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대전=일요신문] 육군영 기자 = 의학과 위생학의 발전으로 현대인은 흑사병, 홍역 등 많은 감염병의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높은 치사율을 가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을 비롯해 인플루엔자 등 RNA를 유전체로 삼는 바이러스 질환의 위험은 여전하다. 바이러스 감염은 SF 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할 만큼 위협적인 존재여서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이 인체에 침투한 바이러스를 방어하는 면역체계의 비밀을 찾고 있지만 베일에 싸여있는 기작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김명희 책임연구원은 RNA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인체 내 핵심 단백질 성질을 세계 최초로 규명해 주목받고 있다.
모든 세포 내에 존재하는 효소복합체가 효소로서의 기능 외에도 감염 시 세포항상성을 위한 면역조절시스템으로 기능을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밝히며 면역과 감염 분야 연구의 독자적인 길을 개척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앞으로 메르스, 에볼라 등 항바이러스 단백질에 특이적으로 작용하는 감염병 치료제 개발을 위한 기초원천 지식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감염된 미생물이 어떤 방식으로 병원성을 발휘하는지, 또 인체는 어떻게 이를 방어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밝힐 때마다 많은 보람과 희열을 느낀다는 김명희 책임연구원을 만나본다.
- 먼저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11월 수상 소감 부터.
” 저보다 훌륭한 연구자들이 많아 수상은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수상자 선정 연락을 받고 항상 곁에서 도움을 주시고 힘이 되어 주신 선배, 동료 과학자들, 그리고 연구실 멤버들이 가장 먼저 생각났습니다. 그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고요. 개인적으로 이달의 과학기술인상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연구에 정진할 수 있는 큰 활력소가 될 것 같습니다“
- 인체의 감염과 면역의 비밀 가운데 인체의 방어시스템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시작하신 이유는 무엇인지?
”인류가 감염으로 멸망한다는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의 이야기가 단순히 상상 속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이러스를 포함한 병원성 미생물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으며,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고도화된 방법으로 감염병을 일으킵니다. 대학원 시절 미생물을 이용한 산업용 효소를 중심으로 연구하면서도 병원성 미생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포스닥 기간에는 미국에서 인체 중심으로 연구를 수행했고, 이러한 연구 배경 덕에 귀국 후에는 병원성 미생물과 인체 간의 상호작용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감염된 미생물이 어떤 방식으로 병원성을 발휘하는지 또한 인체는 어떻게 이를 방어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밝힐 때마다 많은 보람과 희열을 느낍니다. 이러한 결과들이 언젠가는 부작용 없는 감염병 치료제 및 백신 개발에 필요한 기초 원천 지식으로 활용될 수 있으니까요.“
- 최근에는 인체 모든 세포에 존재하는 단백질 합성 효소복합체의 감염 감시 시스템 및 면역 조절 시스템으로서의 역할을 규명한 연구성과를 간략히 설명한다면.
”이번 연구는 재미있게도 단백질 합성 효소복합체의 근원적인 세포 기능을 밝히기 위해 효소복합체 구조 규명을 목표로 오랜 기간 다양한 분석을 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는데요.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한 감염 환경에서 효소복합체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통해 이룬 결과입니다. 지금까지 연구자들이 발표한 결과를 고려할 때 효소복합체는 세포항상성 조절 허브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 중에서 본 연구 성과는 감염에 대응한 즉각적 면역 조절시스템으로서의 기능을 구성 단백질인 EPRS 분석을 통해 최초로 제시한 것입니다. 기존에 알고 있던 감염 후 발생하는 면역 조절 시스템과는 다른 역할을 하고, 효소복합체 구성 단백질마다 다르게 기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체계적으로 밝혀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김명희 책임연구원
- 비브리오패혈증의 활성화 기작을 비롯해 AIDS 환자에게 나타나는 반점의 원인 물질에 대한 방어기작도 규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병원성 미생물의 입장에서 어떻게 인체 내에서 생존하고 질환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새로운 기전을 규명한 것으로, 감염병을 이해하는데 기여를 했습니다. 또 이러한 기초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치료제 개발을 위한 타깃 및 소재도 발굴했고요. 특히 비브리오 패혈증은 해수에 주로 서식하는 비브리오가 매개하는 급성 감염병인데, 생선 회 등 생식 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해수 온도가 상승해 균의 증식 속도가 빨라져 심각성이 큽니다. 연구 결과가 관련 연구 분야와 산업계에 활용되어 치료제 개발에 도움이 되길 기대합니다.”
- 자신의 전문분야만을 고집하기보다 융합적 관점에서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생명 현상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단일한 학문이나 기술로 이해하고 결론을 내리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단백질 수준에서의 연구 결과가 세포 수준에서는 재현성이 없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융합적으로 디자인한 연구 결과를 요구하는 저널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우리 연구실에는 다양한 전공자들이 있습니다. 연구실 초기에는 구조생물학과 생화학 기반으로 운영했는데 지금은 미생물학과 세포생물학, 면역학적 기능 연구도 가능한 수준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영역을 커버할 수 없기 때문에 특정한 전문 영역, 예를 들어 단백체 분석이나 유전체 분석, 동물 모델 분석 등은 협력 연구를 진행합니다. 연구 결과가 감염 및 면역 연구 분야에서 인정받는 것은 다양한 접근 방법을 통해 연구를 진행했기에 신뢰도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 연구자로서 기본방침이나 철학 및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저는 항상 연구실 학생과 연구원들에게 사이언스(Science)가 재미있지 않은데 에너지를 쏟고 있다면 건강을 해치는 일이니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선배 과학자로서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인내해야 하는 길인지 아니까요. 연구는 새로운 사실을 밝히는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결과는 항상 예상과 다르게 나오고 따라서 실망도 많이 하게 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특히 바이오 분야에서는 기본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또한 많이 생각하고 집중해야 합니다. 당연히 스트레스가 많은 만큼 즐기면서 하지 않는 한 행복할 수 없습니다. 또 그런 상황에서는 사이언스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도전도 기대하기 어려우니까요.“
- 궁극적으로 도전하고 싶은 목표나 이루고 싶은 연구성과는 무엇인지요?
”우리 연구실에서 가장 이루고 싶은 연구 목표는 단백질 합성 효소복합체의 구조를 규명하는 것입니다. 약 30년간 세계의 연구자들이 노력했으나 매우 도전적인 연구 특성상 아직 구조 규명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아홉 가지의 단백질 합성 효소와 세 가지의 단백질로 이루어진 거대복합체로 존재하면서 어떻게 단백질 합성과 세포 항상성 조절을 위한 허브로 기능을 하는지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아마도 구조가 밝혀지면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단백질 합성 효소복합체 분야는 그 자체가 ‘단백질 합성 효소복합체 생물학(Multi-tRNA synthease complex biology)’이라는 하나의 연구 분야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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