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환 전 대표(왼쪽), 김중권 전 민주당 대표 | ||
김윤환.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정치계의 한 켠에서 ‘킹메이커’ 역할로 주가를 올렸지만 지금은 암 투병중이다.
김중권. DJ정부 초대 비서실장이었지만 대선 때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사이에서 끝까지 중립을 지킨 뒤 잠잠하다.
박태준. 정·재계에서 화려한 꽃을 피웠지만 몇몇 오점과 오류로 빛바랜 말년을 보내고 있다.
박찬종. 92년 대선에서 단기필마로 ‘바바리 선풍’을 일으켰고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지만 쓴잔을 마셨다. 대선 이후 무대에서 ‘사라진’ 정계 인사 4인의 요즘을 살펴봤다.
김윤환 전 대표(아호 허주)는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최근 5년 동안 그의 행보는 가시밭길 바로 그것이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사정 대상으로 몰려 고생을 했다. 그리고 그의 모든 것을 걸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로부터 충격적인 ‘배신’을 당했다. 그 아픔을 딛고 민국당을 창당했지만 16대 총선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 뒤 지난 대선에서 그가 그토록 ‘미워했던’ 이회창 후보를 공개지지하면서 마지막 재기의 승부수를 던졌지만 이 후보가 패배함으로써 또다시 ‘철새’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허주는 지금 미국에서 투병중이다. 지난 1월20일 신병치료차 LA로 가 있다. 허주는 지난해 12월20일 몸에 부종이 심해 서울 연세대의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같은달 27일 척추에 생긴 혹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그 뒤 올해 1월7일 신장 한 쪽을 절제하는 2차 수술을 받은 바 있다.
당시 허주는 시한부 생명이라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병세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이 사실은 서울고법 형사 10부에서 열릴 예정이던 그의 알선수재 혐의에 대한 항소심이 연기됨에 따라 전해졌다.
허주의 병세는 지금 많이 호전됐다고 한다. 그의 한 측근은 “지금은 병이 많이 나아진 것으로 안다. 비록 한 쪽 신장은 떼어냈지만 다른 한 쪽은 정상이다. 그리고 미국 의료진들은 암이 다른 신장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약 3개월 치료 일정으로 갔는데 예정대로라면 4월 말이나 5월에 귀국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허주는 지금 프로골퍼로 활약하고 있는 딸 윤경씨의 LA 집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허주는 정계를 완전히 떠난 상태다. 지난해 12월 말 갑자기 찾아온 병 때문에 운영하던 을지로의 개인사무실도 정리했다. 민국당에도 탈당계를 제출한 뒤 정계와 인연을 끊었다.
김동주 민국당 대표대행은 “허주와 가끔 안부인사를 나누고 있다. 치료가 완전히 끝나야 귀국하지 않겠나. 하지만 허주가 다시 당으로 복귀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허주의 또 다른 측근도 “그는 미국으로 갈 때 모든 신변정리를 완전히 끝낸 상태였다. 사실상 정계를 완전히 은퇴했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92, 93년과 96년 건설업체들로부터 국회의원 공천 등을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01년 2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12월로 예정됐던 항소심 공판에서는 대선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선고가 연기됐다. 그러다가 신병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해 또다시 재판이 연기된 상태다. 그의 여생이 더 험난할지는 재판 결과에 달려 있다.
김중권 전 민주당 대표는 대선기간 거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다. 대선 직전 여권이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때도 김 전 대표는 중립을 굳게 지켰다.
요즘 김 전 대표는 서대문에 있는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 거의 매일 나오지만 뚜렷한 정치적 행보는 없다. 하지만 김 전 대표가 정치를 그만둔 것은 아니라는 게 측근의 전언이다.
김 전 대표는 지난 1월 말 기자와의 만남에서 “기대반 우려반으로 정치권의 변화를 바라본다”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역할론’(국민·지역 통합)을 언급하기도 했다.
최근 한 측근인사는 “내년 총선에 김 전 대표가 출마할 것”이라며 단지 지역구가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본래 지역구인 경북 봉화·울진이나 (검찰)지청장 근무를 했던 청송·영양·영덕을 고려했으나 지난 2월4일 울진·영덕이 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 후보지로 발표되면서 여론이 악화돼 김 전 대표가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
또한 TK의 대표성을 갖는 대구 지역도 생각하고 있으나 한나라당 성향이 여전한 데다 지하철 화재참사로 민심이 흉흉해 섣불리 입장 표명도 할 수 없는 처지라고 한다.
김 전 대표는 최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아직 이런저런 얘기를 할 상황이 아니다”면서 “가을쯤 정치권에 변화가 오지 않겠느냐”고 말해 정계개편과 총선이 본격화될 때 거취 표명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박태준 전 총리(왼쪽), 박찬종 전 의원 | ||
그는 지난해 11월26일 “문민·국민의 정부는 실패한 정권”이라며 사실상 이 후보를 공개지지한 바 있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가 승자가 되면서 박 전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극도로 위축됐다. 이후 박 전 총리는 측근들에게 “정치에서 벗어나 여생을 보람된 일에 쓰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3월24일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발전연구기금회’ 고문 자격으로 ‘중국 발전 고위층 포럼’에 참석한 뒤 “정치인보다는 포철 건설자로 기억되는 것을 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해 정치와 선을 긋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실제 박 전 총리의 한 측근은 “앞으로도 정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그의 거취를 가늠케했다.
지난해 대선 직전 ‘백의종군’을 내세워 한나라당에 입당, 이회창 후보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박찬종 전 의원은 재기를 위한 의지가 결연하다.
박 전 의원은 대선 직후 한나라당 당원들에게 새로운 당으로 거듭날 것을 촉구하는 서신을 보내는가 하면 지난 1월16일 부산에서 개최된 ‘오륙도포럼’ 특강에서는 당권 도전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박 전 의원은 한나라당 개혁안이 4월3일 당무회의를 통과한 뒤 ‘정당개혁은 오간 데 없고,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의 기득권 사수를 위한 개악’이라고 지적한 뒤 측근을 통해 “경선방식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경선 도전 여부를 재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전 의원은 최근 ‘부산행’을 늘이고 있다. 측근에 따르면 박 전 의원은 내년 총선에 반드시 출마할 것이며 그의 오랜 지역구인 부산 서구와 공석인 부산 동래구, 분구가 유력한 부산 남구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분구 가능성이 높고 박 전 의원의 출신지이기도 한 경남 김해도 출마예정지로 거론되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