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호텔 나이트클럽의 정문 앞-빗방울에 미끄러지는 요란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택시가 멈춰섰다. 김형진은 몇 장인지 세지도 않은 지폐들을 던지며 차에서 뛰어 내렸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는데도 나이트클럽 입구는 적잖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뚫고 무작정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손님, 어디 가십니까?”
“잠깐만요! 잠깐이면 됩니다!”
기도인 듯한 양복 입은 사내가 앞을 가로막았지만 형진은 거세게 뿌리치며 내달렸다. 정 안되면 때려눕히기라도 할 기세였다.
어느덧 9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부디 자신이 늦지 않았기만을 기도했다. 자신에게 영장이 발부됐건 어쨌건 상관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오직 아내에 대한 걱정과 오광태를 막고 싶은 일념뿐이었다.
형진은 홀에 들어서자마자 미친 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쿵쾅거리는 음악소리가 귀를 찢을 것 같았다. 현란한 조명 속에서 수많은 사람의 얼굴들이 번쩍이며 명멸하고 있었다.
누가 누구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부딪쳐 오는 몸뚱아리들을 헤치며 특실 쪽으로 향했다. 뒤따라온 양복쟁이 사내가 다시 한 번 그의 팔을 붙들었다.
“이봐! 당신 지금 뭐하는 거야?”
“오광태, 오광태는 어디 있소? 그놈을 찾아야 해!”
형진은 사내에게 마주 외쳐댔다.
“뭐? 누구?”
“오광태를 찾아야 한다구! 특실, 특실에 있을 거야!”
양복 사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형진은 아예 상대방을 무시하려 했다. 그때였다. 막 특실 복도를 나서는 뒷모습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민망할 정도로 야릇한 망사스타킹과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자였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아내 미영이었다.
“여보! 여보!”
버럭 고함을 지르던 형진은 직후 온 몸을 소스라쳤다. 아내가 아닌, 그녀의 곁에 서 있던 검은 옷의 남자가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오, 오광태!”
형진의 입에서 단말마적인 비명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정통으로 마주쳤다. 마치 농익은 연인 사이라도 되는 듯 미영의 몸을 끌어안은 오광태가 그를 쳐다보며 비웃듯 히죽 입꼬리를 말아올리고 있었다.
아내는 그를 전혀 보지 못했다. 그녀의 몽롱한 얼굴은 이미 뭔가에 홀린 것이 분명했다. 돌아선 그들이 나이트클럽 입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서! 거기 서, 오광태!”
“무슨 일이야? 이 자식 대체 뭐야?”
그러나 뒤쫓으려는 형진의 팔다리가 갑자기 버둥거렸다. 기도와 웨이터들이 그를 붙잡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그가 밖으로 나가려는 것을 제지하는 중이었다.
“놔, 이거 놔!”
형진은 괴성을 지르며 저항했다. 그러자 더 많은 종업원들이 달려왔다.
그는 젖먹던 힘을 다해 사내들을 밀쳐냈다. 하지만 가까스로 정문을 벗어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날렵하게 생긴 은색 스포츠카였다. 웨이터에게 키를 건네받은 오광태와 미영이 그 스포츠카에 나란히 몸을 싣고 있었다.
“안돼! 멈춰!”
불과 십 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였다. 부우웅, 육중한 소음을 낸 자동차가 나이트클럽을 떠나고 있었다. 형진은 두 사람이 사라지는 모습을 코 앞에서 빤히 바라보아야만 했다. 그는 절망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거리에는 택시는커녕 자전거 한 대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의 몸이 길바닥에 털썩 무너져내렸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김형진 기자님이신가요?”
형진은 아연해진 고개를 돌렸다. 화려한 정장에 짙은 색 선글라스를 낀 도도해 보이는 인상의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가 주위를 흘끔거리며 말했다.
“오광태씨를 찾고 계시죠? 저는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어요.”
여자가 누구인지는 물을 필요가 없었다. 형진은 그녀의 목소리가 전화로만 들었던, 바로 그 정체불명의 아가씨라는 것을 당장 알아차렸다. 여자는 그에게 작은 열쇠 하나를 내밀고 있었다.
“이, 이게 뭡니까?”
“그 사람들이 간 곳의 열쇠예요. 강남의 K오피스텔, 1304호로 가 보세요.”
형진은 여자의 얼굴과 열쇠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가 마지막 기회라는 듯 강조했다.
“오광태도 그 여자도 거기에 있을 거예요. 서두르세요.”
뭐라 대꾸하기 위해 형진의 입술이 달싹였지만 여자는 그 말만을 남긴 채 조용히 몸을 돌리고 있었다. 잠시 넋을 잃었던 형진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는 후다닥 쏟아지는 빗속으로 뛰쳐나가 손을 흔들어댔다.
<#120>
10분 뒤, N호텔 나이트클럽 입구에 지프 한 대가 멈춰서며 두 명의 남자가 내렸다. 그들 역시 바쁘게 사람들을 헤치고 다짜고짜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 형진에게 그랬던 것처럼 기도들이 우르르 몰려 왔다.
“뭡니까?”
남자들 중 젊은 쪽이 재빨리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 보였다. 그러자 사내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사람을 찾으려고 왔는데.”
“아, 네. 들어가십시오.”
그들은 남자들의 신분을 확인하자 한결 태도가 공손해졌다. 실실 웃어 보이는 웨이터 하나가 허리를 굽혀댔다.
“누구를 찾으십니까? 안 그래도 방금 전에 소란을 피우던 손님이 한 분 있었습니다만….”
