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주식시장에서는 SK그룹 계열사의 신용평가등급이 하락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주요 계열사들의 주가도 연일 내리막길을 걸어 그룹의 미래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 구속 이후 전 직원들이 안정을 되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연일 터지는 그룹 일로 말미암아 일손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이 사태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지난 2월22일 최태원 회장이 구속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 ||
현재 재계의 관심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이 사태가 향후 SK그룹에 어떤 변화를 몰고올 것인가 하는 데에 쏠리고 있다.
재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는 SK그룹의 경영구도뿐 아니라 전체 사업구조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재계는 SK사태의 추이에 대해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현재 SK그룹은 ‘비상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최 회장의 구속이 집행된 지난 2월22일 SK그룹은 손 회장 주재로 긴급 사장단 회의를 열고 ‘그룹의 흔들림 없는 경영’을 거듭 다짐했다.
이 자리에서 손 회장은 SK의 경영공백과 관련해 기존의 SK텔레콤은 조정남 부회장과 표문수 사장의 투톱체제로 유지하고, SK(주)는 황두열 대표이사 부회장을 중심으로 운영키로 하는 긴급 방안을 마련했다.
또 SK의 구조조정본부는 손관호 SK텔레콤 전무가 본부장직을 대행키로 결정했다. 나머지 계열사에 대해서는 지난해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계열사 CEO회의 결정사항대로 계열사별 CEO 책임경영체제로 운영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말 그대로 비상경영체제. 비상경영이란 불투명한 장래를 의미하기 때문에 시간이 길어진다면 그룹 전체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이미 금융시장에서는 그룹의 신용도 자체를 하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실제로 신용도가 떨어진다면 금융조달, 사업추진 등에 차질을 빚어 그룹 전체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비상상황을 조기에 종결하고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그룹 경영권의 안정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재계에서는 몇 가지 추측이 오가고 있다. 이중에는 구속된 최태원 회장이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충격적인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이른바 ‘특단설’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특단설은 이번 사태의 중심에 그룹의 오너인 최태원 회장이 있으므로 결국 이 사태를 종결짓기 위해서는 최 회장이 모종의 결심을 해야 할 것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아직은 가설에 가깝지만 만약 최 회장이 특단의 결심을 한다면 경영일선 후퇴나 사업구조 전면 조정 등이 될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 회장의 경영일선 후퇴와 관련해서는 상당수 재계 관계자들이 ‘가능한 가설’이라는 반응이다. 일단 기업 경영과 관련해 사회적 물의를 빚은 만큼 최고경영자인 최 회장이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아직 최 회장의 혐의와 관련해 사법부의 최종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이긴 하지만 구속이라는 사태가 벌어져 기업에 치명적 상처를 입힌 만큼 곧바로 경영일선에 복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60년대 후반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도 한비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데 따른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적이 있었다. 그후 이 회장은 아들에게 경영을 맡겼다가 나중에 다시 복귀했다.
최 회장 역시 그룹의 최고경영자로서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일단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가 나중에 복귀하는 것도 현 상황을 타개하는 좋은 방안이 될 것이란 게 재계 관계자들의 조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자칫 최 회장이 현재의 경영권을 고집할 경우 회사로 볼 때 득이 될 게 별로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시민단체들도 도덕성 문제를 거론하며 집요하게 최 회장을 괴롭힐 것이라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만약 항간에서 추측하고 있는 최 회장 경영일선 퇴진설이 현실화한다면, 향후 SK그룹의 경영구도는 옛 기아자동차와 같은 전문 경영인 체제로 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럴 경우 최태원 회장 가족들의 반발도 예상돼 현실화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최 회장이 그룹의 최대주주이긴 하지만, 지난 1998년 최종현 회장이 작고한 직후 사촌형제들을 포함해 가족들이 최 회장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가족 지분을 최 회장에게 몰아주기로 한 점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최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경우 다른 가족이 경영권을 이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력히 주장하고 나설 것이라는 관측. 이런 상황이 전개될 경우 SK그룹 내부에는 경영권 향방을 두고 치열한 갈등국면이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최태원 회장의 특단결심설과 관련해 또 다른 추측은 향후 금융 관련 계열사를 모두 그룹에서 떼어낼 것이라는 말도 있다.
사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SK증권에서 시작됐다. SK증권이 JP모건을 끌여들여 해외 투자에 나섰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이 문제로 JP모건이 소송을 걸자 무마조로 이중계약을 했던 것.
울며 겨자 먹기로 맺은 이 계약으로 막대한 돈을 날렸고, 이를 막기 위해 또다른 플랜을 짜다보니 회계원칙에 어긋나는 기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결국 최 회장이 구속되기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최 회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금융과 관련된 모든 계열사를 분리시켜 매각하는 한편 핵심사업을 빼고 시비의 소지를 안고 있는 모든 사업부를 하나하나 정리하는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는 관측.
이 같은 추측의 이면에는 최근 SK그룹이 카드업 신규 진출, 증권사 인수 등을 추진하면서 재경부와 정면 충돌한 것으로 알려진 부분도 작용한 듯하다. 관가의 소식통은 “그동안 SK그룹은 금융부문과 관련해 재경부와 불편한 관계였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것으로 알려진 JP모건과의 이중계약 문제도 재경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의혹 등은 재경부가 출처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일각에서는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