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 대전 공동유세 장면.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현대가 3형제들은 2000년 초 발생한 ‘왕자의 난’ 이후 서로 제갈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후 이들 형제는 MK는 현대차그룹을 갖고 독립했고, MH는 현대계열사를, MJ는 정치행보를 취했다. 독자행보를 떼놓긴 했지만, 이들은 피를 나눈 형제라는 점 때문에 끝없이 서로 연루됐다. 특히 MJ의 대선후보 출마는 MK나 MH의 사업에 큰 영향을 준 게 사실이다.
노 당선자의 당선이 확정된 이튿날 몽준씨가 이끄는 현대중공업 계열사들의 주가는 급락세를 보이면서 MJ에게는 악재임이 입증됐다. 반면 몽헌씨가 이끄는 MH계 핵심기업인 현대상선은 한숨을 돌리며 여유를 찾는 모습이다. 12월20일 종가기준 현대중공업은 주가가 7.72%나 폭락했고,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 역시 등락을 거듭하다 1.14% 떨어졌다.
당초 노 당선자와 후보단일화에 합의하면서 현대중공업 및 계열사의 주가는 노 당선자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반영한 듯 크게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투표일 직전인 12월18일 밤 전격적으로 노 당선자 지지를 철회하면서 사실상 공조관계가 깨져 MJ계로 볼 때는 오히려 새로운 우환거리로 등장했다.
대신 MH계 현대상선은 한때 상승세를 보이는 등 강세를 보였고, 현대상사도 전체시장의 침몰에도 불구하고 보합세를 유지했다. 현대상선의 경우 고민거리였던 4억달러 실종의혹의 덫에서 탈출이 가능하다는 기대감도 있다. 특히 현대엘리베이터는 노 당선자의 행정수도 이전 약속이 실현될 경우 엘리베이터 공급 물량 확대가 예상되는 수혜주 성격을 안고 있어 즐거운 표정이다.
▲ 정몽구 회장은 대선과 관련, 그룹 내에 함구령을 내렸다. | ||
하지만 이번 대선결과가 현대가(家) 형제들, 특히 MJ에게 미칠 영향은 지난 92년 당시 창업주인 정주영 명예회장의 낙선 당시와 비교될 만큼 크게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그 이유는 노 당선자와는 후보단일화 합의에도 불구하고 지지철회에 따른 불편한 앙금이 생겼고, 야당인 한나라당의 입장에서는 대선레이스에서 가장 괴롭힌 핵심이라는 점 때문이다.
여기에 정계 속성상 재계인사의 진입에 대한 체질적 거부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민통합21과 관련한 정치권의 견제가 MJ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날 증시에서의 반응도 바로 이 같은 해석에 근거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특히 정몽준 대표의 공조 약속파기가 현대중공업 계열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몽헌 회장은 현재 미국에서 체류중이지만, 곧 귀국해 나름대로 사업방향을 설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측근인사인 김윤규 사장 등과도 다시 사업문제를 깊이 상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경협사업을 적극 추진하면서 갖가지 의혹의 당사자가 됐던 정몽헌 회장 계열의 현대그룹은 대선 결과 이후 약진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대북 대화론자인 노 당선자의 확정으로 그동안 어렵사리 추진해온 금강산관광산업, 개성특구사업 등 각종 남북경협사업이 다시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 경협사업 주체인 현대아산은 노 후보의 당선으로 현 정부의 햇볕정책이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는 눈치다.
▲ 정몽헌 회장의 현대아산은 대선 이후 한결 여유 를 찾은 모습이다. | ||
현대상선은 간접적인 영향에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다. 산업은행 대출과 관련, 갖가지 확인되지 않은 의혹으로 인해 국내외 영업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게 사실. 그러나 이번 대선이 끝나는 것으로 더이상 정쟁의 희생양이 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어 있는 듯하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대선정국과 맞물리면서 정치적 이해에 따라 사실과 관련없는 억측성 주장이 난무했다”며 “대선이 끝난 만큼 이 사안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노정익 현대상선 사장은 최근 대선 이후 감사원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산은 대출지원과 관련된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여 새로운 파문이 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현대가 형제들의 맏형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나 현대차그룹은 이번 대선과 관련해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사실 이번 대선에 누구보다 속앓이를 많이 한 사람은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었다. 정치와는 거리를 두겠다는 게 MK의 확고한 입장이긴 했지만, 동생인 몽준씨가 대선 후보로 나서는 등 이래저래 정치문제로 마음고생이 많았다.
여기에 몽준씨가 전격적으로 노 당선자와 합의했던 후보단일화를 깨고 나오는 바람에 또다시 후폭풍이 몰려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도 없지 않다. 현대차그룹도 이번 대선결과에 대해 외부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린 가운데 향후 사태전개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무엇보다 정몽준 대표의 갑작스런 후보단일화 공조파기 결정과 관련, 일각에서 재계 압력설이 돌자 혹시 자신들에게 불똥이 튀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MK나 현대차그룹의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지난 12월 초 여수박람회 유치가 무산돼 침울한 데다, 이번 공조파기 등으로 다시 마음이 어둡기만 한 것이다.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고 있는 현대가 3형제들에게 이번 대선 결과는 또다시 어떤 대차대조표를 가져다줄지 정치권은 물론 재계도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