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원 전 쌍용 회장 | ||
두 회사 모두 1990년대 중반까지 재계에서는 각광받던 회사였다. 그러나 이들 회사는 1990년대 중반 시작된 모그룹의 경영난으로 동반 침몰한 후 생존을 위해 새 주인을 찾는 신세가 됐었다. 두 회사의 M&A가 눈길을 끄는 것은 매각이 성사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매수자가 예상치 못했던 곳이라는 점 때문. 용평리조트의 경우 언론사인 세계일보가 인수했고, 한보철강은 권철현 연합철강 창업자의 아들 권호성씨가 인수한 주인공이다.
[용평리조트]
국내 최대 휴양시설인 용평리조트의 운명은 극적이다. 한때 재계 서열 6위에 랭크됐던 쌍용그룹의 야심작인 용평리조트는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이 어느 회사보다 공들였던 기업이었다. 용평리조트가 처음 건설된 것은 1975년. 당시로서는 강원도 용평지역에 5백20여 만 평에 이르는 초대형 휴양시설을 설립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프로젝트였다.
용평리조트는 개발 초기 고원개발이라는 회사로 출범했다가 영업이 부진하면서 쌍용건설, 쌍용양회 등으로 합병됐다. 그후 지난 2000년에 팬퍼시픽펀드가 지분의 50%를 인수해 (주)용평리조트로 독립했다. 설립 초기 김석원 회장은 1970년대 후반부터 부지매입, 설계, 시공 등을 총괄하는 등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김 회장은 한국보이스카웃연맹 회장을 맡는 등 평소 휴양사업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용평리조트는 IMF사태와 함께 그룹이 침몰하면서 매각대상에 올랐다. 쌍용양회의 사업부였던 용평리조트가 알짜였기 때문에 매각순위 1위에 올랐던 것. 매각작업은 쉽진 않았다. 한때 알 왈리드 사우디왕자 등이 투자에 나서려다가 무산되는 등 매각작업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다가 지난 2000년 외국계 투자회사인 팬퍼시픽이 이 회사 지분의 50%를 인수하면서 일부 팔렸다.
그러나 그룹 전체의 막대한 부채를 갚기 위해 쌍용은 나머지 지분도 불가피하게 모두 팔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용평리조트 매각은 구조조정촉진법 적용을 받고 있는 쌍용의 구조조정을 사실상 마무리하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용평리조트 매각으로 쌍용은 사실상 옛 영광을 잃게 됐다는 것이다.
쌍용양회 관계자는 “3조3천억원에 달했던 부채가 지난해 2조원대로 떨어졌고, 용평리조트의 매각으로 1천9백억원의 차입금이 더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매각으로 실제 쌍용양회에 유입되는 자금은 9백억원선에 그칠 전망.
지난 2000년 용평리조트의 지분 50%를 매각했던 투자펀드 ‘팬퍼시픽리조트 인베스트먼트’(PPRIⅡ)에 이번 매각대금의 절반 가량을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용평리조트의 매수주체가 세계일보라는 점. 언론사인 세계일보가 휴양시설을 인수한다는 점은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세계일보측이 용평리조트를 매수한 배경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다. 특히 세계일보는 통일교 계열의 언론사인 데다, 언론사 특성상 휴양시설을 인수해야 할 필요성이 큰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세계일보가 2천억원에 가까운 막대한 자금을 들여 이 기업을 인수한 대목에 대해 재계는 매우 놀라는 눈치다.
쌍용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세계일보측과 용평리조트의 매각 협상을 벌여왔으며 매각과 관련해 특별한 조건은 없다”고 전했다.
▲ 정태수 전 한보 회장(왼쪽), 권호성씨 | ||
한보철강은 한국 기업사에서 파란만장한 기업으로 기록돼 있다. 이 회사는 1984년 정태수 전 회장이 금호그룹 계열사였던 금호철강을 인수해 이름을 바꾼 기업. 정태수 전 회장이 금호철강을 인수하게 된 데는 많은 얘기가 있다.
일선 세무서의 말단 공무원이던 그는 몰리브덴광산을 개발해 일약 돈방석에 앉은 뒤, 이를 밑천으로 1978년 강남에 은마아파트를 지어 재벌의 대열에 합류했다. 강남 투기붐의 원조로 불리는 은마아파트 분양은 한보가 금호철강을 인수하는 종자돈이 됐다. 은마아파트 분양으로 수천억원의 현찰을 거머쥔 정 전 회장은 미래의 안정적 사업기반을 다지기 위해 금호철강을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한보는 당시 자산규모로 30대 재벌의 대열에 합류했다. 한보그룹의 노른자위였던 이 회사는 1991년 벌어진 수서사건이 터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정 전 회장은 수서사건 이후 부채청산을 위해 12개 계열사 중 11개를 매각했지만, 한보철강 만큼은 끝까지 움켜쥐고 버텼다. 그러나 한보철강은 수서사건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1997년 1월 부도가 났다.
한보철강의 부도는 정 전 회장이 이 회사의 자산을 너무 믿은 탓이었다. 계열사의 거의 모든 부채를 한보철강에 떠맡긴 결과였다. 여기에 국제철강시장의 과당경쟁으로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직격탄을 맞고 말았던 것이다.
한보철강 부도사태는 1997년 한국 경제를 위기에 몰아넣은 IMF사태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그 해 4월 끝내 한보그룹이 부도나고, 이어 7월에 기아자동차가 침몰하면서 외환위기가 가시화된 것이다. 매각작업이 추진된 한보철강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주인공은 권호성씨다.
한보철강의 비극적인 드라마 만큼이나 권씨 또한 드라마틱한 인물이다. AK캐피탈컨소시엄을 앞세워 인수에 나선 권씨는 연합철강 창업주인 권철현 전 회장의 아들이다. 권 전 회장은 한때 연합철강으로 재계의 실력자로 군림했으나, 유신을 비판하다가 1977년 경영에서 물러났다. 그후 연합철강은 양정모씨가 이끄는 국제그룹으로 넘어갔다가, 5공 때 국제그룹이 공중분해되면서 동국제강그룹으로 경영권이 이양됐다.
권 전 회장은 철강의 꿈을 접지 못하고 재기를 노려오다 아들인 권호성씨가 한보철강을 인수함에 따라 한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게 됐다. 권호성씨는 “한보철강의 최고경영자(CEO)에 미국 버밍험스틸 출신의 거스 힐러(Gus Hiller)씨와 부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에 미국 뉴코어사 출신인 존 쉴(John Scheel)씨를 초빙해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한보철강의 향후 운명이 다시 한 번 바뀔 공산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컨소시엄으로 경영권을 인수한 권호성씨측이 경영정상화 이후 국내외 기업에 다시 되팔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