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정몽헌 현대건설 이사회 회장. | ||
기사의 핵심 내용은 “현재 정치권의 최대 쟁점 사안인 현대상선 4천억원 비자금 실종과 관련해 당시 자신(김 전 사장)은 사인을 거부했으며, 서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한 것이었다.
이와 함께 그는 “정몽헌 회장이 그룹 생존 차원에서 필요하다며 이상한 뭉칫돈을 요구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폭로했다. 김 전 사장의 이 인터뷰 기사는 현대상선 비자금 4천억원의 행방을 두고 정치권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기사가 <중앙일보>에 게재된 바로 다음날, 김 전 사장은 <중앙일보> 기자와 만나긴 했으나, 인터뷰에서 그같은 내용의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고 나서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중앙일보>에 김 전 사장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이튿날인 지난 15일 오전 김 전 사장이 14일자로 현대상선 홍보팀장 앞으로 보낸 문건을 공개하면서 밝혀졌다.
현대상선 홍보실이 공개한 김 전 사장의 문건을 보면 김 전 사장은 “11월15일자 <중앙일보>에 보도된 본인(김 전 사장)의 인터뷰 기사 내용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밝혀드립니다”며 자신의 입장을 해명했다.
그는 <중앙일보> 기자와 만난 부분에 대해 “현지(LA) 시간으로 지난 11월11일 LA인근 ‘데니스’ 식당에서 처와 함께 식사를 하던 중, <중앙일보> K아무개 기자가 찾아와 우연히 만난 적은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김 전 사장은 “현대상선 문제와 관련해, 보도된 바와 같은 내용의 인터뷰를 한 사실은 없다”며 기사 내용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을 편 것.
김 전 사장이 언론에 보도된 자신의 인터뷰 기사에 대해 갑자기 ‘사실과 다르다’며 해명하고 나서자 기사의 진실 여부는 물론 왜 김 전 사장이 현대상선 홍보실을 통해 새삼 인터뷰 내용을 부인하고 나섰는지 등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다.
현대상선 홍보실 관계자에 따르면 김 전 사장은 자신의 인터뷰 기사가 <중앙일보>에 게재된 당일인 지난 15일 오전(LA 현지시각은 14일), 이 회사의 사장 비서실로 전화를 걸어왔다는 것이다.
▲ 중앙일보가 15일자 1면 머릿기사(위)와 3면 해설기사로 보도한 인터뷰 기사. | ||
현대상선 홍보실 관계자는 “처음에 이 팩스를 받고 무척 당황스러웠다”며 “아마 <중앙일보>에 보도된 자신의 인터뷰 기사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K 기자와 김 전 사장이 만났느냐 아니냐 하는 부분은 실제로 지난 15일자 <중앙일보>에 김 전 사장이 부인과 함께 현지 식당을 나서는 사진이 게재된 점으로 보아 사실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재미있는 부분은 두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만나 얘기를 나누었느냐하는 부분. <중앙일보>측은 인터뷰 기사에서 2시간여 동안 장시간 인터뷰를 했다는 것인데 반해 김 전 사장은 30분 정도 만났다고 현대상선 홍보실을 통해 주장했다는 것. 얼마나 오랫동안 만나서 얘기를 나누었느냐하는 부분은 곧 얼마나 두 사람이 깊은 얘기를 나누었느냐하는 것과 관계가 깊기 때문에 양측의 주장이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사실 인터뷰를 통해 깊은 얘기가 오가려면 최소 2시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게 일반적이며, 30분 정도 만나서 많은 얘기를 나누긴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상선 홍보실 관계자는 “인터뷰 기사를 보도한 기자와 김 전 사장은 대전고 선후배 사이로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김 전 사장이 뿌리치지 못하고 만나준 것으로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현대상선 홍보실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보도된 인터뷰 내용도 새로운 사실이라기보다는 예전부터 업계에서 떠돌아다니던 소문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김 전 사장은 결벽증이 있을 정도로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라며 “‘현대’와 관련해 폭로를 할 만한 분이 아니다”고 전했다.
현대상선 홍보실측의 이같은 해명은 최근 이익치 전 현대증권 사장이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몽준 후보가 현대전자주가조작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편 것에 이은 또다른 폭로가 아니냐는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한 해명으로 보인다.
또 현대상선 홍보실 관계자는 “K 기자가 지난 11월11일(LA현지시간) 인터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사가 지난 15일자 1면 머릿기사로 게재된 것은 산업은행에 대한 국정감사가 종결되는 시점에 맞추자는 등의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는 말들도 돌고 있다”며 또다른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러나 현대상선측의 이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단독 보도된 인터뷰 내용에 일부 관계자들의 실명이 거론되는 등 워낙 자세한 데다가, 내용 자체가 영향력이 있는 사안들이어서 갖가지 추측들이 나돌고 있다.
지난 11월15일자에 인터뷰 기사의 핵심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현대상선의 4억달러 대북지원설’과 관련, 김 전 사장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도록 지시한 사항이 없다는 것. 김 전 사장은 인터뷰에서 “산업은행 돈은 분명히 내가 반대한 대출금이었다”며 “사표를 던지기 전 일년동안 회장님 안됩니다라고만 외롭게 외쳤다”고 돼있다.
또 현대그룹의 비자금과 관련해서는 “현대상선의 등기이사를 겸하고 있는 최용묵 현대엘리베이터 부사장에서 물어보라”며 “비자금에 대해 일체 아는 바가 없다”고 보도됐다. 아울러 이익치 전 현대증권 사장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김 전 사장은 “나도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검찰조사까지 받아 내막을 잘 안다”며 “이익치 전 사장이 자기친구인 이영기 전 현대중공업 부사장을 꼬드겨 투자하게 해놓고 이제와서 딴소리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