 정당한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꼼수였다는 이야기다. JTBC 역시 앞선 방송사들과 마찬가지로 개선 방침을 밝혀왔지만 방송 제작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단순한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체계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도돌이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방송 제작 현장의 노동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JTBC 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제작 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사진=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제공
한빛미디어센터는 이와 관련해 “드라마 제작 노동자들의 ‘노예노동’은 대부분의 드라마 제작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센터는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에게 “현재 드라마 스태프는 업무 위탁 계약을 맺고 있어 근로자로 볼 수 없으며 근로기준법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드라마의 경우 제작사와 제작 스태프들이 근로시간에 대한 기준 없이 총액, 회당으로 임금 계약을 체결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표준업무위탁계약서를 체결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법률상 분쟁 해결은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한국저작권위원회 등의 조정에 따르도록 돼 있어 근로기준법에 따른 보호가 배제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드라마 제작 스태프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드라마 제작에서 스태프들의 경우는 외주의 외주로 계약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계약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서 만일 스태프에게 불리한 내용이 포함되거나 이후 법적인 문제가 불거졌을 때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도 애매해진다”라며 “현장에서 일반 스태프의 안전사고 같은 게 발생했을 때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최근 변화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는 창이 많이 생겼다는 장점이 있다”고 짚기도 했다. 그는 “예전에는 예능이든 드라마든 방송 촬영은 당연히 밤샘, 스태프들의 식사나 휴식 시간은 조금 뒤로 미뤄 두고 이어지는 걸 문제로 삼지 않는 분위기였다. 지금도 여전히 나이 드신 분들은 ‘먹을 거 다 먹고, 쉴 거 다 쉬고 언제 찍냐’는 말씀을 하시긴 한다”고 말하면서 “그래도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이 잡힌 상태에서 언론이나 미디어센터 등 단체의 눈치를 안 볼 수도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라도 바뀌고 있지 않나. 그런 점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