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연말 정기인사 때 사장직에서 물러난 이병 규 현대백화점 고문. 그의 전격적인 퇴임이 구 설수에 올랐다. 사진은 지난 94년 정주영 국민 당 대표 특보 시절 모습. | ||
이 전 사장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비서실장 출신으로, 대표적인 현대가 가신. 그는 한때 금강개발산업 대표이사 부사장, 문화일보 부사장을 거쳐 지난 2000년부터 현대백화점 사장을 맡아왔다.
이 병규 전 사장은 왕회장의 최측근 인사라는 점 외에도 취임 당시 3조원대에 머물렀던 현대백화점의 매출을 지난해 4조원대로 끌어올리는 등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특히 그는 현대백화점의 케이블 홈쇼핑채널권을 따내는 등 기업이미지를 고급화시키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 이 전 사장이 돌연 상근 고문(2003년 1월1일자)으로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으니 구설수가 오가기엔 충분한 상황. 특히 이 전 사장이 상근 고문으로 물러난 것과 때맞춰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3세인 정지선 현대백화점 부사장이 부회장에 오르는 파격인사가 단행돼 여러 가지 해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게다가 시기적으로 16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18일 이 같은 인사가 발표된 점도 뒷말을 남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 전 사장의 퇴임을 놓고 현재 재계에서 오가는 분석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오너와의 갈등설, 둘째 자발적 퇴진, 셋째 독립을 위한 준비 등이다.
사실 오너와의 갈등설은 지난해부터 일부 재계 내부에 오가긴 했지만, 단순한 추측으로만 여겨졌다. 회사측도 이에 대해 “전혀 근거없는 얘기”라며 강력히 부인해왔다.
그러나 항간에는 이 전 사장의 경영노선과 오너 가족의 경영방향이 맞지 않아 마찰을 빚는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특정인의 이름까지 루머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이런 내용에 대해 상당수 재계 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냐하면 전문경영인인 이 전 사장이 굳이 오너측과 불협화음을 일으킬 만큼 현대백화점의 규모가 크지도 않고,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시급한 경영현안이 존재했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정몽준 의원의 대선출마가 가시화된 시점을 전후해 이 전 사장의 거취문제가 언론에 오르내린 적은 있었다.
그것은 추측보도였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오너와의 갈등설 부분은 확인할 수도 없고, 확인이 되지도 않는 부분이어서 단순 루머일 뿐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때문에 현대백화점 안팎에서는 자발적 퇴진일 것이라는 시각이 많은 듯하다. 사실 이 전 사장을 잘 아는 인사에 의하면 지난해 이후 이런저런 뒷말이 오가는 부분에 대해 이 전 사장이 매우 부담스러워 해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차기 경영권자로 서서히 부상하고 있는 정지선-교선 형제들을 위해 자신이 자리를 비켜주겠다고 결심한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 전 사장의 경우 비록 전문경영인이지만 정주영 명예회장과의 관계 등을 감안할 때 현대가에서는 오너 일가족에 못지 않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입지이다.
더욱이 이 전 사장이 현대백화점의 경영인으로 자리를 옮길 당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천거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은 이 전 사장의 입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때문에 이 전 사장으로서는 서서히 3세체제를 준비하고 있는 현대백화점의 차세대를 위해서도 자신이 스스로 용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결국 지난해 인사에서 이를 실행토록 길을 터주었다는 얘기인 것이다.
이와 함께 또 다른 재계 관계자들은 이 전 사장이 자신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물러난 것이라는 해석도 하고 있다. 현대 관계자에 의하면 이 전 사장은 정주영 회장이 작고한 이후 나름대로 자신의 길을 위해 사업 혹은 진로를 모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중반 이 전 사장은 사업을 하기 위해 자신과 가까운 몇몇 인사들과 의견을 나누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황. 그러나 현직에서 물러난 만큼 조만간 이 전 사장이 자신의 진로를 외부에 공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져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