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퇴직금 절반 이상을 떼어 삼성전자 주식을 산 서 아무개 씨(56)는 최근 고민이 크다. 안 그래도 판단이 쉽지 않은 주식시장인데, 요즘들어 더 어려워졌다는 게 그의 말이다. 서 씨는 “지난해부터 부정적 전망이 많아 팔려고 했는데, 최근 외국인이 무서운 속도로 사들이는 걸 보면서 분위기 좋을 때 나와야할지, 더 기다려야할지 감을 못 잡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서초 사옥. 사진=고성준 기자
지난해 5월 4일 삼성전자는 50대1 액면분할 후 재상장했다. 주당 가격이 250만 원을 넘나드는 ‘그림의 떡’ 또는 ‘황제주’가 주당 5만 원 대가 되면서 누구나 살 수 있는 ‘국민주’로 불렸다. 액면분할은 기업가치의 변화 없이 주식만을 쪼개는 것이어서 주가가 상승할 이유는 없지만,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이 늘어나면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는 커진다. 때맞춰 증권사들도 ‘매수’ 리포트를 쏟아내면서 기대감도 커졌다. 앞서의 개미 투자자들이 앞다퉈 투자한 이유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지난해 삼성전자 주가는 3만 8700원에 마감했다. 액면분할 이후 거래된 가격 5만 3000원 보다 27% 하락한 수치다. 1년 간 5조 원을 순매도한 외국인과 3조 5000억여 원을 내다 판 기관이 주가 하락을 이끌었다. 같은 기간 소액투자자들은 7조 4873억 원 어치를 사들였다.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 물량을 개인이 떠안은 셈인데, 결과적으로 ‘개미무덤’에 갇혀버린 모양새가 됐다.
시장에선 반도체 경기가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는 우려가 주가 부진의 배경으로 꼽혔다. 삼성전자 주가가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2년 가량 급등했지만, 반도체가 영업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다 2018년 정점에 올라섰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힘을 잃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제외하면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도 삼성전자 주가가 탄력을 잃은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런데 최근 ‘대장주’가 다시 돌아왔다.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지난 1월 8일 삼성전자가 4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한 직후다. 이날 삼성전자는 ‘어닝쇼크’ 수준의 잠정 실적을 내놨지만, 오히려 주가는 이를 기점으로 반등했다. 올들어 주가 상승률만 15%다. 지난 28일엔 4만 5000원을 돌파했다. 시가총액도 지난해 말 231조 원에서 지난 28일 기준 268조 원으로 37조 원 늘었다.
달라진 외국인 태도가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올해 1월 들어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 7506억 원 어치의 주식을 샀는데, 이 가운데 9524억 원이 삼성전자에 몰렸다. 최근 3주 연속 삼성전자를 가장 많이 사들이면서 전체 순매수 금액의 절반 가까이가 이 회사에 집중됐다. 삼성전자 외국인 주주 비중은 지난해 말 55.58%에서 지난 28일 56.23%로 늘었다. 시장에선 삼성전자 주가가 바닥에 가까워졌다는 인식이 확산돼 저가 매수 세력이 유입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반면, 기관은 외국인과 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해 들어 기관의 매도 상위 1위는 삼성전자다. 지난 28일 하루에만 1946억 8000만 원 어치를 팔았다.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비중을 조절하면서도 전반적으로는 ‘팔자’ 흐름을 보이고 있다. 시장에선 기관 투자자들이 삼성전자의 주력인 메모리반도체(D램 등)이 공급과잉 상태가 됐고, 이에 따라 가격이 떨어지는 추세에 더 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외국인과 기관의 매매 공방이 이어지면서 소액주주들은 판단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내내 ‘개미 무덤’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무서운 속도로 회복이 이어지는 등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어서다. 일단 개인 투자자들은 순매도에 나서며 차익을 내고 있지만, 이는 일부에 불과하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나머지 개인투자자들은 외국인과 기관의 엇갈린 행보에 더해 증권사들이 지난해 말부터 내려잡은 삼성전자 실적 전망치와 목표주가 탓에 어디를 신뢰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양재 KTB 연구위원은 “해외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의 투자 관점이 다르다. 국내 기관의 경우 반도체 업황 회복이 잘 될지 고민하고 있다. 현재로선 올해 삼성전자의 1, 2분기 실적이 줄어들고 하반기 개선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실적이 전년도에 비해 줄어들 수밖에 없는 만큼 기관이 비중을 조절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반대로 통상적으로 해외 투자자들은 2~3년 가량 긴 호흡으로 투자하고 규모도 크다.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성장이 장기적 리스크였는데, 중국 업체들이 미국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올해 반도체 업황은 나쁘지만 구조적으로는 메모리 수요가 늘어날 수 있어 2020년이나 2021년에는 실적이 좋아질 수 있다고 보고 투자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