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감독원 전경. 사진=임준선 기자
금감원은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각종 금융기관을 감독한다. 이 기관들에 자료제출, 시정명령, 직원 징계를 요구할 수 있고 임원 해임권고도 가능하다. 금감원이 감리·검사 계획과 결과를 들고 움직일 때 여의도 금융가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하지만 주가조작이나 미공개 정보 이용 등 불공정거래 사건을 두고 고개를 숙이는 일이 적지 않다. 매년 150~200여 건에 달하는 불공정거래 사건을 조사해 검찰에 고발 또는 통보하지만 금감원이 조사한 사건 중 일부일 뿐이다. 범죄 발생 이후 최종 사법처리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다. 금감원과 금융위, 검찰을 거쳐 법원 판결까지 이르는데 평균 2년이 필요하다. 검찰과 법원에서 나올 사건 처리율과 결과는 금감원의 의지와는 별개의 문제다.
금감원은 증권선물위원회의 위임을 받아 불공정거래 감시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 조사기획국과 자본시장조사국, 특별조사국 등을 운용 중이다. 일부 부서는 검찰과 금감원, 거래소에서 파견된 직원들로 구성된 ‘금융 시장 어벤져스’로도 볼 수 있지만, 불공정거래 혐의자의 협조를 받아 조사만 할 수 있을 뿐 압수나 수색 등 강제수사 권한이 없다.
매매 내역 분석이나 전화 문답, 자료제출 요구와 같은 임의조사가 사실상 조사 담당 직원들이 할 수 있는 전부다. 불공정거래 혐의자에게 출석을 요구해 조사한다 해도 이들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출석을 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한 금감원 조사국 관계자는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 수사는 신속한 조치와 제재가 생명이지만, 혐의자들이 출석이나 전화 통화에 응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끄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수법을 뻔히 알고도 적절한 시기에 조치하지 못하거나 경우에 따라선 놓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불공정거래 수법은 갈수록 지능화, 첨단화되고 있다. 전통적인 수법뿐만 아니라 상장법인 임직원이나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정보를 활용해 ‘반칙’을 했다가 적발되거나 SNS 등을 통해 허위 정보로 돈을 챙기는 경우도 늘고 있다는 게 금감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때 마다 뒷북 조사나 솜방망이 처분 지적 등을 피할 수 없었던 금감원과 검찰이 내놓은 답이 특사경이다. 특사경은 전문성이 필요한 특수 분야 범죄에 한해 경찰과 동일한 수사권을 부여해 사건을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지난 2일 금융위원회가 정례회의를 열어 ‘자본시장조사 업무 규정’ 개정안을 의결하고 특사경 운영방안을 발표하면서 5월 중에 첫 활동을 시작할 전망이다.
특사경은 압수수색, 통신기록 조회 등 강제수사를 벌일 수 있다. 증거인멸이나 해외 도주를 막을 수 있도록 출국금지도 할 수 있다. 금감원 본원 소속 직원 10명이 특사경으로 지명된다. 금감원은 일찌감치 지난 2월 인사 때 직원 3명을 특사경 대상자로 발령하고 준비 작업을 맡겼다. 현재 후보 명단에 오른 직원들은 대부분 조사국 관계자들로 알려졌다. 조만간 별도의 사무실 설치 공사도 시작된다. 다른 금감원 관계자는 “특사경은 일종의 금감원 특수부대”라며 “최근 수 년 사이 불공정거래 수법이 지능화, 첨단화 되고 있는 만큼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식 출범 전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특사경 운영방안을 보면, 제도 도입 취지와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도마에 오른 건 활동 범위다. 금융위-금감원-검찰 세 기관의 협의에 따라 운용되는데, 금융위는 추천권을 가지고 금감원은 조직 관리, 검찰이 사건 지휘를 한다. 이들 기관은 수사범위는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이 긴급조치(Fast-Track·패스트트랙)로 지정해 검찰에 이첩한 사건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증선위에서 긴급하고 중대한 사건이라고 지정한 뒤 검찰에 넘기지 않으면 수사에 나설 수 없는 셈이다.
이 방안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선 금융위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금감원 특사경 활동은 이미 2015년부터 법으로 허용돼 왔지만 추천권을 갖고 있는 금융위가 이를 행사하지 않아 사문화 돼 있었다. 금감원 특사경 업무가 현재 금융위 자본시장조사단의 역할과 비슷한 만큼 기존 권한이 상당 부분 금감원에 넘어가는 걸 불편해 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의원들 사이에서도 나왔다”며 “이 때문에 지난달까지 여야 의원들은 물론 법무부에서도 한 목소리로 금융위에 특사경 도입을 강조해 왔고, 이에 따라 사실상 금융위가 등떠밀려 추진하게 됐는데 그 결과도 제도 도입 전과 크게 다를 게 없는 모양새가 됐다”고 지적했다.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그동안 금융위와 금감원은 특사경 운영 준비 과정에서 특사경의 업무 범위를 패스트트랙 사건으로 제한하는 방안과 업무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는 방안을 두고 이견을 보여 왔는데, 이번 운영방안에선 금융위 주장이 관철된 것”이라며 “앞으로 특사경의 구체적인 운영 방식이나 예산 문제 등을 논의해야 하는데 여기서도 금융위와 금감원 의견이 달라서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공권력 오남용을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한 관계자는 “금감원이 민간 조직인 만큼 강제수사권을 부여하면 자칫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일이 생길 우려가 큰 만큼 엄격한 통제 장치를 마련한 것”이라며 “금감원장이 특사경 추천 대상자 명단을 회신하면 지체 없이 서울남부지방검찰청장에게 특사경 지명을 요청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