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술을 마셨다….
와이셔츠 호주머니를 더듬던 김형진은 빈 담배갑을 구겨 재떨이에 던졌다. 잡지사 사무실 안이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는 멍한 기분을 달래려 손바닥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아내 미영은 술과는 거리가 먼 체질이었다. 짧았던 연애 시절부터 맥주 한 잔 제대로 입에 대지 않았던지라 내심 따분하게 여길 정도였었다.
그런 그녀가 어젯밤은 취한 채 걸음까지 비틀거리며 집에 돌아왔다.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었다. 간만에 친구들과 어울렸던 때문일까. 하지만 아내의 얼굴은 그리 밝은 표정이 아니었다. 혹시 남편들 이야기가 나와서일까. 형진은 아마도 그러리라 추측했다. 권태기에 접어든 그들의 부부관계가 실컷 입방아에 올랐는지도 몰랐다.
한숨을 내쉰 그는 담배를 찾을 요량으로 몸을 일으켰다. 책상 위의 전화기가 울린 것은 그때였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김 기자님? 저 궁도(宮島)의 닥터 최입니다.”
닥터 최. 궁도 정신병원의 젊은 의사. 형진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아 예.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습니까?”
“하하, 덕분에요. 기사 아주 잘 읽었습니다. 외진 섬인 탓에 오늘 항구에 나와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셨습니까? 모두 닥터 최 덕분이었습니다.”
“뭘요, 저야말로 재미있었는데요. 그건 그렇고…. 김 기자님께서도 궁금해하실 것 같아 전화 드렸습니다. 혹시 소식 들으셨습니까? 여기 궁도에 뉴스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뉴스거리요?”
“네. 실은 다름 아니라 그 왜, 김 기자님이 떠나시기 전날 시체로 발견됐던 강 마담 있잖습니까? 그 여자 얘깁니다.”
강 마담? 형진은 슬그머니 의자에 엉덩이를 다시 붙였다.
“저도 오늘 아침에야 들었습니다만, 강 마담의 사인이 자살이 아닌 타살로 결론났답니다. 시신에 교살(絞殺)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는군요.”
“그래요? 교살이라면…?”
“간단히 말해 누구한테 목 졸려 살해당했다는 뜻이지요. 게다가 한 가지 더 재미난 사실이 있습니다. 혹시 김 기자님은 그날 우리가 만났던 오광태라는 친구를 기억하십니까?”
중요한 이야기라는 양 닥터 최는 서두르는 목소리였다. 형진이 대꾸했다.
“오현성 의원의 아들 말씀이죠? 물론입니다.”
“그 친구가 글쎄 실종되었답니다. 그것도 강 마담이 죽은 날을 전후해서 지금껏 행방이 묘연하다고 하네요.”
▲ 그림 최경태 | ||
“뭐 그 친구야 신분이 신분이다 보니 별건 아니겠죠. 전에도 이런 식으로 공부하기 싫다고 도망친 적이 있으니까요. 하여간 워낙 두문불출하던 친구라 이곳 섬에서도 며칠이 지나서야 사라진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한데 이상한 일은…. 그 친구가 배를 타는 걸 아무도 못봤다는 겁니다. 헤엄쳐서 간 것도 아닐 테고, 하늘을 날아간 것도 아닐 텐데 말이지요.”
닥터 최는 마지막으로 그런 설명을 덧붙이고 있었다. 형진은 전화를 끊으며 잠시 골똘해지기 시작했다. 설마-그러면서도 기자로서의 본능이 조금씩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43>
강남 한복판에 있는 그 오피스텔은 그저 그런 평범한 오피스텔과는 한참 달랐다. 욕실과 화장실이 두 군데나 딸린 그곳은 웬만한 아파트보다 더 크고, 더 호화로운 크기였다.
오광태는 훤한 대낮임에도 그곳 오피스텔의 거실 안에 머물고 있었다. 한쪽 벽면을 채운 대형 유리창을 통해 주위의 건물들이 한 눈에 바라보이고 있었다.
“아아, 오빠!”
그의 허리 아래에서 여자가 달뜬 신음을 헐떡였다. 함연주였다. 그녀가 토해낸 숨결로 인해 유리창에 하얀 김이 서리고 있었다. 그는 서 있었고, 그녀는 다리를 쭉 뻗은 채 그의 앞에 기묘한 자세로 엎드려 있었다.
함연주는 마치 포르노 영화에 나오는 여배우 같은 옷차림이었다. 그녀의 풍만한 나신에 걸쳐진 것이라고는 허벅지까지 올라간 밴드스타킹과 허리에 두른 가터벨트가 전부였다.
벌거벗고 있기는 오광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창가에 우뚝 선 채 거만한 눈초리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뽀얀 수밀도처럼 갈라진 한 쌍의 반구가 쿵쿵 부딪쳐 오고 있었다. 움직이고 있는 것은 그가 아니었다. 함연주가 가려진 것 하나없이 드러난 자신의 엉덩이 뒤쪽을 스스로 그의 하복부에 격렬히 밀어붙이고 있었다.
오광태가 말했다.
“여자애들은?”
“데려올게, 오빠가 원하면 언제든지 데려올게…!”
유리창을 짚은 함연주의 손이 긴 자국을 그리며 미끄러졌다. 그러나 피스톤처럼 왕복하는 몸짓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등 뒤를 돌아보며 그녀가 외쳤다.
“오빠 어떻게 된 거야? 정말 옛날하고 너무 달라, 섬에서 여자랑 이것만 한 것 같아!”
