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이건희 회장 | ||
핵심 경영 관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요즘 어느 때보다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누구보다 경제를 보는 예측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이 회장의 이같은 심경 토로는 한국 경제 전반에 드리워지기 시작한 불안감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의사표현에 매우 진중한 이 회장이 최근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경제를 걱정하는 이유는 뭘까.
사실 외견상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전자가 올 상반기에 사상 최대 흑자를 남기는 등 호황을 누린 것으로 나타나 있다. 다른 핵심 계열사들도 호황을 누린 것은 마찬가지이다.그런데도 이 회장이 깊이 걱정하는 것은 경영실적의 ‘질’적인 문제인 듯하다.
특히 삼성그룹 전체 가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사업구조가 안고 있는 불안함이 이 회장을 걱정스럽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경영실적의 질적인 면을 따져보면 우선 순익 기준으로 상반기에 영업이익 5조원대, 순익 3조8천억원에 이르면서 사상 최대치를 올린 것으로 추정됐다. 일단 수치상으로는 예년보다 5% 이상 늘어나 양호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즐거워 할 일만은 아니다. 주력인 반도체의 매출비중이 여전히 전체의 40%선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 부문의 이익률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새로운 주력으로 등장한 정보통신 부문이 반도체에 바짝 다가서면서 사업구조가 약간은 다변화된 모습을 보여 반도체 의존도를 끌어내린 점은 높이 살 만하다.
그렇지만 주력인 반도체나 새로운 영역인 정보통신 부문의 전망은 갈수록 악화될 조짐이다. 바로 이 점이 이 회장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반도체는 삼성전자의 주력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힘이 빠진 상황이다. 이미 D램 가격은 영업이익을 남길 수준에서 이탈할 조짐이다. 그럼에도 증설을 위한 신규투자는 연간 1조원 이상 이뤄져야 한다.
▲ 밤 늦은 시각에도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삼성 본관. | ||
더구나 삼성전자 반도체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공룡의 출현을 앞두고 있어 갈수록 첩첩산중이다. 이미 중국은 미국, 일본업체의 하청생산기지로 변신하면서 대량 생산을 통해 삼성전자를 강력히 위협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이달초 그룹내 핵심 경영인 10명을 전격적으로 중국에 보내 공부하도록 조치했다. 중국시장의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으면 향후 그룹 전체가 위기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운 주력상품으로 부상한 정보통신 부문도 국내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있고, 중국시장도 노키아 등 선진국 상품들이 휩쓸고 있다. 삼성브랜드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지도가 급상승하고는 있지만, 중국내에서 자체 생산하는 품목들도 급증하고 있어 삼성그룹으로선 미래가 밝지 않아 보인다.
삼성전자를 빼고나면 사실 삼성그룹에서는 맹탕이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자 3사라고 불리는 삼성전기, 삼성SDI도 따지고 보면 상당부분 삼성전자에 의존하는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경기상승기에는 동반상승으로 시너지효과를 내지만 하강기에는 동반침몰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삼성증권, 삼성생명 등 다른 계열사의 경우에도 삼성전자에서 나오는 현금을 운용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흔들린다는 것은 삼성그룹 전체를 공포속에 몰아넣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2001년 9.11테러 이후 본격화된 국제경제의 침몰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점도 걱정거리다. 삼성그룹 경영에서 금융시장 의존도가 매우 큰 상황이고 보면, 자칫 외국인들이 삼성그룹 계열사의 주식을 털어낼 경우 감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결국 삼성그룹으로서나 이건희 회장으로선 이같은 위기국면을 타개할 만한 기사회생의 비책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이 회장이 편하게 잠들지 못하는 이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