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월 21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국제설계공모전 당선작으로 선정된 ‘Deep Surface’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 김부겸-박원순 설전으로 번진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계획
서울시가 추진하는 사업 가운데 가장 최근에 불거진 갈등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계획이다. 서울시가 지난 1월 21일 광화문광장 국제설계공모전 당선작을 발표하면서 수면위로 떠올랐다. 서울시가 발표한 설계 당선작 ‘깊은 표면(Deep Surface)’을 보면, 광화문 앞에 약 3만 6000㎡의 역사광장이 조성된다.
문제는 역사광장 안에 정부서울청사 건물과 주차장 등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설계안대로 추진하면 정부서울청사 부지 총 1만 8582㎡ 중 1만 264㎡로, 전체의 60% 이상이 역사광장에 수용된다. 구체적으로 정부서울청사 정문과 차량 출입구부터 폐쇄된다. 청사 주차장은 공원으로 바뀌고, 경비대·방문안내실(민원실)·어린이집 등은 사직로 우회도로(6차선)로 편입되는 만큼 건물 세 동을 철거해야한다.
행정안전부는 당선작 발표 직후 공개적으로 난색을 보였다. 대체 건물이나 다른 대안 없이 설계안 그대로 공원이 들어서면 정부서울청사가 공공건물로서 제기능을 못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그동안 행안부가 실무 협의 과정에서 서울시 계획에 대해 반대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왔는데도 서울시가 별다른 협의 없이 발표를 강행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불만을 내비쳤다.
설계안 발표 강행은 행안부와 서울시 두 수장의 설전으로 번졌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서울시의 설계안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합의도 안 된 사안을 그대로 발표하는 경우가 어디 있나. 그냥 발표해서 여론으로 밀어붙이려는 것인가”라고 날을 세웠다.
이에 박 시장이 “세상에 절대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나”라고 맞서면서 불이 붙었다. 박 시장은 “정부와, 특히 청와대와 협력해서 쭉 추진해 왔다. 제가 문재인 대통령 후보시절 대선 투표 1주일 전에 같이 광화문광장에 서서 광화문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기자회견도 했다. 그 이후 계속 준비해 왔다”며 광화문광장 재구조화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라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논란이 커지자 최근 행안부와 서울시는 협의를 통해 접점을 찾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사업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협의가 부족했다. 추가 실무협의를 통해 풀어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 관계자도 “설계안 발표와 관련해 행안부와 사전 합의가 없었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올해 말 최종 설계안이 나올 때까지 행안부와 합의점을 찾겠다”라고 말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오른쪽)과 박원순 서울시장(왼쪽)은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설계안을 두고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설전을 벌였다. 사진=
#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신설은 국토부와 의견 충돌
박 시장이 광화문광장에서 풀어야할 정부와의 갈등은 또 있다. 서울시청과 광화문 사이에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A노선이 지나는 ‘광화문복합역사’ 신설 논란이다. 여기선 국토부와 의견 충돌을 보이고 있다. 이번엔 비용이 가장 큰 문제다. 서울시는 정부가 역 설치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국토부는 ‘서울시 전액 부담’ 원칙을 앞세우고 있다.
서울시는 GTX-A가 광역철도인 만큼, 현행 ‘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정부가 사업비의 50%를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토부는 현행 철도건설법에 따라 추가 공사비용과 역 설치로 인한 영업손실 등을 서울시가 모두 해결해야한다고 못을 박았다.
국토부 입장에선 광화문역을 추가할 경우 부담이 크다. 설계 변경과 교통영향평가를 비롯한 각종 절차를 다시 실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GTX-A 개통이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역과 광화문역은 직선거리로 2km에 불과할 정도로 가까운 만큼 ‘급행철도’ 신설 취지와 맞지 않는 계획이라는 점도 문제다.
