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놈들이 우리 후보를 떨어트리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네. 국정감사 할 때 뭣들 했어?”
김성한이 눈을 부릅뜨고 좌우에 있는 사람들을 쏘아보았다. 김성한은 최고위원으로 정민구 후보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벌써 정민구 후보가 당선이 되면 김성한이 권력을 휘두를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영등포 당사 근처에 있는 전통한식집이었다. 점심 식사는 설렁탕 같은 간단한 메뉴로 하는 것이 보통인데 오늘은 김성한이 한식 풀코스로 준비하여 사람들의 기분이 좋았던 참이었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지난번 대선의 이시영 후보 꼴 나는 거 아닙니까?”
정일문 의원이 덩달아서 소리를 질렀다.
“그때는 병역문제였지. 세금 포탈이나 부동산 투기가 뭐가 대단해?”
“저놈들이 아무리 정 후보님을 공격해도 대세는 이미 결정이 났습니다.”
당직자 출신의 김학인 의원이 김성한의 비위를 맞추려는 듯이 말했다. 김학인이 당의 청년부장이었을 때 김성한이 사무총장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스승이나 다를 바 없었다. 공천도 김성한이 적극적으로 밀었기 때문에 여의도에서는 우스갯소리로 김학인을 ‘김성한의 시다바리’라고 말하고는 했다.
“대세만 믿었다가는 발등 찍혀. 도대체 KOS 사장을 누가 임명했어?”
“그야 방송위원회 추천으로….”
“우리 쪽에서 추천한 사람들이 있을 거 아니야. 어디서 그런 사람을 임명해 가지고 이 난리야? 명색이 우리가 여당인데 KOS가 우리를 공격한다는 것이 말이 돼?”
“KOS 사장이 야당에 넘어간 것이 아닙니까?”
캠프의 의원들은 KOS를 성토하느라고 열을 올리고 있었다. 조한우도 KOS의 태도가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의원들의 말대로 KOS 사장이 야당후보에게 넘어갔다는 말인가. 어쩌면 장관 자리나 국회의원 자리를 보장받았을지 모른다.
‘KOS 사장에게 장관 자리나 국회의원 공천 자리를 보장한다고 해야하는데 틀렸어.’
조한우는 정민구 후보가 여당이지만 여당의 이점을 활용할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선거는 이제 6개월이 남았을 뿐이었다.
“특보단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김성한이 조한우를 쏘아보면서 말했다.
“몇 번 만났는데 조합원들의 반발이 심해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경선도 남아 있지 않습니까?”
조한우가 반발을 하듯이 말했다. 정민구 후보는 유력하지만 여당의 경선 후보일 뿐이었다.
“흥! 그럼 KOS 노동조합도 넘어갔다는 거야?”
“꼭 야당에 넘어갔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 당의 다른 경선 후보와 손을 잡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후보 누구? 우리당에서야 정 후보밖에 더 있어? 여론조사를 해봐도 다른 경선후보들은 두 배 이상 차이가 나잖아?”
“경선을 처음 실시하는 것입니다. 당원들뿐이 아니라 국민들도 참여하기 때문에 어떻게 달라질지 모릅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렇게 자신이 없어서 어떻게 해?”
김성한이 더 이상 말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때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므로 대화가 잠시 끊겼다. 조한우는 김성한과 식사를 마치자 여의도 캠프 사무실로 돌아왔다. 캠프 사무실은 상황판을 마련해 놓고 경선 준비를 하느라고 분주했다.
“후보께서는 어디 계시나?”
조한우는 담배를 한 대 피운 뒤에 커피를 가지고 오는 미스 송에게 물었다.
“21세기 청년포럼에서 오찬을 하고 계십니다.”
미스 송은 항상 정민구 후보와 연락을 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몇 시에 들어오실 것인지 확인해 봐.”
조한우는 미스 송에게 지시하고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주었다. 텔레비전 뉴스는 대통령 아들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다. 전 대통령 아들도 문제를 일으켰는데 이번 대통령 아들도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켜 대통령이 사과를 해야 했다. 대통령은 언론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고 언론은 복수를 하듯 대통령 아들의 비리를 낱낱이 까발렸다. 정민구 후보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대통령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 바람에 대통령과 잘 만나지도 않고 대통령의 언론정책이 문제가 있다거나 대통령 아들이라도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기자들에게 입장을 말하고는 했다. 국민들에게 대통령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김성한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대통령과 등을 져서는 안돼.’
