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유 하나은행장 | ||
시중은행장들이 이같이 편한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국내 금융권 전반에 드리워진 불안감을 그대로 반영한 대목. 과거 ‘철밥통’으로 불렸던 은행이 요즘 들어 ‘생존권’을 두고 치열하게 싸워야 할 정도로 변해버린 금융환경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요즘 은행은, 외부에서 보기에는 조흥은행의 정부 지분 매각을 둘러싼 논란을 제외하고는 별 다른 이슈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정작 해결된 일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구조조정을 끝내고 ‘이젠 살았다’며 한숨 돌리고 있던 은행들은 점점 규모가 큰 은행들의 합병이 속속 이뤄지자 또다시 생존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 것.
하이닉스의 금융권 부채 등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시한폭탄처럼 터질 시각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은행들의 주가 역시 제자리를 맴돌고 있고, 가계 부채 및 카드연체 금액이 나날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공통적인 문제 외에도 당장 해결해야 할 난제들도 적지 않다. 일부에서는 현 정부가 안은 모든 금융문제를 은행장에게 떠안겨 놓았다고 불만을 터트리기도 한다.
▲ 홍석주 조흥은행장 | ||
김 행장의 고민거리는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이 은행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하나은행이 국민, 우리은행에 이어 자산규모 총 87조원의 우량기업으로 탄생했지만, 아직도 예금보험공사가 전체 지분의 30.94%를 보유하고 있다. 하나은행측은 이 지분을 해외투자가에게 매각할 계획을 세우고 있으나 성공 여부는 아직도 불투명한 상황.
게다가 구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의 재무구조상의 취약점도 김 행장의 골치를 썩게 할 것이라는 얘기가 오간다. 과거 하나은행은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고금리의 후순위채권을 마구잡이로 발행했다. 결국 이는 조달비용이 높은 자산이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서울은행이 주인없이 표류하는 동안 고객, 직원들이 대거 이탈했다는 점도 통합은행이 떠안아야 할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김 행장의 경우는 합병을 마친 뒤이기 때문에 그나마 ‘행복한 고민’에 들어간다.
▲ 이덕훈 우리은행장 | ||
홍 행장은 “나는 엄밀히 말해 주주대리인”이라며 “나에게는 직원과 조직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정부에 의견을 개진할 권한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홍 행장의 단호하고도 곤혹스러운 입장이 담겨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 조흥은행 매각 문제는 정치권으로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
이외에도 홍 행장은 조흥은행 매각과 관련, “조흥은행 지분 매각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며 “매각은 해야하나, 지금의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조흥은행의 매각과 관련해 이덕훈 우리은행장 역시 고민이 많기는 마찬가지. 우리은행은 현재 자산규모가 87조원가량으로 국민은행에 이어 국내 2위의 대형 은행이다. 그러나 조흥은행의 매각결정 여부에 따라 순위변동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는 우리은행이 국민, 합병 조흥은행에 이어 3위로 뒤처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 같은 이유 때문인지, 우리은행 관계자들은 조흥은행 매각과 관련해 무척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우리은행 홍보실 관계자는 “우리가 조흥은행에 관해 왈가왈부할 입장이 아니다”며 “영업수익률을 높이는 것 외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속내를 살펴보면 좀 다르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또 다른 우리은행 관계자는 “조흥은행 매각 여부에 따라 우리의 업계 순위가 달라지기 때문에 실시간 동향을 체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행장 역시 조흥은행 매각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는 있지만, 겉으로는 담담한 척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 막 시작된 올해 겨울이 행장들에게는 가장 긴 시간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