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9일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불참한 가운데 김웅 대표와 임원들이 ‘대리점 갑질 파문’과 관련 대국민 사과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이런 지적이 대두되는 이유는 먼저 갑질 파문과 관련 대국민 사과 현장에 홍 회장이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5년과 2016년 실적반등에 성공한 이원구 대표는 연임에 성공했지만 실적 부진에 휩싸인 지난해 말 임기를 절반이나 남긴 채 돌연 물러났다. 지난 1월 사상 첫 외부출신 CEO인 이정인 대표가 취임했지만 남양유업의 올해 상반기 실적 역시 부진한 행진을 이어가고 있어 그의 향후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남양유업은 갑질 파문 이전인 2012년 연결기준 매출 1조 3650억 원, 영업이익 637억 원을 거두는 등 매해 10% 안팎의 성장세를 구가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런데 지난 2013년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나이 많은 대리점주에게 욕설하는 음성 파일 공개에 이어 물량을 강제로 밀어냈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사회적 문제로 촉발됐고, 소비자 불매운동으로까지 확산됐다.
결국 남양유업은 그해 5월 9일 대국민 사과를 했다. 홍원식 회장이 빠진 사과였다. 당일 김웅 대표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홍 회장님은) 업무에 참여를 못하고 있고, 실제 의사결정은 제(김웅 대표)가 했기 때문에 사과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홍원식 회장이 회사 업무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김웅 대표의 발언은 사과의 진정성 논란을 증폭시킬 수밖에 없었다. 홍 회장은 남양유업 창업주 고 홍두영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현재 회사 지분 51.68%를 보유한 최대주주이자 경영상 중요한 의사결정과 법적 책임을 갖는 등기임원이기 때문이다. 남양유업 측은 ‘일요신문’에 “홍 회장은 최대주주이자 등기임원으로 상근 중이다”라고 해명했다.
남양유업은 2013년 매출 1조 2298억 원, 영업손실 174억 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결국 김웅 대표는 2014년 3월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해 남양유업은 매출 1조 1517억, 적자가 261억 원으로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김 대표 후임으로 이원구 대표가 선임됐다. 이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착한 경영을 뿌리 내려 고객에게 진정으로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 2020년 매출 3조 원을 달성하겠다”고 천명했다. 남양유업은 이 대표 취임 두 번째 해인 2015년 매출 1조 2150억 원, 201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면서 흑자 전환했고 2016년에도 매출 1조 2391억 원, 영업이익 418억 원을 달성하며 2년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다만 실적 반등의 주요 원인으로 강력한 구조조정 등 비용절감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반환 받은 게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남양유업 직원 수는 2013년 말 2849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15년 말 직원 수가 2442명(14.2%)까지 줄어 현재까지 2400명대에 머물고 있다. 아울러 공정위가 ‘밀어내기’ 갑질에 대해 부과한 과징금 124억 원에 대해 남양유업은 불복 소송을 제기했고 2015년 7월 대법원으로부터 과징금 부과 취소 확정 판결에 따라 119억 원을 돌려 받았다.
이 대표는 실적 반등에 힘입어 연임에 성공했다. 임기만료는 2020년 3월 이었는데 지난해 12월 30일자로 돌연 사임했다. 남양유업은 이 대표가 정념퇴임(만 60세)으로 사임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대표의 정년퇴임 사례는 창사 이래 처음이라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이 대표는 1956년 7월생으로 퇴임 당시 만 60세 5개월이었다. 남양유업 입장대로라면 1947년 7월생인 박건호 전 대표는 2003년 대표로 선임돼 2008년 말이 정년이지만 2009년 말 퇴임했다. 박 전 대표의 후임인 김웅 전 대표는 1953년 2월 생으로 61세 1개월인 2014년 3월 물러났다. 남양유업은 “대표는 정년 이후에도 회사 대표직을 수행하는 경우 꼭 정년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 대표의 사임 이면에는 지난해 실적 부진에 따른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남양유업은 지난해 매출 1조 1669억 원에 영업이익 50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에 비해 매출은 5.8%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무려 88%나 급감한 수치다. 2015년 이후 3년만의 마이너스 성장이었다. 익명의 남양유업 관계자는 “지난해 연말 실적이 부진할 것으로 내부에서 회자 됐었다. 또한 이원구 대표가 취임 당시 밝힌 2020년 매출 3조 원 달성 실현 가능성과 관련해 여러 말들이 오고갔다”고 귀띔했다.