KOS가 정민구에게 불리한 방송을 하는 것은 사장이 대통령 아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인지 몰랐다.
미스 송이 조한우의 방에 들어와서 말했다. 조한우는 정민구 후보의 경제 담당 수석 특보였다.
“청년 포럼이 끝나면 어디로 가시지?”
“3시에 조계사 방문, 4시에 오성그룹 부회장과의 비밀 면담이 있습니다.”
오성그룹 부회장 면담은 정치자금 때문이다. 후보가 직접 재벌그룹 부회장을 만나는 것은 나중을 위해서도 좋지 않은데 자금이 경색되어 있어서 후보가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저녁식사는 누구랑 예정되어 있어?”
“6시에 천안에서 하실 예정입니다.”
“강행군이시군.”
조한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집에 있는 아내 주애란이 걱정이 되었으나 그가 작성한 정세분석보고서를 전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조계사로 갈 거야. 연락할 일이 있으면 휴대폰으로 해.”
조한우는 미스 송에게 지시하고 서류를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김성한과 식사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이미 2시 30분이 지나 있었다. 여의도에서 조계사까지는 30분이면 충분하다. 모범택시를 잡아타고 조계사로 향했다. 아내 주애란의 얼굴이 다시 떠올라왔다. 양평 시골에서 6개월을 머물면서 금단증상과 처절하게 싸웠던 주애란은 상당히 호전되었으나 지금도 때때로 환각에 시달리고 있었다.
‘제기랄, 차는 왜 이렇게 밀리는 거야?’
여의도를 나와 공덕동을 지나는데 차들이 꽉 막혀 있었다. 조한우는 3시 20분이 되어서야 간신히 조계사에 도착했다.
“조 특보님, 여기는 웬일입니까?”
정민구 후보는 조계사에 도착하여 종정 스님과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조한우가 헐레벌떡 차에서 내리자 정민구를 수행하는 이종민 비서가 다가와서 물었다. 정민구 후보를 따르는 몇 명의 기자들도 보였다.
“후보님을 좀 만나야 할 것 같아서 왔습니다.”
“지금은 곤란합니다. 이따가 후보께서 캠프에 들르지 않습니까?”
“오성그룹 부회장을 만나기 전에 내가 좀 만날 수 없을까요?”
“공식적인 스케줄인데 시간을 비울 수가 없습니다.”
“그럼 천안에 가실 때 내가 후보님과 단독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실장님도 빼놓고요?”
수행 비서실장은 유광우였다. 김성한의 처남으로 대학 강사 출신이었다.
“기왕이면 그렇게 해주십시오. 후보께서 지적해서 옆에 타게 말입니다. 유 실장하고 사이가 틀어지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이종민은 정민구 후보의 보디가드였기 때문에 항상 옆에 붙어 있었다.
조한우가 정민구 후보의 옆에 탈 수 있었던 것은 4시 40분이었다.
“캠프에 내가 갈 건데 무슨 급한 일이 있습니까?”
정민구는 특별 면담을 신청한 조한우를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에 오랫동안 검찰생활을 하고 재야 변호사로 활동했기 때문에 여전히 엘리트의 분위기가 풍겼다. 같은 양복을 입어도 다른 정치인들보다 훨씬 세련되어 보이는 것이다.
“정세분석보고서입니다. 천안에 가시면서 훑어보십시오.”
“그렇게 급한 거요?”
“의문사항이 있으면 전화를 주십시오. 저는 천안까지 모시지 않을 테니까 중간에 내려주시고요.”
“그럽시다. 그런데 뭐가 문제요?”
“대통령입니다. 경선이 끝날 때까지는 대통령과 절대로 등을 져서는 안 됩니다.”
“왜 그렇소? 대통령과 차별성을 두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지가 않습니다. 자세한 보고는 서류로 보십시오.”
정민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조한우는 정민구가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서기 전 압구정동에서 내려주자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수많은 차량에 묻혀가고 있는 정민구 후보의 차를 보자 어쩐지 아주 먼 길을 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