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거제시청에서 진행된 기자회견 모습. 사진 제공=거제시장적폐백서간행위원회
‘거제시장적폐백서간행위원회’(백서간행위)는 16일 거제시청에서 이른바 ‘현대산업개발 70억 뇌물사건’에 대한 신속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백서간행위는 거제지역 시민사회와 노동자 등이 연대해 만든 단체다. 이들은 앞서 지난 8일 경남도청에서도 이와 관련한 회견을 가진 바 있다.
백서간행위는 회견에서 “지방권력의 비리 의혹을 드러내 진실을 밝히고 경계로 삼기 위해 지난해 7월 600쪽이 넘는 ‘거제시장 적폐백서’를 발간했다. 적폐백서에 담긴 ‘현대산업개발 70억 뇌물사건’은 범죄혐의가 명백함에도 철저한 수사가 진행되지 않은 채 무마돼 여전히 의혹으로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현대산업개발은 거제시가 2008년 발주한 160억 원 규모의 하수관 정비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44억 7200만 원의 공사대금을 편취한 사실이 적발됐다.
관련자 15명이 사법처리된 것과 함께, 현대산업개발은 거제시로부터 ‘5개월간 관급사업 입찰 제한’이란 행정처분도 받았다. 입찰 제한 범위가 전국이어서 확정시엔 1조 원이 넘는 손실이 우려되는 강력한 행정처분이었다. 그러자 현대산업개발은 소송으로 맞섰다. 1심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이 이겼지만, 항소심에서는 반대로 거제시가 승소했다.
이후 소송은 대법원까지 이어지며 3년 넘게 진행됐다. 그런 가운데 현대산업개발이 최종 선고를 앞두고 돌연 소송을 취하했다. 이와 함께 거제시에 70억 원 상당의 공익사업을 제안하며 행정처분 감경을 요청했다. 거제시는 이를 받아들여 입찰참여제한 처분을 당초 5개월에서 1개월로 대폭 감경해줬다.
특혜 시비 논란이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시민단체는 당시 권민호 시장 등을 ‘제3자 뇌물공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은 현대산업개발의 제안이 공익 목적이 크고, 70억 원 증여로 인해 사익을 취할 대상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로 결론지었다. 이후 시민단체가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지만 이 역시 기각됐다.
1차 고발 건이 무혐의 처분되자 거제지역 시민단체가 이번엔 담당 검사까지 포함해 재고발에 나섰다. 시민단체는 지난해 ‘거제시장 적폐백서’를 발간할 목적으로 백서간행위를 구성하면서 6월 26일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뇌물공여약속죄), 권민호 전 거제시장(뇌물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K 부장검사(특수직무유기죄)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수사는 고발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검찰은 그동안 해당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서 통영지청으로, 다시 창원지검으로 이첩하며 담당검사를 다섯 차례나 변경했다. 이에 백서간행위가 수사촉구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백서간행위는 “해당 사건은 자발적 사회공헌이라는 허울 좋은 형식을 갖췄지만, 재벌기업이 뇌물공여를 약속하고 지방권력이 처벌을 감면해준 명백한 뇌물사건”이라며 “이런 사건을 두고 담당 검사를 다섯 번이나 바꾸면서 시간을 끄는 것은 재벌을 비호하고 제 식구를 감싸기 위한 노골적인 수사회피이자 직무유기”라고 밝혔다.
이어 “서민의 생계형 범죄에는 서릿발 같고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행사에 대해서는 가혹하기 그지없는 검찰이 재벌에 대해서만 이토록 관대하다면 이는 국민의 불신을 스스로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검찰은 뇌물사건 피의자를 즉각 소환 조사하고 범죄 혐의를 명명백백하게 밝혀 처벌해야 한다. 이것만이 거제시민의 요구에 부응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권민호 전 시장은 이와 관련 “계약법 상에 명시된 계약심의위원회에서 1개월로 감경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결정된 사항을 시장이 번복하면 이게 오히려 독단이고 월권이 된다”며 “곧 보궐선거(고 노회찬 의원 지역구)에 나선다. 선거에 앞서 이렇게 논란을 부추기는 것은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