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기자회견 내용은 이렇다. ‘이동통신 4사는 장기적으로 1조8천억원의 IT업체 지원을 위한 펀드를 만들기로 하고, 일단 올 연말까지 3천억원을 조성키로 했다. 펀드 투자방법 및 시기 등은 업체별로 세부계획안을 마련해 시행할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들은 올해 조성되는 기금을 위해 업체별로 SK텔레콤 1천9백억원, KT 1천4백억원, KTF 6백억원, LG텔레콤 1백억원을 갹출하기로 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이번에 조성되는 펀드는 “컴퓨터 그래픽스, 게임엔진 등을 다루는 소프트웨어분야의 벤처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며, 향후 이공계 학과 지원을 위한 장학기금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 이상철 정보통신부 장관 | ||
그러나 이런 명분과는 달리 이 펀드 구성을 위해 정통부 이상철 장관이 직, 간접으로 나섰다는 점과 업체간의 이해관계가 얽힌 것이라는 점에서 뒷말을 남기고 있다. 특히 펀드 조성을 앞두고 정통부가 이동통신 4사에 ‘펀드 참여를 위한 협조공문’을 발송하는 등 정통부가 반강제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특히 일부 업계 전문가들은 ▲IT펀드 조성 목적의 모호성 ▲부처간 사업주도권 장악을 위한 사전작업 ▲통신요금 인하 요구 무마용 등 각종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번 펀드 조성에 참여키로 한 해당 업체의 관계자가 “지난 9월 무렵 정통부로부터 4사의 기금 할당 규모와 관련한 기획안을 받았다”고 밝혀 정통부가 왜 이 같은 펀드 조성에 앞장 섰는지에 대해 의혹이 일고 있다.
이 펀드와 관련해 현재 가장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은 과연 이동통신 업체들이 스스로 자금을 모집키로 했느냐는 부분. 업계 관계자는 “이상철 장관이 취임 이후 IT펀드 모집의 필요성을 밝혔고, 지난 9월 무렵에 정통부로부터 내부 회의자료를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통부에서 전달받은 회의자료에는 IT펀드의 필요성에 대한 내용과 함께 각 업체들에게 분담될 기금 할당량 등이 적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정통부에서 전달받은 기획안, 회의자료 등의 공개는 거부했다.
이 자료에는 업계 1위인 SK텔레콤과 KT를 2 대 1의 비율로, 또 KT와 KTF를 또다시 7 대 3의 비율로 나눠 대략적인 할당량이 적혀 있었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이 자료에는 당초 LG텔레콤은 배제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이동통신 4사 중 LG텔레콤의 경영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점이 감안됐다는 게 해당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LG텔레콤측이 ‘우리가 빠지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참여를 원했고, 나중에 LG텔레콤은 1백억원 가량의 ‘소액’을 배분받는 선에서 모양을 갖추게 됐다는 것. 이 같은 내용은 그동안 정통부와 해당 업체들이 IT펀드 조성과 관련해 ‘자발적이었다’는 주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통부는 “펀드에 대해 제안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정통부에서 사실상 주도를 했다는 부분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정통부는 IT펀드와 관련, 그동안 이동통신 업체들이 막대한 순익을 올리고도 휴대전화 요금 인하에 대해 인색했다는 시민단체들의 지적에 대한 대응책의 하나였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이번 펀드 조성은 정통부와 이동통신 업체가 국민들의 ‘요금인하’ 요구를 ‘3천억원의 펀드’와 맞바꿔치기 한 셈이다. 문제는 요금 인하는 일반 시민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는 반면, 펀드는 일부 벤처기업에 국한될 뿐이라는 점이다.
더욱이나 현 정부 들어 수십조원의 벤처육성기금이 투입됐음에도 IT경기 침몰로 대다수 벤처기업들이 한계상황에 달해 있음을 감안할 때 몇천억원의 자금수혈로 IT육성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발상 자체가 난센스라는 지적이다. 이동통신 요금인하를 강력히 주도해온 참여연대도 “목적이 좋다고 할지라도 수익이 나기 어려운 곳에 이렇게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으며, 사용처 역시 벤처기업에 국한되는 일이기 때문에 일반 이동통신 사용자들은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한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외에도 향후 각사가 갹출한 기금이 사용되는 과정에서 있어 각종 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문제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정통부 산하의 정보화촉진기금이 집행되는 과정에서도 벤처기업들의 로비 등에 의해 문제가 된 적이 많았다”며 “관리의 문제도 만만치 않은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정통부가 지원하겠다고 밝힌 게임벤처기업, 컴퓨터 그래픽관련 사업 등은 문화관광부와 사업영역이 겹치는 부분이라서, 자칫 이 펀드 운영을 둘러싸고 정부부처간에 주도권 다툼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업계 일부 관계자들은 “이동통신 요금인하와 IT육성은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상관없는 일이며, 정통부는 요금인하를 통한 전체 국민의 이익증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