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의 사정칼날을 비켜갈 것으로 보이는 현대 차그룹측은 앞으로 진행해야할 ‘대물림 작업’이 걱정이라고 한다. 사진은 정몽구 회장. | ||
굳이 시비거리가 될 수 있다면 정몽구 회장의 2세인 정의선 부사장 등 오너 2세 또는 친인척의 고속승진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분도 이사회 결정 등 정상적인 절차를 밟은 경영활동이어서 법률적으론 문제될 게 없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최근 재계 전체가 검찰의 사정권에 휘말려 떨고 있는 점에 대해 “현대차의 경우 문제의 소지가 전혀 없는데 걱정할 이유가 있느냐”고 말했다.
그럼에도 현대차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착잡하기 그지 없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착잡한 정도를 넘어 속으로는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는 게 옳을 듯하다.
현대차가 남모르게 속앓이를 하는 것은 다름아닌 ‘후사(後嗣)’ 때문이다. ‘포스트 정몽구 회장’ 시대를 이끌어갈 차기 경영구도와 관련해 명쾌한 밑그림을 미처 그려두지 못한 때문이다.
물론 그룹 안팎에서는 정몽구 회장의 외동아들인 정의선 부사장을 포스트 정몽구 회장 시대를 주도할 인물로 꼽고 있다. 실제 정 부사장은 지난 1999년 현대차에 입성한 이후 착실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올해는 부사장 대열에 올라 차세대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외양적인 면일 뿐이다. 현대차의 표정이 어두운 것은 경영권을 잇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오너십 문제가 아직 정리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최근 검찰에 전격 구속된 최태원 SK(주) 회장이나 변칙증여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등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들의 경우 핵심 계열사의 최대주주로 등극, 차기 경영권을 확고하게 확보한 상태.
▲ 정의선 부사장 | ||
현대모비스나 INI스틸, 기아자동차, 현대캐피탈 등 핵심 계열사의 주식은 전혀 보유하지 않고 있다. 반면 그의 부친인 정몽구 회장의 경우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의 경우 현대차 4.08%, 현대모비스 7.96%, INI스틸 7.48%, 현대하이스코 3.67% 등을 보유하고 있다.
말하자면 정의선 부사장은 부친이 없으면 회사의 오너십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 점은 최태원 회장이나 이재용 상무와 상황이 판이하다. 최태원 회장의 경우 핵심 계열사인 SK(주) 지분 5.2%를 포함해 SK글로벌 3.31%, SKC 7.5%, SK케미칼 6.84% 등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최 회장은 SK그룹의 새로운 지주회사로 자리잡은 SKC&C의 지분을 무려 44.5%나 보유하고 있어 명실상부한 그룹의 오너로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재용 상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상무는 그룹의 지주회사로 등장한 삼성에버랜드의 지분 25.1%를 보유, 그룹의 전계열사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그는 삼성전자의 지분도 0.63% 갖고 있다.
현대차의 불안감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아직 정몽구 회장이 건재한 상황이어서 차기 경영권 문제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현대차의 이 같은 설명이 틀리지는 않다. 정몽구 회장의 올해 나이는 65세(1938년생). 정 회장 역시 “향후 10년은 더 경영일선에서 활동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경영권과 관련해 섣부른 예측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현대차의 진짜 속내는 달라 보인다. 지난해 파문을 일으켰던 본텍과 현대모비스의 합병 추진 문제도 그 같은 속내를 읽을 수 있는 실례 중 하나다.
당시 현대차는 정의선 부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본텍과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의 합병을 강력히 추진했다. 합병이 성사될 경우 정 부사장은 자연스럽게 핵심 계열사의 대주주가 될 수 있었던 것.
그러나 이 계획은 특혜시비가 불거지면서 현대차측이 스스로 포기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합병이 문제되자 정몽구 회장이 전격적으로 경영진에게 백지화를 지시해 무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이 계획은 백지화됐지만, 현대차가 정 부사장의 오너십 확보를 위해 어느 정도 부심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 단면이었다. 실제 현대차 일각에서는 이 계획이 무산된 것에 대해 아쉬워한 임원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