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17일 작고한 조중훈 한진 회장 | ||
한진그룹이 밝힌 조 회장의 유산 규모는 1천억원대. 한진은 지난 21일 조 회장이 “사재 1천억원을 공익재단 및 기업발전을 위해 계열사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에 대해 한진측은 조 회장이 생전에 ‘개인 재산 대부분을 수송물류 및 교육사업에 쓸 수 있도록 공익재단과 그룹 계열사에 기증하도록 조치’했고 이에 대한 처리결과를 장례식 당일에 밝혔을 뿐이라고 밝혔다.
조 회장이 기증한 사재는 대한항공 한진 한진관광 정석기업 등 4개 계열사 보유 주식 5백2만 주와 부동산 등 모두 1천억원 규모. 이렇게 보면 조 회장은 생전에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사회에 기증한 셈인 것이다.
실제로 조 회장의 4남1녀의 자녀들은 조 회장 사후 유산 배분에서 거의 빠져 있다. 자식들에게 상속으로 물려줄 재산이 단 한푼도 없다는 얘기. 조 회장이 사후 재산을 기증한 곳은 대부분 계열사이거나 그룹 산하 공익재단 등이다. 한진에선 그룹 산하의 교육재단에 5백억원을, 나머지 반은 그룹 계열사에 기증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 쓰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재계에선 조 회장이 새로운 상속모델을 선보인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상속세 절감을 위한 새로운 방법이 개발됐다는 얘기다. 이처럼 개인재산을 계열사와 산하 공익재단에 기증하는 경우 직계 후손들이 부담할 세금이 거의 없다.
세법상 공익재단에 기증한 재산은 증여세를 물지 않고, 계열사에 기증한 재산의 경우 이를 받은 법인이 세금을 내지 그 회사 오너가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조 회장이 재산 기증 내역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 고 조중훈 회장 네 아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조남호 한진중공업 부회 장, 조수호 한진해운 부회장, 조정호 메리츠증권 부회장 | ||
특히 조 회장의 주식 4백70만여 주 중 4백만여 주가 인하학원이나 정석학원 등 공익재단에 넘어감으로써 조 회장의 장남인 조양호 회장은 경영권 방어와 상속세 부담에서 벗어나는 묘수를 찾아냈다. 나머지 2남(조남호 한진중공업 부회장), 3남(조수호 한진해운 부회장), 4남(조정호 메리츠증권 부회장)에게는 각각 1백3억5천만원 상당의 정석기업과 한진관광 주식이 돌아갔다.
또 한진그룹의 부동산 관리 회사 겸 지주회사 노릇을 하는 정석기업도 5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조 회장으로부터 기증받았다. 결국 네 아들의 개인 몫으로 돌아간 주식과 부동산은 6백여억원에 달하는 것. 이는 한진그룹쪽에서 계열사에 5백억원이 돌아가고 공익재단에 5백억원이 넘어갔다는 말과 차이가 있다.
이외에도 조 회장은 의결권이 없는 대한항공 우선주 18만여 주와 동양화재 주식 30만 주, 한진중공업 주식 4만5천 주, 자택 등을 남겼다. 이는 유족들에게 넘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상속은 규모가 얼마되지 않아 조중훈 회장 일가의 상속세 납부액은 세간의 예상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번 조 회장의 재산 기증이 계열사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재산 기증이라는 한진그룹쪽의 해명에도 사실상 아들들에게 재산을 물려준 것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 명의로 재산을 물려주지는 않았다 뿐이지 물려준 재산이 주식수까지 같을 정도로 공평하게 나눈 점 등 세심하게 배려한 점이 눈에 띄기 때문.
또 조중훈 회장의 재산을 기증받은 네 회사의 대주주가 이미 아들들이라는 점에서도 이번 계열사에 대한 재산 기증은 상속세 절감을 위해 편법을 짜냈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조양호 회장이 이끌고 있는 대한항공의 경우 물려받은 재산이 다른 형제 기업들에 비해 많다. 이는 대한항공이 자사주 형태로 받은 주식이 많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주식을 빼면 조중훈 회장에게서 물려받은 정석기업이나 한진관광 주식은 다른 형제들이 지배주주인 기업들과 똑같다. 네 아들 모두 정석기업 주식 4만4천 주와 한진관광 주식 9만9천8백여 주를 받았다. 이는 정석기업이나 한진관광이 모두 비공개 등록기업으로 한진그룹의 지주회사 노릇을 하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 대한항공 본사 | ||
이번 조 회장의 상속이 있기 전 2대 주주는 조수호 한진해운 부회장(1.30%)이었다. 조남호 부회장은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정석기업 2대주주이기도 해 명실상부한 한진그룹의 두 번째 상속자로 떠오른 것. 조중훈 회장은 생전에 정석기업의 지분을 조양호 회장(23.94%), 조남호 부회장(20.40%), 한진관광(19.99%)으로 배분해 두었다.
가장 큰 계열사인 대한항공과 지주회사격인 정석기업의 1대주주 자리를 조양호 회장에게 물려주어 그룹의 큰 흐름은 장남에게 넘겨줬다. 또 나머지 아들들에게는 한진중공업(2남), 한진해운(3남), 동양화재와 메리츠증권(4남)을 물려주는 구도를 택한 것. 물론 나머지 세 아들도 정석기업이나 한진관광 등 비상장 회사의 지분을 골고루 물려받아 추후 계열 완전 분리시 형제간의 계산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결국 별세 직전까지 그룹 회장직을 유지했던 조중훈 회장은 생전에 재산 분할상속 구도를 완성시켰고 사후에는 자신의 지분을 계열사에 기증함으로써 2세들의 세금부담도 덜어주고 계열사 재무구조 개선, 경영권 확보라는 과제도 해결하는 1석3조의 카드를 쓴 셈이다. 한진에선 조중훈 회장이 최근 10여년 동안 기업 소득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매년 2백억원씩 공익재단에 기증해왔다고 숨은 비화를 공개했다. 어쩐지 상속문제를 두고 사전에 여론을 조성한 듯한 제스처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