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대한항공이 이 제도를 도입하게 된 것은 항공 이용횟수를 늘리고, 고객들을 유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제도 시행 이후 보너스제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영업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말이 개편이지 대한항공이 생각하는 것은 누적된 무료 항공이용 거리를 줄이겠다는 것. 따라서 그간 마일리지 적립으로 공짜 항공기 티켓을 받았던 고객들의 특혜가 줄어들어 반발도 거셀 전망이다.
이 문제는 비단 대한항공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아시아나 항공도 조만간 자사의 마일리지 서비스인 아시아나클럽의 대대적인 손질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코너에 몰린 두 항공사가 사전에 타협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스카이패스 제도는 대한항공이 고정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1984년 아시아 국가 항공사로서는 최초로 실시한 마케팅 제도. 스카이패스 회원으로 가입되면 누적된 항공 마일리지에 따라 공짜 티켓은 물론, 좌석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등 각종 혜택이 주어지는 제도다.
보통 한국-미국을 왕복할 경우 국내에서 쓸 수 있는 무료항공권이 한 장 주어질 정도. 이 제도는 도입초기에는 별 호응을 얻지 못했으나, 대한항공측의 적극적인 홍보, 신용카드회사와의 제휴를 통한 신규회원 확보 등으로 매년 1백만명 이상씩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 제도를 내놓은지 18년 만에 대한항공은 두손 두발을 다 들고 말았다. 고객에게 돌아가는 혜택 만큼의 손실분을 고스란히 대한항공이 떠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대한항공이 내놓은 전면 개정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과거에는 마일리지 누적이 5만5천마일이면 한국-미국행 무료 티켓을 받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7만마일이 돼야 한 장을 얻을 수 있다. 또 좌석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경우에도 예전에는 보유한 마일리지에서 3만5천마일을 삭감하면 가능했으나, 이제는 6만마일을 공제해야 된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그간 이 마일리지 서비스를 이용했던 고객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필요할 때 가입시켰다가 이제 와서 도로 뺏어가는 것은 고객을 기만한 행위나 다를 바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항공이 이같은 극약처방을 내린 배경은 우선 세계 경기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 위기 등 불안한 국제정세로 인해 항공보안에 따른 안전비용부담과 보험료의 증가 등 항공사의 안정적인 경영에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
그러나 이같은 외부적인 요건 외에 국내 항공사의 지나친 고객확보 경쟁도 한 요인이라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간단히 말해 대한항공의 ‘후한 인심’이 문제였던 것.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제도는 유효기간이 없이 평생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외국항공사의 경우 아메리칸 에어라인은 3년, 에어프랑스 3년, 일본항공 2년 등으로 마일리지 유효기간을 정해놨으나, 대한항공은 평생 사용할 수 있게 했던 것.
이렇게 되자 돈을 내고 항공권을 구입해야 하는 고객의 수가 점차 줄기 시작했고, 무임승객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제값을 주고 항공권을 구입하는 고객이 이용할 수 있는 항공좌석이 모자랄 지경에 이른 것이다.
특히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미주노선의 경우, 비수기에조차 좌석을 구하기 힘든 만성적인 좌석난에 시달려야 했다는 게 대한항공 관계자의 설명. 게다가 지난 95년부터 경쟁적으로 고객 확보를 위해 카드사와 제휴를 맺은 것도 문제였다. 이는 대한항공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카드 사용액이 어느 선에 이르면 일정 마일리지를 적립해 줌에 따라, 공짜 티켓을 얻는 고객들이 급증했기 때문.
결국 지난 84년 6천명이었던 스카이패스 회원은 1990년에는 31만명, 1995년에는 2백67만명, 2000년에는 7백53만명으로 늘더니 급기야 올해는 9백50만명으로 늘어났다.
아시아나의 아시아나클럽 회원들을 합치면, 그 규모는 2천만명 선에 달한다는 것이 대한항공측의 설명이다. 복수회원을 제외하더라도 어림잡아 국민 3명당 1명은 마일리지 카드를 보유하고 있는 셈. 결국 대한항공은 지난해 마일리지 충당금을 4백70억원이나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이에 드는 비용이 최소 5백억원에서 최대 8백억원 규모여서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대한항공의 매출은 1조1천8백억원. 하지만 순익은 6천2백억원 적자(지난 2000년에는 5천1백억원 적자)였다. 대한항공이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대한항공측은 하지만 “여전히 마일리지에 유효기간을 정하지 않았고, 또 동남아시아 여행의 경우에는 오히려 종전보다 낮은 마일리지로 무료 항공권을 받을 수 있어 무조건 축소한 것은 아니다”며 해명을 하고 나섰다. 그러나 실제로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