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원섭섭? 정몽구-몽헌 형제(왼쪽부터)가 ‘앓던 이’를 뽑았다. 동생 정몽준 의원의 대선출마 선언 이후 약속 이나 한 듯 해외 출장길에 올랐던 이들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 ||
사실 현대차는 MJ가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지난 9월17일을 전후해 기자회견을 열어 이례적으로 ‘정치중립’을 선언하기도 했다. MJ의 형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9월 말 해외공장 방문이라는 알듯말듯한 구실을 붙여 동남아로 출국한 뒤 장기 귀국하지 않고 있다.
현재 정 회장은 12월3일 모나코에서 열리는 201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선정 투표에 참관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 머물고 있다. MJ의 단일후보 낙마에 반색을 한 사람들은 또 있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이른바 현대라는 이름이 붙은 회사의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들이다.
지난 11월25일, MJ의 낙마소식이 전해진 첫날 서울 증시에서는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해상, 현대상선 등 ‘현대’ 관련 회사들의 주식값이 평균 5% 이상 급등했다.
특히 MJ가 11%의 주식을 보유, 1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의 주가는 전날보다 9% 가까운 1천7백원이나 올라 2만6백원을 기록했다. 현대중공업의 주가는 월드컵을 앞두었던 지난 5월 3만원대를 넘나들었으나, MJ의 대선 출마가 가시화된 지난 9월 이후 폭락하기 시작해 9월에는 1만5천원까지 추락했다.
▲ 후보단일화 경쟁에서 패한 정몽준 의원(왼쪽)과 승리한 노무현 후보가 지난 11월25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회동을 가졌다. | ||
그러나 단일후보 낙마로 인해 사실상 MJ가 대선출마를 포기한 상황이고 보면 투자자들이 두려워했던 먹구름은 사라진 셈이다. 이것이 주가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MJ의 대선출마 선언 이후 가장 크게 속앓이를 했던 형제기업은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차는 MJ의 대선 출마에 대해 “우리는 무관하다”며 정경분리를 주장했지만, 주변에서는 “그래도 형제” “초록은 동색”이라며 따가운 시선을 던졌다.
이것마저 부담이 됐던지 정몽구 회장은 아예 장기 출장길에 올라 현재까지 몇달째 외국에서 불편을 무릅쓰고 호텔밥을 먹고 있다. 현재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파리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정몽구 회장은, MJ의 낙마소식을 비서실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을 전해들은 정몽구 회장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것이라는 게 현대차 안팎의 전언. 주식시장에서도 현대차 주가는 전날보다 6.4%(2천원)나 오른 3만3천1백원까지 급등, 그동안 MJ의 정치적 변수가 이 회사에도 적지않은 부담이었음을 여실히 증명했다. 일단 현대차는 공식적으로 이번 단일후보 결정 결과에 대해 “우리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거리를 두고는 있지만, 앓던 이가 빠졌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실제 현대차 관계자는 “정경분리 선언 직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면서도 “그러나 외부의 시각이 많이 부담스러웠는데, 낙마 이후 곤혹스러운 부분이 많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MJ의 출마가 사실상 무산된 상황이지만, 자신이 창당한 국민통합21이 그대로 존속하고 있는 등 불안요소(재출마 선언 등)가 많다”며 향후 MJ의 행보에 대해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다.
정몽헌 회장측은 정몽구 회장보다 훨씬 반색하는 분위기. 정몽헌 회장은 금강산개발 등 정주영 회장 생전부터 추진했던 대북사업과 관련해 그동안 정치권의 간헐적인 공격을 받아오던 터에 MJ의 대선출마로 융단폭격을 받았다.
실제로 MJ의 대선 출마선언 직후 터진 현대상선의 ‘4천억원 대북지원설’은 경영복귀를 탐색하고 있던 정몽헌 회장의 발목을 결정적으로 잡고 말았던 것. 결국 MJ가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하던 시기를 전후해 미국으로 떠난 정몽헌 회장은 아직까지 귀국하지 못한 채 현지에 머물고 있다.
이 관계자는 “기업인이 정치를 한다는 것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었고, 실제로 현대상선의 경우 가장 피해가 심했다고도 할 수 있다”며 그동안 드러내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했던 부분을 토로했다. 이를 반영하듯 현대상선의 주가는 이날 하루동안 무려 10%가 넘게 올라 주당 2천2백35원을 기록했다.
문제의 하이닉스도 이날 10.23%가 올라 주당 4백85원을 찍었다. 그러나 형제기업들과는 달리 MJ가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의 경우는 표정이 없다. 이리보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저리보면 앞날이 캄캄하기도 한 모양이다. 일단 주식시장에서는 MJ의 낙마가 호재로 작용했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매우 호의적이며, 긍정적이다. 이를 반영하듯 주가가 전날보다 9% 이상이 올랐다. 그러나 주식시장의 반응과는 별개로 회사 내부의 사정은 좀 복잡해 보인다. 현대중공업 홍보실 관계자는 “정 의원이 현대중공업과 더 이상 관련이 없다는 것은 지난 9월 출마선언 직후 이뤄진 일”이라며 “회사 경영을 잘 꾸리는 일 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사 관계자들의 말속에는 과거 정주영 회장이 대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이후 겪어야 했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다시 떠올리는 듯했다. 비록 MJ가 노무현 후보를 지원한다고 했지만, 대선 결과는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희색을 띄우기에도 영 어색한 입장이다.
속마음이야 대선에 출마하지 않아 기업 외적인 변수가 많이 걷혔지만, 대주주인 오너의 꿈이 무산된 부분을 마냥 반길 수 만은 없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노조 관계자는 “회사로 볼 때 MJ가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