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명예훼손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 씨가 지난 3월 광주법원에서 재판을 마친 뒤 부인 이순자 씨와 함께 법정을 나서고 있다. 박정훈 기자
1997년 대법원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등 혐의에 대해 전 씨에게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했다. 전 씨가 아직 내지 않은 추징금은 1050억 원으로 전체 금액의 47%에 해당한다. 2003년 전 씨는 추징금을 낼 여력이 없다며 29만 원이 든 통장을 재산으로 명시한 바 있다.
전 씨는 검찰이 연희동 자택을 공매하는 것이 위법이라며 지난 2월 공매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자택 소유주가 전 씨의 아내 이순자 씨라는 점을 사유로 들었다. 그러자 검찰은 2013년 전 씨의 장남 전재국 씨가 제출한 진술서를 공개했다. 당시 전재국 씨는 대국민 사과문을 낭독하고, 검찰에 가 진술서와 함께 재산목록을 제출했다. 검찰이 공개한 진술서에는 “실제 소유자가 전두환 전 대통령임을 일가 모두가 인정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차명재산 목록에는 연희동 자택 등이 포함됐다. 전재국 씨가 전 씨 일가를 대표해 입장을 발표했던 6년 전과 달리, 전두환 씨는 자택 공매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
전 씨 일가는 사업을 다채롭게 전개해왔다. 사업 분야는 주유소업, 부동산업, 출판사, 음반사, 투자업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든다. 뭉칫돈이 필요한 사업도 다수 있었다. 대개 사업을 위한 법인을 세우고, 몇 년 지나지 않아 회사 문을 닫는 경향도 포착됐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설립 이후 금세 사라졌지만, 전 씨 일가가 세운 회사 중 가장 업력이 긴 것은 1975년 설립된 삼원코리아다.
삼원코리아는 전 씨의 차남 전재용 씨가 대표이사를 맡았던 회사다. 전 씨의 처남 이창석 씨와 그의 아내도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씨는 전 씨 일가의 금고지기로 이권사업 전반에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삼원코리아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서울 강남에서 여러 개의 주유소를 운영했다. 검찰은 전 씨의 미납 추징금 환수를 수사하던 2013년 최초 압수수색지로 삼원코리아를 선정했다. 하지만 강남 6개 주유소를 운영하는 데 들어간 자금의 출처는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 수사를 통해 전재용 씨와 금고지기 이 씨는 횡령이나 비자금 대신 조세포탈 혐의로만 처벌을 받았다.
1985년 설립된 성강문화재단도 업력이 길다. 전 씨의 장인 고 이규동 씨가 설립한 것으로 알려진 성강문화재단은 현재 전재국 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이규동 씨의 아들이자 금고지기 이창석 씨 역시 성강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바 있다. 성강문화재단은 긴 업력에 비해 어떤 활동을 하는지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재단 주소지로 등록된 종로구 평창동 건물은 전재국 씨 소유이자 주거지로 공식 문서에 등장한다.
성강문화재단이 있는 주소지에는 재단 관련 간판이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신 ‘북커스’라는 북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북카페 매장 위층은 진입을 하지 못하게 화분과 철문 등으로 막혀 있다. 오랫동안 출판업에 몸담았던 전 씨는 ‘전두환 회고록’이 논란을 산 뒤 지난해 ‘시공사’를 매각했다. 하지만 전 씨의 또 다른 출판사인 음악세계가 하위 브랜드인 북커스를 내놔 전 씨가 다시 출판업 진출을 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검찰은 지난해 범죄수익은닉환수를 위한 전문 수사팀을 별도로 꾸렸다. 하지만 최근 이뤄진 전재국 씨의 시공사 매각 대금 등 재산변동 사안에 대해서는 전두환 씨의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별도의 환수작업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추징금 환수에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다만 가장 최근 검찰이 전 씨의 재산을 추징한 것은 지난 2월로, 최소 2024년까지 미납추징금 환수 시효가 남아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