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1년 3월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참여연대 재벌개혁특위 위원장 장하성 교수(왼쪽)와 김기식 사무처 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입장을 밝히고 있다. | ||
특히 참여연대는 DJ정부의 재벌개혁을 등에 업고 재벌개혁특위라는 내부조직을 통해 삼성, SK, 현대중공업, LG 등 재벌그룹을 공격하면서 세를 불렸다.
이 특위를 이끈 장하성 위원장(고려대 교수)은 재벌들 사이에 ‘저승사자’라 불리며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DJ 정부 기간까지만 해도 재벌들은 참여연대를 애써 외면해왔다. 참여연대가 주장하는 지배구조 개혁에 대해 “자본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역공을 퍼부었다.
물론 참여연대도 이에 굴하지 않았다. 1998년 이후 삼성전자, SK텔레콤, 현대중공업 등 주요 대기업의 연초 주총장은 참여연대와 기업 구사대간에 치고받는 몸싸움장으로 변하기도 했다.
결국 참여연대는 ‘소액주주운동’을 전개, 기존 지배구조의 수성에 안간힘을 쏟던 재벌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나섰다. 그렇지만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은 대주주권을 앞세운 대기업들의 반격에 밀려 별로 빛을 발하진 못했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었다. 노무현 정부 출범을 전후해 참여연대는 재벌의 최대 적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재계 랭킹 3위 재벌인 SK그룹의 실제 오너인 최태원 SK(주) 회장이 전격 구속된 이후 참여연대는 완전히 주도권을 잡고 대대적 공세를 펴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반전된 것은 최 회장 구속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가게 된 결정적인 배경이 참여연대의 고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참여연대는 지난해 SK증권 투자손실 보전을 위한 SK그룹과 JP모건 사이의 이중거래 의혹에 대해 검찰에 고발했다.
이 고발건은 나중에 SK그룹에 대한 검찰의 수사로 이어졌고, 결국 SK글로벌 등 계열사의 1조원이 넘는 분식회계 혐의가 새로 드러나는 등 사건이 확대됐다.
검찰도 “참여연대의 고발내용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다른 혐의가 나왔다”고 밝혀 SK사태의 발단이 참여연대의 고발이었음을 인정했다. 상황이 이러니 재벌들은 외면했던 참여연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 지난달 말 검찰의 조사를 받기 위해 소환된 최 태원 SK(주) 회장. | ||
검찰이 SK그룹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들 고발건에 대해서도 공식 수사에 나선다면 사태는 얼마나 더 확대될지 예측할 수 없다.
특히 참여연대가 고발한 이재용 상무에 대한 사건이 검찰 수사로 이어질 경우 재계 전체가 충격 속에 빠질 수 있다. 삼성이라는 비중을 감안할 때 이 문제가 지닌 폭발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참여연대의 입장은 검찰의 수사범위를 계속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참여연대는 기자회견을 갖고 “SK그룹 수사에 국한하지 말고 삼성 등 다른 기업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참여연대의 이같은 요구에 재벌들은 초긴장 상태다. 참여연대의 주장을 외면해왔던 삼성은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과 물밑협상에 나섰다는 루머가 공공연히 돌고 있을 정도다.
현재 서울지검 특수2부에서 조사중인 것으로 전해진 이재용 상무의 삼성에버랜드건은 상황 여하에 따라 상당수 재벌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높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 이유는 이 상무의 지분확보 과정에 동원된 기법이 비록 법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이를 검찰에서 문제삼을 경우 이와 유사한 기법을 썼던 다른 대기업들도 수사의 태풍에 휘말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
LG석유화학 주식매매 등과 관련해 참여연대에 의해 고발된 LG그룹도 연일 고위 임원회의를 여는 등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울지검 남부지청에 고발장이 접수된 것으로 알려진 LG의 경우 향후 참여연대의 고발건을 피해가긴 어렵다고 보고 대응논리 개발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LG는 지난해 참여연대가 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강력히 맞서는 등 정면 충돌하기도 했다. 당시 LG는 참여연대의 주장을 일축하고, 문제가 없음을 해명해 참여연대와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현재 참여연대에는 대기업들의 내부문제와 관련해 연일 제보가 쏟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현재 대기업의 내부비리와 관련해 접수된 건수는 수십건에 이르고 있으며, 고발을 준비중인 것도 10여건”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의 또다른 관계자는 “재벌 2세들의 지분확보 과정에 투명성이 떨어지는 사안은 전문가들을 동원해 자체 조사를 벌일 예정”이라며 전의를 불태웠다. 참여연대는 SK사건 이후 한껏 고무된 표정이다.
재벌들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시민단체의 역할이 제고되고 있는 상황에서 협상테이블을 마련하는 유화정책을 써야 한다는 입장으로 바뀌고 있다. 이미 상당수 재벌들은 주총장에 참여연대 인사들을 초청해 사전, 사후 설명회를 갖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참여연대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기업의 발전을 위해 내놓는 방안은 적극 도입하는 체질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재계도 더이상 시민단체와 충돌하는 게 득이 될 것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기 시작한 셈이다. 결국 참여연대와 재벌의 전쟁은 재벌의 판정패로 결론내리는 듯한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