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증권사 보고서에 대한 신뢰성 논란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그동안 증권사들은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라고 해명해 왔지만, 금융당국이 증권사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제도를 도입한 이후에도 증권사들이 투자의견 ‘매수(Buy)’ 보고서만 발간해 왔던 것으로 최근 드러나면서 신뢰도와 관련한 비판의 강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자본시장의 꽃’으로 불리던 애널리스트들이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증권사들이 발간하는 리포트 신뢰도 논란이 재점화 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 시장은 롤러코스터 탔는데, 증권사 보고서는 ‘매수 일색’
최근 금융감독원은 국내에서 영업 중인 47개 증권사의 리포트 8만 9262건에 대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금감원은 증권사 종목 리포트의 신뢰성을 높이고, 애널리스트의 독립성 강화 등을 위해 제도개선을 시행한 2017년 9월 이후 1년 동안 발간된 증권가 종목 리포트를 분석했다.
정확한 명칭은 목표주가·실제주가 괴리율 공시제다. 목표주가 괴리율은 증권사가 보고서를 통해 제시한 목표주가와 실제 주가와의 차이 비율이다. 괴리율이 클수록 실제주가에 비해 목표주가를 높게 설정해 ‘매수’ 의견을 냈다는 의미다.
금감원 분석 결과를 보면, 제도는 별다른 실효성이 없었다. 제도 도입에도 증권사들은 요지부동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9월 제도 시행 전 1년 동안 18.7%였던 목표주가 괴리율은 제도 시행 이후 오히려 20.6%로 더 나빠졌다. 국내 증권사 가운데 교보증권(27.9%), 키움증권(23.2%), 하나금융투자(22.7%), 미래에셋대우(21.5%), 메리츠종금증권(21.0%), 한국투자증권(20.8%) 등이 제도 개선 후에도 20%가 넘는 괴리율을 보였다.
투자의견별로 나눠보면 ‘사라’는 매수 의견 비중은 76%에 달았다. 반면 ‘팔라’는 매도의견을 담은 보고서는 2%에 불과했다. 국내 증권사와 외국계 증권사를 나눠보면 국내 증권사의 매도의견 비중은 0.1%로 떨어진다. 리포트 1000건 당 1건 꼴로 매도 의견을 낸 셈이다. 외국계 증권사는 13%로, 제도 도입 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시장 흐름이 꾸준히 좋았다면 결과적으로도 ‘장밋빛 전망’이 문제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 증시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반도체 호황 소식에 4월 남북 판문점 선언까지 겹쳐 코스피가 사상 최대치인 2600선까지 돌파하면서 ‘3000선 돌파’ 기대감까지 높아졌다. 그러나 하반기 미중 무역분쟁과 미국 금리 인상 등에 따라 곧바로 바닥까지 곤두박질쳤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8년 12월 31일 코스피는 2년 만에 2100선 아래로 떨어지면서 전년 대비 17.28% 하락한 2041.04로 한 해를 마감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40.73%) 이후 최대 하락 폭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증권사들이 매수 일색의 보고서를 쏟아냈다는 얘기다. 한 전직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회사마다 고용한 애널리스트 수나 담당하는 기업 범위 등 각자 사정이 다른 만큼 단순 수치로 결론을 내긴 어렵긴 하다”면서도 “그래도 이정도면 증권사들에게는 창피하고 참담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자본시장의 꽃 애널리스트들이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최준필 기자
#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양치기 소년’ 된 ‘자본시장의 꽃’
증권가에선 매수 일색 보고서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항변한다. ‘기업 눈치보기’가 대표적이다. 특히 대기업 상장사들은 증권사들이 공개 보고서를 쓰다 보니 정보를 제한적으로 제공하고, 불리한 보고서를 쓰면 비공식적으로 출입 정지를 하거나 아예 정보가 차단당한다는 것이다. 증권사가 특정 기업과 투자 등 중요한 거래를 진행하는 시기엔 거래가 깨질 수도 있는 만큼 ‘눈치껏’ 자제하기도 한다.
실제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눈치 보기는 대형, 중견 증권사 가릴 것 없다. 최악의 경우 기업들이 소송까지 제기하기도 한다. 소신을 지켰다가 항의가 들어오면 본부장까지 대동해서 빌어야 한다”며 “앞서와 같이 극단적인 일이 없더라도 기업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이슈를 발굴하며 때로는 입장을 대변하는 건 일상적”이라고 귀띔했다. 다른 중견 증권사 관계자는 “기업 눈치만 봐야하는 건 아니다. 매도의견을 냈을 때 주식을 대량 보유한 기관 투자자마저도 출입금지 등 비공식 제제를 가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기관투자가, 펀드 매니저 등의 입김도 세다. 대부분 연봉 전문계약직인 애널리스트들의 평판은 이들이 좌우한다. 다른 대형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쉽게 말해 보고서 작성만으로는 ‘돈’이 안 된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성과는 증권사의 법인 영업팀 실적과 비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고서를 보고 펀드매니저가 종목을 산다고 하면, 아무래도 정보를 준 증권사에게 매수 주문을 많이 낸다. 증권사 법인 영업팀의 수익은 이런 식으로 늘어난다. 애널리스트들의 다음 연봉 협상이 펀드 매니저들한테 걸려있는 만큼, 매니저들이 섣불리 매도의견을 내거나 그들이 보유한 종목 등에 대해 ‘소신 지키기’는 어렵다. 그만큼 보고서 질과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보고서의 파급력은 외국계 증권사가 훨씬 커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내 증권사와 똑같이 국내에서 영업하면서도, 인력이 10여 명 남짓인 외국계 증권사들은 매도 보고서를 ‘거침없이’ 써낸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국 증시는 외국인투자자 비중이 높다. 외국계 증권사들의 보고서를 세계 투자자들이 참고한다는 게 그들에겐 무기”라면서도 “외국계 증권사 적중률도 높다고 볼 순 없다. 다만 매수 일색의 보고서 속에서 외국계 증권사가 매도 보고서를 내면 그만큼 관심이 집중된다. 특히 국내 투자자들이 외국계 증권사 보고서에 따르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에 따라 일부 종목이나 시장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이 경우엔 국내 증권사들이 곧바로 반박 보고서를 내도 소용없다. 국내 증권사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양치기 소년’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애널리스트들도 이러한 지적을 모르는 건 아니다. 때문에 나름의 대안을 내놓긴 한다. 또 다른 대형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도 안 풀리는 일을 증권사 내부에서 풀어내거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아무리 소신 있는 애널리스트라도 주가가 치솟고 있는데 혼자 주가를 떨어뜨릴 수 없다. 따라서 보고서들이 매수 일색이더라도 그 의견을 제시한 논리나, 조정한 이유를 눈여겨 보면 된다. 애널리스트들은 매수의견을 낸 합당한 이유를 설명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혼자 ‘팔라’고 외치는 게 용기일 순 있지만, 논리가 빈약하면 관심 받기 위한 의도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그밖에 투자의견에는 거품이 껴있다고 보고, ‘적극매수’는 매수, ‘매수’는 중립, ‘중립’은 매도 정도로 보면 된다. 보수적으로 접근하려면 애널리스트들의 판단은 제외하고 ‘팩트’만 챙기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