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지난 14일 금융지주사 체제로 다시 출범했다. 우리금융지주가 민영화를 위해 2014년 10월 우리은행과의 합병으로 해체된 지 4년 3개월 만이다. 기존 KB, 신한, KEB하나, NH농협에 우리금융지주가 가세하면서 국내 금융업계는 5대 금융지주 체제로 재편됐다.
경쟁 심화를 예상한 각 지주사들이 최근 새 경영 전략을 수립했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그중에서도 특히 M&A 전략에 주목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향후 지주사들이 공격적으로 M&A 시장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단순 덩치 키우기에 그치지 않는다. 거창하게 들릴 수 있어도 이번 M&A 경쟁이 한국 금융업의 새 전환점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누군가는 왕좌를 지켜야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를 탈환하거나 격차를 좁혀야하는 상황”이라며 “경쟁이야 늘 있었지만 이번엔 다르다. 수성이든 탈환이든 기존 사업방식만 유지해서는 불가능하다는 걸 모든 지주사들이 알고 있다. 결국 체질을 바꿔야하는데, 지주사들은 그 방법 중 하나로 M&A를 꼽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우리금융지주는 서울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에서 우리금융 출범식을 가졌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사진=우리금융
# M&A 뛰어드는 배경은 고질적인 ‘은행 의존도’
지난해 금융지주들은 매 분기 사상 최대 규모의 실적을 냈다. 특히 KB, 신한, KEB하나, NH농협과 우리은행이 기록한 3분기 누적(1~9월) 순이익은 10조 3848억 원이다. 2017년 연간 순이익(10조 6385억 원)에 가까운 실적으로, 한 해 장사를 9개월로 단축했다. 지금까지 2017년이 연간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을 낸 해였으나 금융권에선 조만간 발표될 2018년 4분기 실적이 더해지면 한 번 더 이 기록이 경신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지주사들의 ‘실적 잔치’가 주력 계열사인 은행의 ‘이자 장사’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KB, 신한, 우리, 하나, 농협은행의 2018년 3분기 누적 이자이익은 20조 5990억 원으로 처음으로 20조 원 문턱을 넘어섰다. 국민은행이 4조 5122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우리 4조 1972억 원, 신한 4조 1289억 원, 하나 3조 9252억 원, 농협 3조 8355억 원 순이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출 금리가 빠르게 올랐고, 상대적으로 예금 금리는 천천히 올라 예대금리차(대출 금리와 예금 금리 간 차이)가 커졌다”며 “웬만한 시중은행들은 예대금리 차이가 1% 포인트만 돼도 약 2~3조 원대 이자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큰돈을 쉽게 벌 수 있는 만큼 지주사들의 사업 의존도도 은행에 집중돼 있다. 금융감독원과 금융권 자료를 종합하면, 국내 지주사들의 총이익에서 은행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87%(3분기 누적)다. 가장 의존도가 높은 곳은 하나금융지주다. 하나은행의 수익비중이 94.2%를 차지한다. 낮은 곳은 NH농협금융지주로, 은행의 순이익 비중이 59.1%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앞서의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지주들이 은행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만큼 은행 수익 비중이 높은 건 당연한 일이지만, 통상 의존도가 40~50% 가량을 기록하는 글로벌 금융사와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며 “그만큼 사업을 다각도로 전환하는 것도 늦었고, 높은 이익률에도 해외에선 저평가 받고 있다. 최근 디지털 전환과 해외시장 진출을 가장 큰 과제로 꼽고 있는 금융지주사들에게는 이자 이익은 ‘독이 든 성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 금융권에 떠오른 ‘비은행M&A=성공’ 공식
국내 주요 은행 CEO들은 최근 신년사 등을 통해 올해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특히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태영 은행연합회장은 “올해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경쟁 환경이 빠르게 바뀌면서 미래 전략을 세우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고,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 역시 “강력한 DSR 규제 여파로 가계대출 증가세는 둔화되고, 한은 기준금리가 인상돼도 순이자 마진의 증가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연구원 역시 2019년 ‘은행산업 전망과 경영 과제’ 보고서를 통해 올해 국내 은행의 당기순이익을 지난해 보다 2조 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 등 시중은행들도 올해 대출자산 성장률 목표치를 지난해(6~8%)보다 절반 가까이 낮춰 잡았다.
