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중고등학교의 만학도들이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대전=일요신문] 육군영 기자 = 대전 예지중고등학교 학생회(이하 학생회)가 지난 17일 등교 거부를 선언하고 대대적인 시위 등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학생회는 지난 12일 결의문을 통해 복직 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수업거부 의사를 밝혔으며, 17일부터 학생회의 주도하에 등교거부 및 수업거부를 진행하고 있다.
20일 현재 200여 명의 학생이 수업거부에 동참하고 있으며, 일부 학생들은 복직 교직원에 대한 행정처분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자퇴도 불사하겠다고 결의문까지 제출한 상태다.
한 예지중고등학교 교직원은 “오랫동안 이곳에서 근무했지만 대규모 등교 거부는 개교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라며 “학교를 살리기 위해서는 일단 한번 죽여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 뿔난 학생들, “더 이상의 대화는 없다”
대전의 유일한 학력 인정 평생교육시설인 예지중고등학교는 ‘평생교육법 제31조’에 의거해 교육감 등의 승인을 받아 운영되는 학교로, 학생들은 보통 늦게 교육의 길에 접어든 5~60대의 만학도가 대부분이다.
시위를 진행하는 만학도들은 이번에 복직한 교사 6명, 행정과 교직원 1명 등 7명이 예지재단 편에 서서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협박성 발언과 폭언을 일삼아 왔으며, 이에 반발하면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등을 사유로 고발과 고소를 남발해 학생들로부터 돈을 갈취했다고 주장했다.
예지중고를 담당하고 있는 파출소의 경찰관계자는 “해당 교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소와 소송을 합치면 60건이 넘는다. 최근 12명의 학생을 상대로 고소장을 추가로 접수한 상태”라면서도 “폭력사태가 일어날지 몰라 시위마다 출동하고 있지만,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경찰의 개입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학생회는 “현재 학생을 상대로 진행 중인 고소와 소송에 대해 전면 철회하지 않는 한 타협이나 대화할 수 없다”며 “해당 교사들이 예지 중고에서 물러나기 전까지는 수업거부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 복직 교직원, “우리는 억울하다”
만학도들이 복직교사를 에워싸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비판의 대상이 되고있는 복직 교사들 또한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2016년 1월 5일 대전시교육청에 학교 민원이 제기되면서 학교에 대한 학생과 교사들의 집단 행동이 지속됐고, 이후 교육청은 예지재단의 임원승인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9일 패소하자 자신들의 주장에 편승하지 않았던 교직원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인사 전횡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임시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예지재단으로부터 해고통보, 계약해지통보, 휴직처분 등을 당했으나 노동위원회를 통해 재단 측과 화해하고 올해 5월 1일부터 복직됐다.
한 복직교사는 “지난 패소에 대한 앙갚음으로 재단 편이라며 욕설을 하고 학교에 출근하지 못하게 위협과 방해 행위를 하는 등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이에 합리적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교장을 통해 두 차례의 면담을 요구했으나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복직교사들은 업무방해 행위의 증거를 수집해 재학생과 복학생을 대상으로 가처분 신청을 진행, 일부 인정을 받았으나 이후 만학도들과의 갈등이 더욱 심화됐다.
# “우린 그냥 수업 받고 싶어요” 수업거부에 불만의 목소리도
수업 거부로 인해 비어있는 교실
지난 17일 일요신문의 방문 당시 학생 대부분이 등교 거부 상태였으나 30여 명의 만학도가 등교해 교실을 지키고 있었다.
학교에는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도 학교에 있었으나 오전 수업을 진행하는 교실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시위에 동참하지 않은 만학도들은 “학생회의 시위에 기간제 교사들도 시위에 동참해 수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학생이 한 명이 와도 교사라면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 대전시교육청,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상현 학생회장을 비롯한 학생회 10여 명은 지난 12일 교육청 4층 소회의실에서 설동호 대전시교육감과 만나 일련의 사건에 대해 빠른 해결을 촉구했다.
설 교육감은 예지중고의 문제가 제기되고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뒤늦게 “해당 문제에 대해 변호사 등과 상의할 것”이라며 “이제 이것으로 회의는 끝”이라고 말한 뒤 회의장을 급히 떠나려 했으나 만학도들에게 붙잡혀 40분 가량 고함과 욕설을 들어야 했다.
이후 교육청은 “부교육감과 담당 사무관 등이 예지중고를 직접 방문해 현황을 살펴봤으며 앞으로 조사할 수 있는 게 있을지 다시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그러나 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의 수업에 관한 것은 전부 예지재단과 학교 교장의 권한이라 교육청에서 진행할 수 있는 건 수업권고 정도가 한계”라며 “교육청이 마지막 수단으로 진행한 법정의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는데 이제 와서 예지중고의 운영을 간섭할 방법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갈등조정위원회의 전문가는 현 예지중고의 사태에 대해 “두 집단이 수평적 대립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타협이나 전환점을 맞기도 어려운 구조”라며 “행정민원과 업무방해 가처분 신청, 성추행 고발과 폭언 욕설이 난무하고 있어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예지재단에서 학교의 정상화를 위해 명확한 결단을 내놓을지, 아니면 기적적으로 두 집단 사이에 화해가 진행돼 만학도와 복직 교사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ilyo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