여기에 서울시의 일방적인 사업 추진은 이 사업에서도 도마 위에 올라 있다. 국토부는 서울시가 지난해 제안했다가 반려했던 이 광화문역 신설 계획을 수정도 없이 그대로 다시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조만간 광화문복합역사에 대한 타당성 조사 연구용역을 발주할 방침이다. 논란이 큰 만큼 사업성이 있다는 점을 입증해 추진하겠다는 취지다.
세운3구역 재개발 사업은 박원순 시장의 재검토 방침에 따라 사업이 지연될 예정이다. 사진=이종현 기자
# ‘시장 말 한 마디’에 뒤집힌 재개발 사업
서울시가 집값 안정을 위해 추진하는 주택 8만 가구 공급 계획은 박원순 시장의 말 한 마디로 차질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 공급 계획은 박 시장이 지난해 정부가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방침에 반대하며 대안으로 내놓은 대책이다. 시는 일단 2022년까지 377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8만 가구가 들어설 부지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은 세운재정비촉진지구다. 서울시는 2022년까지 세운3구역과 6-3구역에서 2773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특히 세운3구역(대지면적 3만6747㎡)은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내 8개 구역 중 가장 크다. 3구역을 다시 10개 소구역으로 쪼개 재개발 사업을 하고 있다. 3구역 중 토지보상 및 입주자 이전 협의가 마무리된 3-1, 4, 5구역은 지난해 12월 철거를 시작했다. 이 구역의 재개발은 그대로 추진된다.
문제는 오래된 점포들이 포함된 3-2, 6, 7구역과 3-3, 8, 9구역 통합개발이다. 을지로에 있는 양미옥, 을지면옥 등이 재개발지역에 포함돼 결국은 철거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지난 16일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적어도 제가 시장으로 있는 동안에는 그런 것(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는 도시개발이 돼야 한다”며 “가능하면 그런 것이 보존되는 방향으로 재설계하는 방안으로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 발언의 후폭풍은 거셌다. 서울시의 기존 방침을 한 번에 뒤집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을지로·청계천에 지상 20층 안팎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을 짓는다는 내용의 재개발 사업은 박 시장 재임기간 동안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박 시장 발언 이후 서울시는 방침을 바꿔 구역 내 노포 보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관할 구청과 협의해 사업시행인가를 최대한 늦추겠다고 밝혔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8만 가구 공급 대책은 서울시내 크고 작은 부지를 최대한 끌어 모아 내놓은 것”이라며 “3-2·6·7구역과 3-3·8·9구역의 일정이 지연되면 1800여 가구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 어렵게 만든 8만 가구 공급 계획에 큰 손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대체 공급 물량 확보 등 다른 해결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원순 시장이 세운재개발 일대를 방문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 서울시 사업 추진 방식 두고도 격론
이러한 박 시장의 사업 추진을 둘러싼 논란을 두고 정치권, 학계, 시민단체 사이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나 세운3구역에 대한 청와대 청원도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올라오고 있다.
박 시장을 비판하는 쪽은 서울시 정책에 ‘정치’의 그림자가 과도하게 드리워졌다고 주장한다. 실제 박 시장은 앞서의 논란이 된 사업들을 다음 대선 전이나 본인의 임기 전까지 마무리할 방침이다. 공약 이행을 떠나 ‘박원순표 사업’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과의 설전에 대해서는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두 명이 부딪혔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에 대해 한 야권 관계자는 “공교롭다고 해야 할지, 계획된 것으로 봐야할지 단정할 순 없다. 공약으로 제시한 정책들이지만 정부와 협의가 필요한 사업들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서두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건 사실”이라며 “그동안 박 시장은 소통을 강조해왔는데 최근 사업 과정에선 보이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반대 분석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추진하는 사업에 정치 논리가 섞이지 않을 수 없다”며 “중요한 건 원칙과 방향이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박 시장은 과거의 문화나 예술, 전통과 역사를 도외시했던 개발을 지양한다는 방침을 강조하고 있다. 늦은감이 없진 않지만 향후 공론화 과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