“그래? 이 친구는 아니었나?”
늙수그레한 인상의 남자가 사진을 꺼냈다. 그러나 눈살을 찌푸리며 사진을 들여다본 종업원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이 남자는 아닌데요. 약간 더 나이가 많은 30대였습니다. 혹시 이름이?”
“오광태. 오광태라는 친구 여기 안 왔어?”
그들은 김형진을 찾고 있는 게 아니었다. 웨이터가 지배인 쪽을 흘끔거리며 대꾸했다.
“아뇨. 죄송하지만 그런 손님은 못 봤습니다.”
“확실해?”
늙은 남자가 미심쩍다는 듯 다그쳤다. 젊은 남자의 휴대폰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 네, 네-전화기를 들고 중얼거리던 그가 중년에게 눈짓을 보냈다.
“왜 그래?”
“교통과에서 온 연락입니다, 계장님. 차를 발견했답니다. 스포츠카를요.”
“정말이야? 어디라는데?”
계장님이라 불린 사내가 정색을 해댔다. 그들은 다시 황급히 지프에 올랐다.
▲ 그림 최경태 | ||
박미영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녀의 감각 가운데 확실한 것은 정욕뿐이었다. 남자의 존재만으로도 그녀는 억제할 수 없는 본능에 빠져들고 있었다.
창 밖에 흐르는 빗물이 그녀의 흐릿해진 눈동자에 얼룩처럼 반사되었다. 휘황한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호화롭게 꾸며진 침실 안이었다.
미영의 눈에는 그가 원하는 것만이 보이고 있었다. 귓가에도 그의 목소리만이 들리고 있었다. 어둠보다도 더 시커먼 옷을 입은 남자는 방 한가운데에 서서 그녀를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핥아대듯 응시하고 있었다. 그 희번덕이는 시선에 미영은 첫 번째 오르가슴에 도달하며 몸을 떨었다.
환한 조명 속에 커다란 침대가 놓여 있었다. 오광태가 주문을 외우듯이 입을 열었다.
“누가 너의 주인이냐?”
그녀가 달아오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입니다. 저는 당신의 노예입니다.”
충실한 답변을 보상하는 듯 오광태의 손가락이 까닥였다. 그러자 손대지도 않은 미영의 블라우스가 사르르 바닥에 떨어졌다. 아무것도 가려지지 않은 풍만한 가슴이 출렁이며 허공에 드러났다. 꼿꼿하게 일어선 두 개의 핑크빛 정점이 금세 선홍색으로 물들어 갔다. 그가 다시 물었다.
“무엇을 갖고 싶나?”
“주인님의…. 주인님의 씨앗을 갖고 싶습니다.”
낄낄낄, 오광태는 흡족한 웃음을 터뜨렸다. 미영의 치마가 흘러내리며 희뿌연 살결을 그대로 내보였다. 그녀의 삼각주에는 얄팍한 천조각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가느다란 가터벨트와 망사스타킹만이 나신(裸身)에 걸쳐진 전부였지만 미영은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거센 욕정과 기대감으로 스스로 자신의 가슴을 감싸쥐고 있었다. 오광태가 그녀의 벌거벗은 몸뚱아리 앞에서 바지춤을 끌어내렸다. 그녀는 그의 아랫도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가까이 와라, 나의 노예.”
미영이 홀린 듯한 걸음을 내디뎠다. 오광태의 손길이 그녀의 몸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졌다.
“아아! 주, 주인님!”
미영은 파르르 허벅지를 경련시켰다. 두 번째 오르가슴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기다려 왔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상상도 하기 힘든 쾌락이 그녀의 육체를 연이어 관통하고 있었다.
오광태는 더 이상 지껄이지 않았다. 미영은 그가 명령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침대 위로 오른 그녀가 한껏 허리를 굽힌 채 침대보에 얼굴을 파묻었다.
“너는 나의 아이를 임신하게 될 것이다.”
“네, 주인님! 당신의, 당신의 씨앗을 저에게 뿌려 주세요…!”
미영의 붉게 젖은 입술이 안타깝게 애원했다. 엎드린 그녀의 등 뒤에서 오광태가 다가오고 있었다.
<#122>
푹풍우 같은 빗줄기가 퍼붓고 있었다. 김형진은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꽤 고급스러운 오피스텔이었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찾아 다급히 버튼을 눌러댔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승강기의 숫자는 모두 꼭대기 층을 가리키고 있었다.
“제기랄!”
욕지꺼리를 삼킨 형진은 비상구 계단을 향해 달렸다. 시간이 없었다. 미영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했다. 이제 그는 오광태, 아니 이성귀가 아내를 노리는 까닭을 훤히 짐작할 수 있었다.
13층까지는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심장고동 소리가 터질 듯 관자놀이를 울려댔지만 그는 숨조차 쉬지 않았다. 땀으로 범벅이 된 형진은 마지막 층계를 돌아서자마자 허겁지겁 복도를 살폈다. 그가 찾고 있는 곳은 13층에서도 가장 끝쪽이었다.
부디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여자의 말이 맞기만을 바라야 했다. 아내의 이름을 부를 겨를조차없이 그는 열쇠를 꽂아 넣었다. 그러나 그렇게 쏟아질 듯 들어선 오피스텔 내부는 전등이 모두 꺼진 채 캄캄한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어디가 어디인지 모를 미로 같은 여러 개의 문들만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이윽고 형진은 그중에서 가장 깊숙한 방의 문틈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통에 찬 여자의 신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 오는 것 같았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