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정부 곳곳에 민변 출신들이 포진하면서 민변이 주 목받고 있다. 노 대통령 자신이 민변 회원이며, 강금실 법무장관은 민변 부회장을 역임했다. 가운데 문재인 민정 수석도 역시 민변 출신. 청와대사진기자단 | ||
1 강금실 법무장관
2 문재인 민정수석
3 박주현 국민참여수석
4 이석태 공직기강비서관
5 최은순 국민제안비서관
6 박서진 국민참여수석실 행정관
7 고영구 국정원장 내정자
8 송두환 대북송금 특별검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회원 수는 3백90여 명이다. 대한민국 변호사 5천4백79명 중 약 8%를 차지하는 ‘소수파’인 이들이 노무현 정권의 새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새 정부 청와대 비서진에 민변 출신 변호사들이 대거 입성한 것을 시작으로 법무부 장관 국정원장 등의 권력 요직에도 민변 출신들이 임명되었다.
변호사들의 활동영역 확대는 법치주의 발전에 따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민변 출신 변호사들의 요직 기용에 대해 군사독재시절의 ‘육사정권’을 빗대 ‘육법정권’이라고까지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민변 출신에만 편중된 인재 기용은 정책의 편향성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새 정부의 인재풀이 그만큼 다양하고 폭넓지 못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민변 출신들이 한국 정치권의 ‘신주류’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관측에 별 이견은 없는 것 같다. 88년 5월 창립 이후 최대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민변. 새 정부의 ‘핵’으로 떠오른 민변을 해부했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맞은편에 있는 일명 ‘먹자골목’ 한켠에 자리잡은 신정빌딩. 민변은 이 건물 5층에 세 들어 살고 있다. 처음 오는 사람은 빌딩 안내판을 유심히 보고서야 이곳이 민변 사무실임을 알게 된다. 노무현 정권의 한 축을 이루는 막강한 파워집단이지만 사무실만으론 그 ‘무게’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이곳에서 김인회 수석사무차장(42·사법연수원 25기)이 상근으로 일하고 있고 6명의 사무국 간사들이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민변 멤버는 올해 새내기들(사법연수원 32기 수료생) 20여 명이 새로 회원으로 가입해 총 3백90여 명 정도 된다고 한다. 회원 모집을 위해 간단한 설명회도 개최하고 이메일 홍보도 한다. 현재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회원에서 탈퇴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여전히 회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한때 “민변을 탈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여론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으나 대통령직 수행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민변 규약상 공직에 있는 사람이 회원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조항도 없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매달 10만원의 회비도 꼬박꼬박 내고 있다고 전해진다. 강금실 장관의 탈퇴로 부회장 1명이 공석인데 오는 5월 총회를 통해 다시 선임할 예정이다.
민변 회원 가입은 99년을 기점으로 크게 늘어났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회원 명단 현황을 보면 연수원 27기(98년 수료) 이하는 매 기수마다 회원가입이 10여 명 안팎에 불과했다. 하지만 28기(99년 수료)에 27명이 가입한 것을 시작으로 그 이후부터 해마다 20명을 넘기고 있다. 회원들이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이들의 활동에 대해선 다른 목소리도 있다. 민변의 한 회원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회원들이 옛날에 비해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 중 일부는 이름만 걸어두고 활동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민변 가입 사실을 홍보용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초기 민변 멤버들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고 변질된 것 같다.”
물론 이는 극소수의 예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민변 활동이 일부 회원들에 의해서만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고 나머지 회원들의 활동이 미약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민변측도 인정하고 있는 부분. 전김명훈 대외협력 간사는 “3∼4년 전부터 회원이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늘어난 숫자에 비해 활동하는 회원들의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약 30% 정도만이 주로 민변 산하 각종 위원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민변의 올해 활약은 눈부시다. 창립멤버였던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서 민변 급부상의 첫 신호탄이 쏘아 올려졌다. 그 뒤 민변 부회장을 맡고 있던 강금실 변호사가 ‘검찰개혁 산파’ 임무를 띠고 법무부 장관에 발탁되면서 민변 출신들이 주목받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대통령 비서진 인선에서도 민변 출신들이 대거 청와대로 입성했다. 민변 부산경남지부장이었던 문재인 변호사(50)가 민정수석에, 창립 회원이었던 박주현 변호사(40)가 국민참여수석에 각각 기용됐다. 그리고 민변 부회장과 사무국장 등을 역임한 이석태 변호사(50)가 공직기강비서관에, 민변 여성위원회 위원이었던 최은순 변호사(37)가 국민제안비서관에, 그리고 박서진 변호사(34)가 국민참여수석실 행정관으로 각각 임명됐다. 여기에다 박범계 민정2비서관(40), 양인석 사정비서관(44), 황덕남 법무비서관(45) 등도 민변과 정치적 코드가 맞아 ‘범민변계’로 분류된다.
또한 국가 권력기구인 국정원장에 민변 초대회장을 역임했던 고영구 변호사가 내정되었다. 현재 민변 부회장을 맡고 있는 임종인 변호사는 국정원 기조실장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사회적 관심 속에 노 대통령이 최종 임명한 ‘대북송금 특검’ 송두환 변호사 역시 민변 회장을 역임했던 인사다.
