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조흥은행은 신한지주회사를 비롯, 인수대상자로 선정된 네 곳이 실사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위원장이 ‘신한지주회사’에 대해 언급하고 나서자 업계 관계자들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네 군데에서 실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위원장이 특정업체를 지칭한 것은 그간 소문으로 돌던 인수업체의 ‘사전내정설’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조흥은행 임직원 4천5백여명은 지난 13~14일 이틀에 걸쳐 일괄사표를 제출하며 정부의 매각방침에 반기를 들고 있는 상황.
조흥은행 직원들이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이들이 사표를 제출한 이유는 신한은행과의 합병을 거부해서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현재로서는 인수의향자에 불과한 신한은행측을 빗대어 지목하고 있는 것일까.
조흥은행 매각이 급속도로 진행되자, 업계에서는 갖가지 의혹들이 불거져나오고 있다. 사전 각본설, 배후설, 특혜설 등이 그것이다.
우선 ‘각본설’의 골자는 정부가 조흥은행의 인수대상자로 신한지주회사, 일본의 신세이은행, 미국의 리플우드홀딩스 등 네 곳을 선정해 치열한 ‘4파전’ 대립으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으나, 내심 ‘신한-조흥’의 합병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느냐는 것.
조흥은행 노조, 한나라당, 민주사회당 등이 제기하는 이 의혹은 현재로서는 ‘정황상 근거’다. 이들이 언급하는 정황상 근거 중 하나는 지난 6일 한 일간지 가판 1면 톱에 실렸던 ‘조흥은행 졸속매각 논란’ 기사. 당시 1면 톱이었던 기사는 다음날 아침 본판에서 3면으로 밀려났고, 이 과정에서 라응찬 회장이 직접 해당 언론사를 찾아가 적극 해명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 최근엔 신한지주회사측이 조흥은행을 합병한 후 2~3년 동안은 자회사로 운영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더욱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신한지주회사측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사전 밀약’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 국회 국감장에서 답변하고 있는 이근영 금감원장. 임준선 기자 | ||
그러나 문제는 현재 조흥은행의 주가가 바닥을 치고 있으며, 정부가 ‘손절매’를 해야하는 뚜렷한 명분이 없는 이상에야 이 가격에 조흥은행을 팔 필요가 없다는데 있다.
조흥은행은 지난 99년 2월, 5월, 9월 세 차례에 걸쳐 총 2조7천억원의 공적자금을 받았다. 당시 조흥은행의 주가는 한 주당 5천3백∼7천3백원. 이후 조흥은행의 주가는 곤두박질치다가 지난 4월22일에 한 주당 7천7백80원까지 회복됐다가 다시 하향곡선을 타기 시작, 현재 액면가 이하인 4천4백20원(11월15일 종가기준)을 기록하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조흥은행을 매각할 경우 회수할 수 있는 공적자금은 4년 전 투입금액인 2조7천억원보다도 4천억원 가량이 적은 2조3천억원 정도. 재경부측은 “경영권 확보에 따른 프리미엄도 감안할 방침”이라며 “인수 희망자 가운데 한 주당 6천원 이상을 제시한 곳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조흥은행을 주당 6천원 이상에 판다고 해도 연중 최고주가인 7천7백80원보다는 크게 낮은 수준.
게다가 조흥은행, 한나라당 등은 “조흥은행의 적정주가가 7천원대”라며 “지금 매각을 할 경우 적정가격보다 1조2천억원 정도를 덜 받는 꼴이 돼 헐값매각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논란이 일 가능성이 있다.
이와 더불어 제기되고 있는 의혹은 조흥은행의 정부지분 매각 추진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당초 조흥은행 보유 지분을 10~20%로 나눠 매각함으로써 경영권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기조였다.
그러나 지난 10월26일 막상 정부가 조흥은행 지분 20%가량을 팔겠다고 나서자, 신한을 비롯해 외국계 회사들이 ‘전체 지분을 사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 이후 정부는 당초의 기조를 뒤엎고 일주일 만에 조흥은행 인수후보 네 곳을 선정해 이 같은 시비에 휘말리게 됐다.
조흥은행 노조측은 “정부의 방침을 믿고 독자생존을 기조로 계획을 시행해왔는데, 느닷없이 경영권까지 팔겠다니 난감할 뿐”이라며 “조흥은행 경영진도 몰랐던 사항”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방침대로 연내에 조흥은행의 민영화가 가능할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