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강서구 명지국제로 일부가 도로침하로 인해 부직포로 덮여 있다.
[일요신문] 최근 부산 명지국제신도시 일원에서 발생한 도로침하(땅 꺼짐)가 인근 아파트 건설사의 잘못된 터파기 공법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시행하는 지반조성공사가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지만, 보다 확실한 원인이 밝혀진 것이다.
지난 4월 22일 부산 강서구 명지국제로 일부가 내려앉는 사고가 발생했다. 폭 15m, 깊이 1.6m에 이르는 침하는 하루 전인 4월 21일 오후 6시경부터 진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부산 강서구청, LH,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 아파트 시공사 등의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모여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땅 꺼짐이 발생하자 명지국제신도시에 거주 중인 시민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명지국제신도시에는 15개 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이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는 주민들의 건물 안전을 우려하는 문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주민들은 가뜩이나 침체된 부동산 경기에 지반침하까지 발생하자 집값하락까지 걱정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도로침하의 원인을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반조성공사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진행한 연약지반과 지하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시공사의 무리한 터파기 공사에 있을 것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이를 증명할 만한 직접적인 증거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침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것으로 보이는 증거를 본보가 단독으로 확보했다. 침하가 발생한 도로에 접한 인근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사고 발생 약 보름가량 전에 지하에 묻힌 흙이 대량으로 유출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의 존재가 확인된 것이다.
도로침하로가 발생한 바로 인근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토루벽 사이로 새어 나온 갯벌을 제거하는 모습.
지난 4월 3일 오후 3시경 강서구 명지동 일원에서 촬영된 해당 사진에는 A 건설사가 주택시공을 위한 터파기를 하는 과정에서 흙막이(토루벽)에서 토압에 의해 갯벌(준설토)이 터져 나오자, 이를 제거하는 작업을 펼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도로 하부를 채우고 지탱하던 준설토가 사라지자 자연스럽게 땅 꺼짐 발생으로 이어졌다는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해진다. 이와 관련 A 건설사 관계자는 “흙막이 틈 사이로 새어나온 준설토를 정리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토목전문가 B 씨는 이에 대해 “토압은 토루벽에 있는 나무를 부술 정도로 강해 갯벌이 물을 많이 품고 있으면 발생할 수 있다”면서 “갯벌이 상당량 빠져나갔다면 도로가 침하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말했다.
이어 “건물은 파일을 박아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시공하지만 도로는 파일 같은 보강자재를 사용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 같은 경우 대부분 침하가 발생한다”면서 “이에 앞서 아파트 시공사가 지중의 흙이 무를 것으로 예상되면 공법을 바꾸든지 해야 하는데, 너무 안일하게 접근한 것 같다”고 전했다.
명지국제신도시는 모래층과 점토층 하부모래층(갯벌)으로 구성된 연약지반으로 자연적인 침하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곳이다. 때문에 기본적인 관리는 강서구청의 몫이지만, 설계상 자연 침하가 발생할 개연성이 매우 농후하기에 LH가 지속적으로 관리한다.
명지국제신도시 일원에서 공사를 하는 아파트 건설현장 한 곳에서 이처럼 도로침하의 결정적인 증거가 나옴에 따라 이에 대한 원인분석과 해당 지역 아파트 건설현장에 적용되는 터파기 공법의 적합성 여부에 대한 LH 측의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정민규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