지난 2월 박재승 변호사를 신임회장으로 선출한 대한변호사협회(변협)의 새 진용도 민변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한다. 최병모 현 민변 회장이 박 변호사에게 출마를 권유했고 민변을 중심으로 한 소장 변호사들이 박 회장을 지지했다는 후문이다. 여기에다 변협의 8명 상임이사 중 4명이 민변 소속 변호사로 발탁돼 변협도 민변의 색깔로 바뀌었다고 할 만하다.
김선수 현 민변 사무총장의 이력도 특이하다. 그는 사시 27회 수석을 차지한 수재로 ‘쉬운 길’을 뒤로하고 연수원을 졸업하자마자 고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로 들어간 뒤 계속해서 민변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그러면 왜 민변 출신들이 이렇게 ‘뜨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노 대통령의 민변에 대한 각별한 ‘신뢰’에서 찾을 수 있다. 노 대통령은 평소 ‘변호사들도 사회변화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게다가 변호사들은 대개 공개적으로 검증된 인물들이고 특히 민변 출신들은 ‘전문성’과 ‘개혁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변 창립 산파역을 해냈던 이돈명 변호사(80)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민변 구성 멤버가 개별적으로 보면 흠집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전두환 정권의 횡포 속에서도 꾸준히 뭉치고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불의에 대해 계속 싸워온 사람들이다. 그들의 정열이 무엇보다 중요한 무기다. 노무현 대통령도 민변 출신들의 이런 점을 높이 평가한 것 같다. 어려웠던 시절에 열심히 닦았던 덕이 이제야 빛을 보는 것 같다. 앞으로도 민변 출신들이 현 정부에 많이 참여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민변의 현재 좌표는 또 다른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사실 민변은 지난 88년 5월 창립 때는 순수 시민단체의 성격이 강했다. 이때는 군사독재정권의 폭압을 견디다 못한 재야의 인권변호사들이 소수의 인권 보호와 변호에 주목하던 시기였다. 민변은 89년 89건, 90년 1백5건에 이어 공안정국이 기승을 떨치던 91년 1백56건의 시국사건을 수임하는 등 약자의 편에서 진보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공안관련 사건이 줄어들면서 새로운 역할을 찾고 있다. 그래서 각종 기획 소송과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민변은 지난 1월 한총련과 병역거부 사범 등 양심수 석방을 요구한 데 이어 최근에는 검찰 경찰 국정원 법원 등 권력기관 개혁 등을 요구하는 토론회를 잇따라 개최하면서 노무현 정부의 개혁 정책과 발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자칫 ‘정권의 나팔수’로 비칠 위험성도 있는 게 사실. 그래서 민변은 현 정부와의 관계 설정에도 고심하는 빛이 역력하다. 민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기본적으로 참여정부의 정책과 민변의 색깔이 비슷하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정부에 대해 지지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일관하진 않을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현 정부가 파병을 추진하고 있는 이라크 전쟁에 대해 우리는 분명히 반대 의사를 내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민변 창립멤버인 민주당 천정배 의원은 “새 정부에 적극 참여해 국정에 기여하되 비정부기구로서의 비판적 역할은 계속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민변의 향후 역할을 설명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민변 중용 정책은 다른 한편으론 ‘민변 출신들이 요직을 너무 독식하고 있다’는 비판도 불러오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신주류측 한 인사는 “그런 식으로 보자면 옛날에 육사 출신들이 다 해먹을 때는 왜 그런 소리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PK 출신들이 다 해먹고 할 때도 그렇고…, 사실 민변에서 (요직에) 가봐야 몇 사람 갔나. 장관만 해도 몇 십 명인데 거기에 몇 명 갔다고 해서 비판하면 중립적인 자세가 아닌 것 같다”고 반박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한나라당의 한 인사는 “육사와 다르다고 주장한다면 지금 그때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인가. 지금이 민변 정권인가. 민변이 국가 요직을 장악하면 과거 육사 정권처럼 ‘육법 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노무현 정권의 인재풀이 넓지 못하고 굉장히 제한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꼬집었다.
요즘 민변은 회원들의 잇따른 정부 참여로 분위기가 고조돼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한 회원은 기자와의 인터뷰를 꺼리면서도 “지금 민변이 잘나가는 상황이지만 일부에서는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몇몇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민변 출신 인사들에 대한 비리 캐기에 나섰다는 소문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언론에 나서서 얘기하고 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는다”며 최근의 민변 분위기의 단면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아래에서 민변의 미래는 밝은 편이다. 민변 출신 변호사들이 앞으로 정치권의 새로운 핵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 정치권에서는 “이들이 만약 정부 요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민변사단’을 등에 업고 내년 총선에 나선다면 막강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의 측근인 문재인 민정수석은 최병모 민변 회장 등과 수시로 만나 새 정부에 발탁할 인물들을 추천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현 정부와 민변과의 깊은 교감을 읽을 수 있다.
민변 소속 한 변호사는 이에 대해 “현 정부와 비슷한 정치적 코드를 가지고 있는 민변 출신 인사들 중 상당수가 내년 총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민변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총선에 참여할 것 같지는 않다. 민변 내부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기 때문에 이를 한 곳으로 모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민변 자체를 당장 정치세력화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