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태, 오광태…. 그 친구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형사들이 오광태의 행적을 뒤쫓고 있는 그 시각, 김형진은 잡지사 계단을 오르며 혼잣말을 읊조리고 있었다. 막막한 심정이었다. 이틀째 이어지는 고민이었지만 뚜렷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아니 설사 오광태를 찾아낸다 해도 그가 뭘 어째야 하는 것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다가온 잡지사 안은 비교적 한산했다. 골똘히 사무실에 들어서는 형진을 향해 부장이 손짓을 하고 있었다.
“네, 부장님.”
“지난번에 맡긴 S양 사건은 어떻게 됐어, 김 기자? 그 섹스하다가 미쳐 버렸다는 여자 탤런트 말이야.”
“그게 좀…. 워낙 쉬쉬하는 분위기라 아직 별다른 진척이 없습니다.”
형진이 대답을 우물거리자 부장은 당장 눈썹을 찡그려댔다.
“이봐, 오늘이 며칠짼데 아직도 그 모양이야? 그런 기사는 타이밍이 생명이란 거 몰라?”
으르렁거리는 힐난에 형진은 입을 열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이 다른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을 부장은 알 턱이 없었다. 그때였다. 동료 기자 하나가 호들갑스레 그들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부장님, 드디어 구했습니다!”
“뭐? 구했어?”
부장이 기다렸다는 듯 벌떡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지? 형진은 머쓱한 표정으로 동료 기자를 쳐다보았다. 그 동료는 며칠 전 그가 재벌집 며느리 사건을 물었던, 오광태가 나타난 N호텔로 취재를 다녀왔다는 바로 그 기자였다.
“여길 보십쇼. 테이프는 절대 안된다길래 복사할 수 없었지만 대신에 사진을 뽑아 왔습니다.”
“잘했네. 다른 잡지사들도 이걸 구하느라 난리였을 텐데 정말 잘했어!”
동료 기자는 부장의 책상에 흑백 사진 여러 장을 늘어놓고 있었다. 양탄자가 깔린 어느 건물의 복도가 줄줄이 찍힌 사진들이었다.
형진은 그제야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사진들은 가장자리마다 조그맣게 시간과 날짜가 적혀 있었다. N호텔이었다. 그들은 호텔 내부에 설치된 보안 카메라의 화면을 빼내 온 모양이었다.
“화질도 상당히 선명합니다. 여기 그 여자가 있습니다.”
동료 기자가 의기양양하게 첫 장을 가리켰다. 화려하게 원피스를 차려입은 늘씬한 여자의 모습이었다. 문제의 그 재벌집 며느리인 듯했다.
그러자 형진의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기 시작했다. 그랬다. 여자가 있으니 남자도 찍혀 있을 게 틀림없었다. 만약 그의 의심이 맞는다면, 그 남자는 오광태일지도 몰랐다. 동료가 다음 사진을 넘기며 말했다.
“그리고 이게 바로 그 남자입니다.”
“그래?”
부장이 사진을 들어올렸다. 형진은 불안한 시선으로 재빨리 그 사진을 흘끔거렸다. 사진에는 미스코리아 출신의 유부녀가 객실 문을 여는 동안 거만한 자세로 기다리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선명하게 나와 있었다.
그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재벌집 며느리 뒤에 선 사내의 옷차림과 체구가 기억에 남아 있는 탓이었다. 그 옷차림은 사진이 찍히기 불과 한두 시간 전 그가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목격했던 사내와 똑같았다. 다시 말해 오광태의 체구와 외모 그대로였다.
하지만 직후 실로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 그림 최경태 | ||
부장의 어이없어하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형진도 동시에 눈을 껌뻑여야 했다. 남자의 얼굴이 찍힌 것은 단 한 장뿐이었다. 그 마지막 사진에서 사내는 마치 그곳에 카메라가 있다는 걸 훤히 안다는 양 고개를 돌린 채 히죽 입꼬리를 말아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놀랍게도 오광태가 아니었다. 눈썹이 짙고 코 끝이 날카로운, 낯선 남자의 얼굴이었다.
“이, 이게 전부야? 이 남자가 맞아?”
“예. 이상하게도 나머지 사진에는 아무것도 찍혀져 있지 않았습니다.”
당황해하는 부장에게 동료 기자가 귀통수를 긁으며 대꾸했다.
“말도 안돼. 저런 재벌집 유부녀와 어울릴 정도라면 보통 남자가 아닐 거 아냐? 하지만 유명인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니고, 우리가 전혀 모르는 얼굴이잖아?”
의아하기는 형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뒷모습과 체구는 분명 오광태였다. 그러나 전혀 다른 얼굴이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어이, 누구 이 남자 얼굴 아는 사람 없어?”
부장이 사진을 치켜들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사무실 사람들의 눈길이 모아졌지만 모두 설레설레 고개를 젓고 있었다.
“젠장! 이래서는 아무 소용도 없어. 안되겠군, 이 사진 복사해서 전부 돌려. 어떻게든 이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내라구!”
사진을 받아들자마자 형진은 다시 한 번 시간을 들여다보았다. 확실히 나이트클럽에서 오광태와 마주쳤던 그 날짜였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섰다. 글쎄다. 왠지 남자의 얼굴이 눈에 익었으나 결국 자신이 잘못 봤으리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 사내가 오광태가 아니라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었다.