따져묻는 그 목소리는 물론 감탄사였다. 오광태의 입술이 히죽 말아올려졌다. 함연주는 자신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 듯했다. 아니 알고 있더라도 쾌감에 압도당한 나머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뻥 뚫린 유리창을 마주하고 있었다. 건너편 빌딩의 창문에는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벌거벗은 두 사람의 몸뚱아리가 얼마든 적나라하게 들여다보이는 위치였다.
벌레가 된 함연주는 그런 장면을 연출하는 데에도 하등 거부가 없었다. 오히려 한층 광분하고 있었다. 함연주의 둔부가 연신 수축을 반복해댔다. 땀에 젖은 두 사람의 살결 사이에서 철썩철썩 낯 뜨거운 소음이 흘러나왔다.
오광태가 고개를 쳐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낄낄낄….’
헉-그는 화들짝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연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낄낄…. 낄낄낄.’
“뭐, 뭐야?”
똑같은 웃음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려퍼진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얼어붙은 오광태는 다급한 음성으로 함연주에게 물었다.
“지금 니가 웃었어? 함연주 니가 웃은 거야?”
그러나 함연주는 엉뚱한 대꾸를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 와중에도 열심히 둔부만 흔들어대는 중이었다.
“몰라, 몰라. 나 지금…, 아…!”
“미, 미친 년! 저리 비켜!”
순식간에 모든 것이 멈춰졌다. 오광태는 걷어차다시피 함연주의 몸뚱아리를 밀쳐냈다. 어머멋, 졸지에 바닥에 나뒹군 그녀에게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갑자기 왜 그래, 오빠?”
절정의 순간을 놓쳐 버린 함연주가 불만족의 항의를 쏘아부쳤다.
“너였지? 방금 전 그 목소리 너 아니야?”
“무슨 얘기야? 어떤 목소리? 나는 아무것도 못 들었어!”
오광태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분명 남자의 웃음소리였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그 환청을 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벌레들의 세상으로 돌아온 이후 한 번도 들린 적이 없었다.
설마? 아니야, 잘못 들었을 거야. 나는 틀림없이 시키는 대로 내 물건을 잘랐어. 그러니까 다시 그 귀신이 나타날 리 없다구!
아직도 아쉬움이 남은 함연주가 그의 하체를 붙잡기 위해 엉금엉금 기어왔지만 오광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욕구가 싹 사라지고 있었다. 욕지거리를 내뱉은 그는 거칠게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자신의 사타구니 쪽으로 끌어당겼다.
<#44>
오광태, 강 마담, 궁도.
그의 머릿속으로 그런 단어들이 연이어 스쳐 지나갔다. 그는 강 마담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벌거벗겨진 작부의 허연 몸뚱아리가 허공에 매달린 채 대롱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사타구니에서 흘러내린 누런 액체가 바닥에 흥건히 고여 지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그런 민망한 상상이 그를 자극하고 있었다.
형진은 거칠게 상체를 움직였다. 침대가 삐걱거렸다.
아내 미영은 오늘도 불이 꺼진 방 안에 누워 있었다. 그의 다그침에 따라 그녀의 나신이 어둠 속에서 야릇하게 출렁이고 있었다. 형진은 아내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다짐했다. 아내는 친구들의 남편과 자신을, 특히 자신과의 잠자리를 비교했었을 게 틀림없었다.
“아….”
작은 탄성이 들려 왔다. 하지만 남편의 기대와 달리 박미영은 여전히 신음소리를 참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항의였다. 형진은 이번에도 똑같은 체위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그 흔한 후배위조차도 그에게는 불경스러운 것 같았다.
왜일까. 그럼에도 그녀는 생각했다. 똑같은 체위, 똑같은 행위였지만 남편은 어쩐지 평소보다 흥분하고 있었다. 마주치는 치골(恥骨)이 아플 정도로 허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설마…. 아닐 거야. 미영은 애써 머리를 흔들었다. 너희 남편도 다른 곳에 정력을 쏟고 있을지 모른다는, 그렇기에 아내인 자신에게 더욱 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친구들의 충고 아닌 충고가 자꾸 뇌리를 괴롭히고 있었다.
어쨌든 여행은 그 즈음에서 끝났다. 영문 모를 흥분 탓인지 남편은 도리어 평소보다도 빨리 분출을 맞는 듯했다. 미영의 입술 사이로 긴 한숨소리가 새어나왔다. 김형진이 아내의 오르가슴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바로 그 불만족의 한숨이었다.
<#45>
남자의 자동차는 그 시간까지 아파트 앞에 세워져 있었다. 회색 양복을 입은 그는 이십여 분쯤 전에 목표물 부부의 침실에 불이 꺼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아내가 먼저 퇴근하고 뒤이어 남편이 들어간 지 한 시간만이었다.
의무방어전인가 보군, 남자는 미소를 피식거렸다. 슬슬 철수할 시간이었다. 차의 시동을 걸 무렵 문득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네, 접니다.”
번호를 확인한 남자는 나지막히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 역시 조용한 톤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 사람을 데려오게.”
“남자 쪽 말씀이십니까?”
“그래. 회장님이 얘기하셨네.”
회장님. 그 호칭에 그는 토를 달지 않았다. 어두운 차 안에서 어두운 목소리들이 오갔다.
“오늘 당장 데려갈까요?”
“아니, 내일 오전으로 하세. 회장님께서 직접 만나겠다고 하시니 예의바르게 모셔 오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통화는 짧았다. 아무런 표정 변화없이 통화를 마친 회색 양복의 남자가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