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신형식 옹 | ||
신 옹 부부는 장수와 다복함의 표본으로 유명했다. 신 옹은 지난 2000년에 부인(임옥빈)의 미수연(88세 생일잔치)과 함께 본인의 백수연(99세 생일잔치)를 함께 열어 장안의 화제가 됐었다. 게다가 이 부부는 슬하에 7남2녀를 뒀음에도 백수연을 할 당시 한 명의 자식도 부모에 앞서서 세상을 뜬 경우가 없어 ‘다복함’의 표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질적인 면에서도 신 옹은 다복했다. 본인이 와세다대 경제학부 1회 졸업생이었던 것처럼 자제들도 대개 외국 유명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수재였던 것. 부자지간에 공통점이라면 모두 고학을 통해 해외유학을 했다는 점이다. 장남 은호씨(67)는 광주고를 마치고 바로 유학을 떠나 24세의 나이에 하버드대에서 소립자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핵물리학자였다.
또 차남 신상호 동아기획 사장(67)은 전남대 철학과 교수를 지내다 동생인 선호씨(56)의 율산그룹에 몸을 담기도 했었다. 또 3남 동호씨는 미국 버클리대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딴 뒤 피츠버그대 에서 안과 박사를 딴 녹내장 분야의 저명의사였다.
4남 춘호씨(62)는 화학박사, 5남은 신명호 부총재, 6남은 신선호 회장, 7남은 미국 UCL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딴 신민호 경기대 교수(45)이다. 아들 중 신 부총재와 신 회장만 빼고는 모두 박사학위 소지자인 것.
또 신 회장 바로 아랫동생인 장녀 연영씨(재미 사업가)와 차녀 혜영씨(미국 공인회계사)도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 활동하고 있다. 신 부총재는 형제들 중에 가장 수재는 큰형이었다고 말했다. 큰형이 한번 길을 뚫자 동생들도 형을 본받아 모두 공부하는 길을 쉽게 뚫을 수 있었다는 것. 이들에게서 난 손자만 해도 23명이 된다.
신 옹은 입원한 지 이틀 만에 별세를 할 정도로 말년까지 건강했다고 전해진다. 신 옹은 90대 후반까지도 집 근처의 전남대 운동장을 매일 다섯바퀴 정도 돌 정도로 건강체질이었다. 후손들은 젊은 시절 신 옹이 고향집 뒷산인 율산으로 매일 나무하러 다니고 유학시절 우유배달을 하며 다진 건강이 술 담배를 안하는 절제된 생활과 어울려 장수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신 옹의 고향집 뒷산인 율산은 다섯째 아들인 선호씨의 회사 이름이 되기도 했다. [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