형진은 떨떠름히 의자에 앉아 사진을 던졌다. 그 사진이 잔뜩 쌓여 있던 종이더미에 부딪치며 몇 장의 서류가 흩날렸다. 찰라 그의 눈동자가 문득 동그레졌다. 점점 커지더니 아예 휘둥그레졌다.
책상 위에 떨어진 종이들 중 한 곳에 시선이 닿은 때문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이성귀를 취재할 무렵에 조사해 놓은 서류였다. 그리고 그 파일에는 어렵게 구한 이성귀의 사진도 붙어 있었다.
형진의 등허리를 타고 영문 모를 공포가 오싹하게 흘러내렸다. N호텔의 복도에서 찍힌 남자의 얼굴과 30여 년 전 희대의 색마, 이성귀의 얼굴이 너무나 닮아 있었다.
<#87>
내가…, 내가 왜 이러지?
같은 시각 박미영은 교무실에 앉아 넋 나간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녀는 거세게 머리를 흔들어댔다.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몽정처럼 야릇한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남자의 물건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 물건은 남편 형진의 것도, 불륜 상대였던 이혼남의 것도 아니었다. 신화 속에나 등장할 반인반마(半人半馬)의 야수에게 달려 있는, 기괴하고도 거대한 하초(下焦)였다.
미영은 하루종일 그 괴물이 자신을 겁탈하는 상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짐승같이 땅바닥에 엎드려 난잡하게 교접하는 장면들이 심지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시간 도중에까지 불쑥불쑥 그려지고 있었다. 어째서 자꾸 그런 해괴망측한 상상이 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애써 떨쳐내려 할수록 그녀의 상상은 점점 더 또렷해지고 있었다.
점심시간이었다. 교사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비우고 있었지만 미영에게는 식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어젯밤 그이에게 외면당한 탓이야, 그녀는 생각했다. 색녀가 된 듯한 스스로에게 수치심이 느껴졌다. 한 이불을 덮고 자던 남편조차 모르게 치렀던 자위행위-그녀가 자위행위를 한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만약 정말로 그렇게 거대한 물건을 지닌 야수와 수간(獸姦)을 벌인다면 어떻게 될까. 미영의 두 눈이 질끈 감겨졌다. 스타킹에 감싸인 치마 속 허벅지들이 무의식중에 미끌거리며 마찰했다. 그녀가 온 몸을 소스라친 것은 그때였다.
“식사 안하십니까, 박 선생님?”
은밀한 상상을 들키기라도 한 양 미영은 화들짝 표정을 감췄다. 옆 반 담임인 남자 선생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오래 전부터 그녀에게 추근덕거린 그 유부남이었다.
그녀는 뭐라 대답하려 했다. 하지만 이내 훅 숨을 멈춰야 했다. 갑자기 몸 속 어딘가에서 주체할 수 없는 기운이 뜨겁게 밀려 오고 있었다. 깊숙한 곳이 순식간에 축축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미영은 원인 모를 갈증에 마른 침을 삼켰다. 찰라 그녀의 입술은 자신도 모르게 멋대로 달싹이고 있었다.
“저에게…. 저에게 점심 사 주시겠요, 선생님?”
교태 아닌 교태가 섞인 목소리였다. 상대방의 얼굴이 금세 반색을 해댔다. 그녀가 그의 추파를 받아들인 것 또한 처음이었다.
“그, 그러시겠어요? 저야 좋습니다.”
자기가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미영은 깨닫지 못했다. 아니 알더라도 멈춰지지 않았다.
교무실을 나온 두 사람은 학교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그녀는 슬그머니 남자의 팔짱마저 끼었다. 흠칫거리면서도 입이 귀 밑까지 찢어진 유부남은 선뜻 비싸 보이는 일식집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다음시간 수업 없으시죠? 기왕 왔으니 반주 한 잔 하시겠습니까?”
“네, 주세요.”
미영은 대낮부터 술을 마시자는 제안에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다다미방에 단 둘이 마주한 채 맥주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남자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박 선생님, 우울해 보이시는데 무슨 안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물끄러미 상대방의 얼굴을 응시한 그녀가 희미하게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유부남 선생은 여자의 마음을 허물어뜨리는 것이 그 여자의 몸뚱아리를 허물어뜨리는 첩경이라고 믿는 듯했다. 그는 블라우스 속에 가득찬 그녀의 젖가슴을 열심히 흘끔거리는 중이었다.
“혹시 부군 때문이신가요?”
“저희 남편 때문이란 걸…. 어떻게 아시죠?”
“허허, 우리가 뭐 하루이틀 본 사이입니까? 고민 있으시면 저한테 털어놓으십쇼. 박 선생님 말씀이라면 제가 뭐든지….”
그러자 미영의 흐릿해진 눈동자가 묘한 빛으로 반짝였다. 그녀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천천히 식탁 위에 내려놓으며 대꾸했다.
“선생님.”
“네, 말씀하시죠.”
“저라는 여자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유부남 선생의 시선이 휘둥그레졌다.
“솔직히 얘기해주세요. 박미영이라는 유부녀, 한 번 벌거벗겨 보고 싶은 생각 없으세요?”
“그, 그건….”
당혹스러워진 남자는 말문을 더듬었다. 기실 미영은 그런 민망한 이야기를 꺼냈다는 사실에 자신이 먼저 놀라고 있었다. 그저 홀린 듯한 음성만이 몽롱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럼 왜 이러고 계시죠? 시간도 별로 없는데.”
음식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그녀는 서슴없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