이에 따라 은행들이 선택한 새 경영 전략이 ‘비은행 M&A’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단순히 몸집을 불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은행에 지나치게 집중된 사업 구조를 증권, 보험 등 비은행 부문으로 넓혀서 수익을 다각화하는 게 목표다. 앞서의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금융환경 변화로 단순 금융업계 간 교류를 넘어 융합하는 단계로 들어선 만큼 M&A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수 년 사이 ‘비은행 M&A’가 업계 1, 2위를 뒤집는 ‘마법’을 보인 것도 주목할 점이다. KB금융은 지난 2014년부터 우리파이낸셜(현 KB캐피탈),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현대증권(현 KB증권), 현대저축은행(현 KB저축은행) 등을 인수합병하며 덩치를 키웠다.
그 결과 KB금융지주는 2017년 자산은 물론 순이익 기준으로 2008년부터 줄곧 ‘왕좌’를 차지해 온 신한금융을 제치고 금융지주 1위에 올라섰다. 하지만 신한금융이 지난해 자산기준 6위 생명보험사인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를 2조 2989억 원에 인수하는 등 반격에 나선 것과 동시에 비은행 부문 수익도 빠르게 늘리면서 올해 2년 만에 순위가 다시 바뀔 것으로 금융권은 전망하고 있다. 그밖에 NH농협금융은 지난 2014년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을 인수하면서 수익 의존도를 증권 부문으로 분산하는 데 성공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 사진=KB금융
# M&A 시장 큰 손은 우리은행, KB‧하나금융도 인수합병 카드 만지작
향후 가장 공격적으로 M&A 시장에 뛰어들 금융지주사는 우리금융지주다. 우리금융은 4년 전 은행 체제로 전환하면서 증권, 보험 등을 매각했다. 우리은행은 은행법상 출자가 자기자본의 20%로 제한됐지만 지주로 전환되면서 출자 한도가 130%까지 확대됐다. 우리금융이 동원할 수 있는 ‘실탄’은 7조 원 수준이다. 손태승 우리은행장은 지난 14일 출범식에서 “비은행 부문의 역량을 키워 자산 기준으로 은행과 비은행 부문의 비중을 7대3 내지 6대4로 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한금융의 반격으로 1위 수성이 위태로운 KB금융 역시 재반격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실제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지난해 말 취약한 생명보험 부문 강화를 위해 M&A에 나서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당장 KB금융에 걸맞은 매물이 없다는 판단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지만 조만간 새로운 빅딜을 성사시킬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나금융도 보험이나 증권사 인수에 꾸준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 금융지주사들의 M&A 대상으로는 자산운용, 부동산신탁, 캐피탈 등이다. 현재 시장에 나온 매물은 부동산신탁사인 국제자산신탁, 무궁화신탁, 코리아신탁 등이다. 자산운용사는 하이자산운용이 꼽힌다. 보험사는 KDB생명, 동양생명, ABL생명, MG손해보험, 롯데손해보험 등이 매물로 거론된다.
여기에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가 금융회사의 핀테크 기업 출자 활성화를 추진하면서 금융지주나 은행이 핀테크 업체를 직접 소유하거나 출자할 수 있는 방안이 허용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현재는 지주사들이 핀테크 업체와 제휴를 맺거나 제한적으로 출자를 하고 있다. 금융업계에선 이 경우 5대 금융지주사 모두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전환 전략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대해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법 개정 절차가 남아있는 만큼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면서도 “핀테크 업체 인수가 가능해지면 확실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