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사장의 갑작스런 퇴진을 두고 금융가에 이러쿵저러쿵 뒷말이 오가는 것은, 그가 김대중 대통령과 친척 관계라는 점과 사퇴 시점이 정권 말기라는 미묘한 시기라는 점, 사퇴 배경이 명쾌하지 않다는 점 등이다.
김 전 사장이 전격 사퇴한 것은 지난 12월10일. 국민카드는 김 전 사장이 공식 사퇴하기 이틀전인 지난 12월8일 ‘김연기 사장의 사의 표명에 대한 석명자료’라는 이례적인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회사측은 보도자료에서 “카드업계의 현 상황을 감안해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책임경영을 확립할 수 있는 CEO의 선임이 좋다는 판단에 따라 조기 퇴진을 결심했다”고 사퇴 사실을 밝혔다.
회사측은 “건강이 악화돼 퇴진한다”는 내용도 보도자료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내용을 뒤집어보면 “김 사장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책임경영을 할 수 있는 CEO가 아니며, 이런 이유에서 조기에 퇴진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
게다가 지난 2000년 4월 국민카드 사장에 취임한 뒤 만 31개월 동안 대과없이 일하다가 임기 만료 넉달을 남겨둔 상황에서 갑자기 퇴임하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없지 않다는 것. 보도자료 말미에 건강상의 이유를 거론하긴 했지만, 이 문제가 사퇴의 주된 요인이 아님은 보도자료 내용에서도 금방 알 수 있었다.
회사측이 주장한 대로 김 전 사장의 가장 큰 사퇴사유인 ‘경영상 문제’와 관련해서는 납득할 수 있는 부분도 없지 않다. 국민카드는 김 전 사장이 취임한 이듬해인 2001년에 영업수익 2조3천4백여억원, 순익 4천5백82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올들어 3분기까지 영업수익은 2조4천2백여억원으로 지난 한해 동안의 실적을 앞섰으나, 순익은 2천9백여억원대에 그쳤다.
결국 국민카드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늘었으나, 장사는 잘 못했다는 소리다. 이는 대손충당금 증대, 업무제휴로 인한 할인율 급증 등 판매, 관리비 등 경영비용이 크게 늘어난 때문이다. 경영실적이 악화됐다는 점에서 보면 김 전 사장의 사퇴 이유는 되지만, 경영악화 요인이 외부적인 것이어서 CEO가 사퇴를 해야 할 만큼 책임져야 할 부분이냐는 점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업계 관계자는 “카드사의 순익 규모가 줄어든 것은 국민카드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며, 대손 충당금 확대에 따른 순익 축소는 타사들도 모두 직면한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임기 만료가 4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경영상의 이유로 스스로 물러난다는 것은 석연치 않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국민카드 노조 역시 “김 사장의 퇴임은 자의반 타의반이며, 외부압력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라며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외부압력과 관련해 노조 관계자는 국민카드의 대주주인 국민은행측과의 불화가 김 사장의 사임을 부추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노조 관계자는 김 사장의 퇴임은 “본인 의지 반, 외부 의지 반이 분명하다”며 “외부 압력은 국민은행을 지칭한다”고 잘라 말했다. 국민은행측이 국민카드와 합병을 하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김 전 사장에게 경영상의 책임을 물어 퇴진을 종용한 것이 라는 얘기.
그러나 이같은 의혹들에 대해 회사측은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민은행 홍보실 관계자는 “지난 6일 저녁 김 사장이 부서장들을 통해 사임 사실을 알렸으며, 그 이전까지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정권 말기와 관련된 사임 의혹, 국민은행과의 불화설 등은 극도의 민감한 사안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잘 알지도 못하는 부분”이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그는 김 사장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자택에서 쉬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김 전 사장의 퇴진을 두고 정권 말기를 맞아 금융계 인사들의 숙청작업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김 사장의 퇴임을 금융계에서는 ‘호남 출신 사장 물갈이의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몇몇 금융계 인사의 경우 요즘 좌불안석이다”고 전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만일 김 사장의 퇴임이 개인적인 이유였다고 할지라도, 정권 말기라는 시기와 겹쳐 있어 이런저런 뒷얘기가 나오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 전 사장의 퇴진은 어떤 이유에서건 이래저래 금융가를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