후임 CEO로 올해 1월 이정인 대표가 취임했다. 이 대표는 회계사 출신으로 대형 회계법인인 딜로이트 안진 회계법인 부대표 출신이다. 취임 당시 업계 경력이 전무하다는 지적이 나온 반면 다양한 기업컨설팅 경력을 바탕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는데 적임자라는 전망이 엇갈렸다. 이정인 대표의 경영능력에 대한 판단은 아직 이르지만 올해 상반기에도 남양유업의 실적 부진은 이어졌다. 상반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 이상 감소한 5233억 원에 그쳤다.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6% 이상 늘어난 27억 원을 기록했으나 유의미한 반등은 아니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서울 강남구 1964빌딩 남양유업 본사. 사진=고성준 기자
남양유업 실적 부진이 5년 넘게 장기화되는 이유는 복합적인 요인으로 풀이된다. 저출산과 갑질 사태로 추락한 브랜드 이미지, 공을 들여온 중국 시장에 발발한 사드 악재, 커피믹스 등 신사업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요인들이 얽혀 있다.
경쟁사인 매일유업은 남양유업의 갑질 파문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하게 구분된다. 2017년 5월 1일자로 지주회사로 전환한 매일홀딩스(옛 매일유업)는 유가공사업부문을 분할해 매일유업을 별도 법인으로 설립했다. 유제품 시장 불황에도 매일유업은 올해 상반기 매출 6407억 원, 영업이익 348억 원을 거뒀다. 남양유업에 비해 매출은 1200억 원 가까이, 영업이익은 300억 원 이상 많은 월등한 실적이다.
남양유업은 지난 달 우유제품 가격을 평균 4.5% 인상한 것을 두고 원유 인상과 장기화 된 실적부진을 해결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대두되고 있다. 서울우유는 지난 8월 평균 3.6% 인상했고 매일유업과 빙그레는 인상 여부를 검토 중인 상황에서 남양유업의 인상폭은 소비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높게 체감될 수밖에 없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2013년 이후 5년 만에 가격을 인상했다. 원유가격 인상 외에 누적된 생산 및 물류비용 증가,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인건비 증가 등의 이유로 불가피하게 결정됐다”며 “유통채널별로 할인행사 및 덤 증정 프로모션을 연말까지 지속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악화된 회사 상황, 책임경영 논란 등과는 별개로 홍원식 회장의 회사 내 입지는 더욱 공고하며 흔들림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양유업 총수 일가 중 지분 51.68%를 보유한 홍 회장을 제외하면 모두 1% 미만 보유에 그치고 있다. 주식회사인 남양유업 특성상 홍 회장의 판단 만으로 회사의 모든 의사 결정이 이뤄질 수 있는 구조다.
남양유업은 각각 100% 지분을 보유한 금양흥업(부동산 임대업)과 남양에프앤비(음식료 제조업)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홍 회장은 총수일가 중 유일하게 두 계열사 이사로 등재돼 있고, 남양유업 지분에 따라 이들을 지배하고 있다
홍 회장은 회사로부터 2013년 13억 원, 2014년 15억 원, 2015년 16억 원, 2016년 18억 원, 2017년 16억 원의 보수를 받았다. 남양유업은 매해 8억 5000만 원 안팎을 배당하고 있는데 홍 회장은 보유 지분에 따라 해마다 4억 3000만 원 안팎의 배당금을 수령한다.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2013년과 2014년에도 홍 회장의 연봉은 15% 이상 인상됐고 배당도 실시됐다는 점에서 ‘회장만 나홀로 행복’이라는 논란은 쉽게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장익창 기자 sanbad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