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주류 인사들은 신주류측의 신당론에 맞서 모종의 결단 이 임박했음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12일 민주당 의총에서 발언하고 있는 동교동계 정균환 총무.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대북 송금 특검법안과 당 개혁을 놓고 첨예하게 맞서온 양측은 최근 신주류 핵심인사들이 잇따라 ‘개혁신당 불가피론’을 펴고, 이에 맞서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구주류 역시 ‘중대결단 임박’을 공공연히 밝히면서 화해불능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당내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직접적인 중재 등 획기적인 수습책이 나오지 않는 한 당초 7~8월께로 예상됐던 분당(分黨) 시기가 4·24 재·보선 직후로 앞당겨질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먼저 신주류 내에서는 개혁신당과 관련해 ‘조기 거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른바 ‘탈레반’으로 불리는 강경 성향의 신기남 천정배 의원은 최근 지구당 위원장제 폐지 등 당 개혁안의 핵심 내용들이 구주류의 반발로 변질될 조짐을 보이자 ‘신당’ 공세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신 의원은 최근 “공식 논의는 없었지만 당 개혁이 점차 좌초되는 분위기여서 신당을 만들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개혁적인 민주당의 색깔을 만들어 보고자 했던 것이 개혁특위인데 잘 되지 않고 있으며 개혁작업이 장벽에 부딪히면 아주 새로운 당을 만들어서 개혁을 실현하자는 욕구가 강해지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고 강조했다.
또 지구당 위원장 폐지안 백지화 움직임에 반발, 위원장직을 사퇴한 천 의원 역시 “당을 거듭나게 하려는 노력을 끈질기게 기울여야 하지만 최종적으로 개혁이 무산될 때 비상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올지 모른다”며 가세했다. 당 개혁안을 성안하는 데 핵심 역할을 맡았던 이들의 발언은 구주류를 압박해 당 개혁을 마무리지으려는 의도란 분석도 있지만 구주류와의 결별과 신당 창당의 ‘복선’(伏線)으로 보는 견해가 다수다.
온건 성향을 보여온 김원기 고문, 이상수 총장 등 신주류 지도부들의 최근 신당 관련 발언들도 눈여겨볼 대목. 김 고문은 지난달 26일 이해찬 김경재 이호웅 의원, 이강철 대통령 정무특보 등 신주류 핵심인사들과의 조찬회동 후 “당 개혁이 불가능하면 신당 논의가 될 수 있다”며 공개적으로 신당 창당을 거론했다. 비록 “(신당 논의가) 구체적으로 논의된 적은 없다”라는 전제가 붙긴 했지만 김 고문의 발언은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켜 구주류로부터 “김 고문까지 신당 얘기를 꺼내는 걸 보니 신주류의 속셈이 완전히 바닥을 드러냈다”는 반응을 낳았다.
이 총장은 아예 ‘다당제 구도의 정계개편’ 시나리오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 총장은 김 고문의 ‘신당 논의’ 발언이 있던 날 고려대 언론대학원 특강을 통해 “민주적 원리에 의해 정치인의 진입, 퇴출이 이뤄지는 정치시장의 유연화가 필요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다당제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은 ‘정치시장의 유연화’라는 우회적 표현을 통해 구주류 현역의원 물갈이의 당위성과 이를 위해서는 혁명적인 당 개혁 아니면 신당 창당을 통한 새로운 동력 확보가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란 해석이다.
신주류 내 강온 양측이 이처럼 앞다퉈 신당 논의에 나서면서 관심은 이들의 움직임에 노 대통령의 의중, 이른바 ‘노심’(盧心)이 녹아 있느냐에 모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앞서 언급한 인사들 이외에 이강철 대통령 정무특보, 염동연 전 대통령 당선자 정무특보 등 핵심 측근들까지 ‘신당 띄우기’에 가세한 점을 들어 노 대통령이 신당을 가급적 빨리 창당해야 한다는 쪽으로 이미 결심이 섰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신당과 관련해 ‘노심’을 거론하는 것과 ‘조기 창당론’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특히 문희상 비서실장, 유인태 정무수석 등 청와대 정무라인과 신계륜 의원(전 당선자 비서실장) 등 전·현직 보좌진들, 일부 386 핵심측근들은 ‘조기 창당론자’들이 4·24재·보선 등 당면한 정치일정과 내년 4월 총선 전략을 고려하지 않은 채 중구난방식으로 신당설을 거론하고 있는 데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한 측근은 “개혁신당은 궁극적으로는 정치개혁을 위한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지지층 확보가 목적인데 최근 신당 논의는 이와 어긋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특히 미국-이라크전 파병 문제가 매듭되지 않고 있고 새 정부에 대한 국민 지지를 가늠할 지표가 될 4·24재·보선을 앞두고 신당 얘기로 민주당의 분열상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한편 신주류 중심의 신당 논의가 거세지고 있는 데 대해 동교동계 등 구주류측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는 반응 속에 결별에 대비한 물밑 활동에 들어갔다. 구주류측은 우선 신주류 중심의 신당 창당은 시기의 문제일 뿐 기정사실이라는 전제 아래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호남권 구주류 인사들 사이에서는 내년 총선에 독자신당을 만들 경우 최소한 자민련 수준의 의석 확보는 가능할 것이란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동교동계의 한 핵심 중진은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인사 등 모든 면을 보고 있노라면 온통 ‘그들만의 세상’ 만들기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상태로는 노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신주류와의 관계개선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신주류들이 내세우는 당 개혁안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구주류를 몰아내고 자기들만의 당을 만들기 위한 것 아닌가. 지금은 돌아가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단계지만 때가 되면 우리도 입장과 선택을 분명히 밝힐 것이다”고 말해 ‘모종의 결단’이 임박했음을 예고했다.
범 동교동계의 한 의원도 “‘동교동계가 빨리 (당을) 떠나줬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노 대통령 핵심측근이란 자들의 입에서 공공연하게 나오는 판에 더 이상 무슨 얘기가 필요한가. 그들은 진작부터 ‘대선 승리는 노무현 개인의 승리이지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다’고 말해 왔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우리들이 피땀으로 일군 민주당을 먼저 깨고 나가지는 않을 것이며 나가려면 그들이 나가야 할 것”이라며 격앙된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또 “신주류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4·24재·보선이 끝난 뒤 알게 될 것이다. 경기 의정부는 물론이고 특히 ‘민주당 해체’를 주장하는 개혁국민정당 사람에게 연합공천을 주자는 경기 고양 덕양갑에서는 호남향우회 등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들의 이탈조짐이 뚜렷해 이대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가 없는 상황이다. 재·보선에서 지고 난 후에 신주류들이 패인 분석을 어떻게 내놓을지 벌써부터 관심거리다. 아마 그들이 이때까지 해온 행태로 봐서는 ‘개혁신당을 빨리 창당하지 않아 졌다’며 책임을 우리에게 뒤집어씌울 것이 뻔하다. 그것으로 우리와의 관계는 끝이다”고 말해 신주류측과의 결별이 임박했음을 분명히 밝혔다. 박영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