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당선자는 후보 시절부터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강력한 재벌개혁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현재 노 당선자가 구상중인 재벌개혁 정책은 DJ정권 초기에 선보였던 지배구조 개선 등 기존 정책보다 한 수 높은 수준일 것이란 게 당선자 측근들의 전언이다.
이 같은 재벌개혁 정책의 밑그림은 정운찬 서울대 총장을 비롯해 장하성 고려대 교수 등이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노 당선자는 정 총장에게 2003년 2월 정권 출범 직후 국무총리 혹은 경제부총리를 맡아주도록 요청하고, 물밑접촉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는 노 당선자가 개혁정책의 원만한 추진을 위해 6공시절 재벌개혁 정책을 주도했던 K씨, S씨 등과도 협의중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현재 거론되는 인사들이 대부분 혁신적인 개혁정책을 주장해온 인사들이어서 노 당선자가 평소 주장해온 재벌개혁 방향과 맞물려 매우 강도높은 정책이 수립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재계는 노 당선자가 꺼내들 재벌개혁 프로그램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초긴장 속에 마른침을 삼키고 있다. 특히 재계는 DJ정부 기간동안 사외이사제도 도입, 부실회계 방지대책 등 기업의 투명성 문제는 크게 개선됐으나, 황제식 경영 등 재벌그룹의 오너십에 대해서는 사실상 메스가 가해지지 않았다는 점을 두려워하고 있다.
불과 2∼3%의 개인 지분만을 가진 재벌 총수가 순환출자 등으로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비정상적인 지배구조에 대해 공정거래위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으나 재벌의 반발로 개혁에는 실패했다. 노 당선자는 이 부분에 대해향후 재벌개혁의 중심이 오너십 체제에 대한 전면 대수술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 노무현 당선자가 강도 높은 재벌개혁을 선언함에 따라 과거 재계의 구심점이었던 전경련도 개편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 ||
노 당선자측 관계자들에 의하면 노 당선자는 재벌개혁 정책방향과 관련해 자신의 집권기간에 견주어 3단계 시나리오를 짜고 있다는 것. 1단계는 DJ정부에서 수립된 재벌 내부의 구조조정 추진방향을 보다 강도 높게 추진하는 것이며, 2단계는 재벌의 사업구조에 대한 근본적 수술을, 3단계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통한 재벌 지배체제에 대한 개혁을 이뤄낸다는 것이다.
특히 노 당선자는 재벌개혁의 지향점이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투명성 강화에 있으며, 각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개혁의 초점을 맞춘다는 정책원칙을 세워두고 있다. 노 당선자와 신정권 참여가능 인사들은 이 같은 재벌개혁 방향은 원론적으로 DJ의 개혁방향과 궤를 같이 하지만, 각론에서 큰 차이를 보일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따라서 개혁방향에서 DJ 집권 5년과 큰 차이가 없지만, 강도면에서나 추진력에서 훨씬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노 당선자는 장기적인 개혁추진으로 인한 국민들의 개혁피로감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개혁의 질과 양을 사전에 정하고, 이를 원칙에 따라 집중적으로 추진해 효과를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노 당선자는 특히 재벌개혁이 효과적으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재벌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재벌의 구심체인 전경련의 개편을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DJ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재계의 구심점 역할을 상실해온 전경련이 분열되거나 와해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신 노 당선자는 재벌개혁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재벌단체가 등장, 재벌개혁을 이끌어 주길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노 당선자는 재벌개혁 문제는 가뜩이나 위기를 맞고 있는 경제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수위와 시기를 조율해야 한다는 입장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 당선자의 개혁방향이 차츰 윤곽을 드러내면서 재계는 오너지배구조의 문제, 재벌 계열사간 상호간 지원 및 투명성 문제 등 개혁의 칼끝 앞에 놓인 현안문제에 대한 대책마련을 서두르는 모습이다. 대다수 재벌들은 이미 DJ정권 아래에서 상당부분 내부개혁 작업을 했기 때문에 별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면서도, 예상치 못한 초강수가 등장할 수도 있다는 판단 아래 상황파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재계는 노 당선자의 개혁방향이 오너가 장악하고 있는 기업의 기존 의사결정 체계와 경영 지배권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노사문제에 대해서도 점검하고 있다. 또 삼성그룹 등 일부 재벌의 경우 후계구도의 정착 등 현안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어 대응 논리 개발에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여기에 상속-증여세의 완전 포괄주의가 앞으로 재벌 오너가의 상속 및 증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이에 대한 대비책도 준비하고 있다. 노 당선자의 재벌개혁 정책이 서서히 모습을 보이기 시작함에 따라 노-재벌간 긴장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2003년 벽두부터 다시 한번 정권과 재벌의 기싸움이 불꽃을 튀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