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한 고문서들
[경남=일요신문] 박영천 기자 = 국립 경상대학교(GNUㆍ총장 이상경)가 고문헌 ‘전문’ 도서관 건립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개관 이후 10개월 남짓 기간 동안 지역민으로부터 기증ㆍ기탁받은 고문헌이 3000점을 넘어섰다.
경상대학교 도서관(관장 장봉규 교수)은 지난 2월 21일 전국 대학으로서는 최초로 ‘고문헌 도서관’을 개관했다. 경남지역 민간에 흩어져 있는 고문헌을 체계적으로 수집ㆍ보존하고 연구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고문헌 도서관 개관 후 올 한해 동안 지역민으로부터 고문헌 3000여 점을 기증ㆍ기탁 받는 실적을 달성했다. 모두 소장자가 애지중지하며 기증을 보류해 오던 문화재급 고문헌들이다.
지난 3월 23일에는 경남 산청 신등 서정현 씨가 ‘완문(完文)’ 등 고문헌 17점을 기증한 데 이어, 6월 25일에는 산청 단계 김동준 씨가 해기 김령, 단계 김인섭 선생 관련 고문헌 633점을 기증했다.
김동준 씨는 2004년 9월 고서 1142권을 기증한 바 있다. 그러나 문중 소장 문화재는 그동안 기증을 보류해 왔었다. 고문헌 도서관을 개관하자 문중 고문헌 문화재 기증을 결심한 것이다. 이번에 기증한 고문헌은 단계선생 일기와 단계집 목판 등 문화재로 지정된 귀중한 자료다.
8월 27일에는 경남 하동 하유집 씨가 담헌 하우선 선생이 강학하던 사산서당(士山書堂) 소장 고문서 등 45종 2110점을 기증했다.
하유집 씨도 2015년 7월에 고서 1361권과 일반도서 771권을 기증한 바 있다. 그러나 선조의 손때가 묻은 사산서당 소장 고문서는 기증을 보류하고 있었다. 역시 고문헌 도서관이 개관하자 경상대학교에 일괄 기증했다.
10월 2일에는 진주시 금산면 변종찬 씨가 1820년경부터 일제강점기 때까지 금산면 석교마을 거주 초계변씨 문중 관련 초계변씨 족보와 호구단자ㆍ산송(山訟) 고문서 등 116점을 기증했다.
11월 22일에는 경남 산청 최복경 씨가 조부 최지민 선생이 소장했던 고문헌 50여 권 중 학술 가치가 있는 ‘동성승람’ 등 고서 15권을 선별하여 기증했다. 기증 문중은 경남 사천시 풍정리에 세거해 왔었다.
12월 18일에는 안성효 회장이 일제강점기 때 유림 조직을 결성해 전국적인 유교 부흥 운동을 펼쳤던 진주 도통사 소장 왕실 화가 채용신이 그린 공자와 주자의 영정 2점을 영구기탁했다.
12월 26일에는 경상대학교 국어교육과에서 1986년 배달말학회가 합천 해인사 소장 목판으로 인쇄한 고문헌 17종 100권을 기증했다.
이처럼 경상대학교 고문헌 도서관에 고문헌 기증ㆍ기탁이 활발한 이유는 고문헌 도서관이 우수한 시설과 오랜 기간 축적된 고문헌 운영ㆍ관리 능력을 두루 갖춘 덕분으로 분석된다. 이제 고문헌 도서관이 경남지역 역사자료 수집ㆍ보존 대표기관으로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 고문헌을 기증한 하유집 씨는 “아무리 가치 있는 문헌이라도 개인이 보관하다 보면, 전혀 활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훼손ㆍ도난 등의 우려가 있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없어지고 만다. 제때 기증하지 않다가 도난당해 땅을 치고 탄식하는 사람이나 가문도 여럿 보았다. 고문서야 내 살아 있을 때 눈 부릅뜨고 지키면 되지만, 죽고 나서 후손들이 서적을 팔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문중 고문헌을 누구나 열람해 연구에 활용되게 하려고 대학에 기증했다”며 기증 경위를 설명했다.
고문헌 기증자(서정현, 김동준, 하유집, 변종찬, 최복경, 안성효)
경상대가 이번에 기증받은 자료는 분량도 많지만, 문화재급 귀중 역사자료가 대거 포함되어 있다. 기증받은 자료를 간략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 단계선생일기(김동준 기증): 단계 김인섭 선생이 13세 되던 1839년부터 77세 되던 1903년까지 64년 동안 썼던 일기로, 총 29권 분량이다. 김인섭 자신이 읽은 책, 교유관계 및 살림살이 등의 내용뿐만 아니라, 19세기 당시의 농촌사회의 모습, 단성 농민항쟁 발발 직전 농민들의 동향, 그리고 민란이 진정된 뒤 새로 부임한 단성현감과의 마찰 등이 기록돼 있다. 조선 후기 사회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7호다.
▲ 간정일록(艱貞日錄, 김동준 기증): 단계 김인섭의 부친 해기 김령 선생이 단성농민항쟁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1862년부터 1863년까지 1년 7개월간 전라도 임자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기록한 일기이다. 섬 생활과 풍습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그간 역사에서 소외되어 있던 섬 지방 연구와 유배 생활 연구에 아주 중요한 역사자료다.
▲ 역대천자문(김동준 기증): 단계 김인섭의 부친 해기 김령 선생이 1862년 임자도에 유배를 와 1863년 음력 2월 임자도 박윤량의 초가에서 완성한 책이다. 기존 천자문을 거부하고 천지개벽부터 조선 건국까지의 역사를 독창적인 관점으로 저술한 책이다.
▲ 단계집 목판(김동준 기증): 단계 김인섭 선생이 1903년에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지 5년 후인 1908년에 문인들이 선생의 유고를 모아서 14권 7책 목판으로 간행할 때 판각한 것이다. 580매 분량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8호다.
▲ 종천서원화변록(宗川書院禍變錄, 하유집 기증): 조선 후기 서인과 남인의 싸움으로 확대되어 종천서원에서 겸재 하홍도 선생의 위패를 몰아낸 사건의 전말을 기록한 중요한 책이다. 후손 하달성이 편찬한 책이다.
▲ 사산서당 고문서(하유집 기증): 진양하씨 가문의 대표 인물 겸재 하홍도와 낙와 하홍달 때부터 당시 저명한 유림들과 주고받은 것으로 45종 2110점에 달하며, 약 400년 간의 기록이다. 겸재는 남명 이후 제일이라 일컬어지는 학자였다. 간찰(簡札:한문으로 된 편지)이 대다수다. 당시 유림과의 교유 등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 동성승람(東城勝覽, 최복경 기증): 동성은 경남 사천의 옛 지명이다. 이 책은 1936년 최도민이 사천의 토산물ㆍ누정ㆍ사찰ㆍ인물ㆍ민속ㆍ전설 등을 엮은 인문지리지로, 사천의 현황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귀중한 역사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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