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준 의원 | ||
연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정몽준 의원과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해묵은 악연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정 의원은 현대그룹 창업자인 고 정주영 회장의 아들로 오너 경영인이었고, 이 전 회장은 현대가를 위해 청춘을 바친 현대그룹의 대표적인 가신인 관계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서로 앙숙관계로 지금까지 쌓이고 쌓인 감정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항간에는 두 사람의 관계를 ‘20년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대체 두 사람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현대가 사람들에 따르면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82년 연말 무렵. 당시 정 의원은 31세의 젊은 나이에 현대중공업 사장에 올랐고, 이 전 회장도 38세에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주)현대엔진공업의 전무로 발탁되면서 만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이력상 공통점이 많은 편이다. 30대의 나이에 경영인 대열에 올랐고, 공교롭게도 똑같이 서울 상대를 졸업했다. 고 정주영 회장은 생전에 정 의원을 ‘공부 잘하는 아들’로 자랑스러워 했고, 이 전 회장에 대해서는 ‘현대의 컴도저(컴퓨터 두뇌와 불도저 저돌성)’라 부를 정도로 아꼈다.
사실 지금도 현대그룹 관계자들은 이 전 회장의 저돌성에 대해 혀를 찰 정도다. 그는 고위 인사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골프를 배웠는데, 1년 만에 싱글 핸디캐퍼가 될 정도로 집착력과 집중력이 대단했다.이 전 회장이 30대의 나이에 현대그룹 계열사 전무에 오를 무렵 현대그룹에는 이미 30대에 최고 경영자 대열에 오른 스타급 임원 출신들이 즐비했다. 이명박 전 현대건설 회장(현 서울시장)은 30대 초반에 현대건설 사장에 올랐던 인물이고, 이춘림 전 현대건설 회장, 김영주 전 현대중공업 회장 등도 30대에 전문 경영인이 됐던 사람들이다.
▲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 ||
이 전 회장은 현대엔진 전무로 일하면서 직속 상관격인 정 의원보다는 고 정주영 회장에게 회사경영 내용을 직보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는 정 의원이 이 전 회장을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으로 현대그룹 출신 인사들은 전한다.
현대그룹 출신 인사의 회고. “이 전 회장에 대한 정주영 회장의 총애는 유난했다. 머리좋고, 판단력이 뛰어난 그의 능력을 높이 샀던 것이다. 당시 정 의원이 현대중공업 사장을 맡긴 했지만 정주영 회장은 이 전 회장 등에게 많이 의존하고 있었다. 아마 그런 부분을 정 의원이 싫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정 의원은 나이 가 일곱 살이나 많고, 대학도 선배인 이 전 회장에게 자신의 불만을 드러내놓고 표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87년 정 의원이 현대중공업 회장에 오르고, 이 전 회장이 현대엔진 전무에서 현대중공업 전무로 자리를 옮기면서 감정의 골이 더욱 깊게 패인 것으로 주변에서는 전하고 있다.
당시 이 전 회장은 대표이사 겸 회장에 오른 정 의원에게 깔보듯 대했다는 것이다. 특히 업무보고를 할 때도 자신의 생각을 고집했고, 주요 내용에 대해서는 정 의원에게 알리지도 않고 정주영 회장에게 직접 보고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감정이 악화되면서 계열사 임원회의나 우연히 복도에서 만나도 아예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두 사람은 노골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서로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는 게 현대그룹 출신 인사들이 전하는 얘기이다.두 사람의 관계가 원만치 못하다는 얘기가 나돌자 정주영 회장까지 직접 나서 화해를 시도했지만, 뜻대로 되진 않았다.
또다른 현대그룹 출신 경영인의 얘기. “당시 현대중공업을 맡고 있던 김영주 회장이 두 사람을 불러 타이르기도 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둘 다 젊은 혈기 탓인지 뜻대로 되진 않았던 모양이다. 나중에는 정주영 회장도 이 문제를 걱정할 정도였다”
▲ 지난해 고 정주영 회장의 빈소를 찾은 이익치씨 | ||
결국 두 사람은 2년 동안의 불만스런 동거생활을 청산해야 했다. 이 전 회장이 1990년 현대해상화재 제2영업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간 것. 그러나 정 의원은 이 전 회장이 중공업을 떠난 후에도 “아버지(정주영 회장)를 등에 업고 무리하게 바이코리아펀드를 조성하는 등 금융사업을 전횡하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두 사람의 해묵은 감정은 2000년 초부터 시작된 세칭 ‘왕자의 난’이 터지면서 또다시 불거졌다. 정 의원이 당시 이 전 회장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내비친 것은 정몽헌 회장이 이끌던 현대상선이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가 되기 위한 시도에 나선 것이 이유였다.
현대상선이 현대중공업 주식을 매수한 사실이 드러나자 정 의원은 “그 사람(이익치 회장)이 형(정몽헌 회장)을 부추긴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정 의원은 또 큰형(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 손윗형(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충돌한 것은 이 전 회장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한 때문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는 게 현대그룹 관계자들이 전하는 얘기이다.실제로 정 의원은 왕자의 난이 터진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이 전 회장 때문에 나와 어려서부터 가장 친한 사이였던 형(정몽헌 회장)과도 사이가 멀어졌다”고 말했다.
이익치 전 회장도 평소 정 의원에 대해 불만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회장을 잘 아는 현대그룹 임원 출신 인사의 전언. “이 전 회장은 그룹에 몸담고 있을 때도 정 의원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이 많은 경영인들을 무시하는 태도가 싫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정치를 하면서 회사돈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은 태도였다.”
그는 실제 일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현대중공업이 국회의원 선거 때 인건비나 상여금을 얼마나 지급했는지 살펴보면 또다른 문제가 나올 것”이라며 돈 문제를 제기했다.아무튼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느닷없이 정몽준 의원을 타깃으로 삼아 폭로전에 나선 부분은 두 사람간의 복잡한 관계가 배경에 깔려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 중에서도 두 사람간의 20년 동안 해묵은 감정이 폭로전의 가장 큰 이유라는 게 주변의 지배적인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