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강사들은 지난해 말 노조를 설립해 교육원 측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노조 설립 반년이 지나도록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일요신문’은 지난 29일 국제교육원 강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경희대학교. 사진=고성준 기자
강사 A 씨는 “우리는 임금을 시급으로 받고 있는데, 주 10시간 강의하는 사람과 주 20시간 강의하는 사람으로 나뉜다”며 “20시간 강의하는 강사는 행정업무를 꼭 해야 하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행정업무를 할 수 없으면 강의를 10시간만 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들은 강의 외에 하는 행정업무에 대해서는 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사 B 씨는 “출석관리, 상담 등 강의와 제반된 업무 뿐 아니라 장소예약, 대관, 예산관리, 홍보물 제작 등의 업무까지 하고 있다”며 “우리가 받는 시급은 4단계로 나뉘는데 3년차 이상부터는 1단계에서 2단계로 올라간다. 그런데 20시간 강의하는 강사는 10년이 지나도 2단계에서 3단계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고, 10시간 강의하는 강사는 부담이 덜해서인지 3단계로 올려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희대학교 관계자는 “성적관리 등은 강사가 해야 할 일이기에 수당이 부여되지 않지만 외부 현장학습 등의 업무에는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며 “예산관리 같은 경우에는 팀 내에서 주어진 예산을 논의하는 것이지 교육원 전체의 예산을 처리하는 건 강사들이 권한이 없어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 의견이 갈리고 있다.
뿐만 아니다. 강사들은 교재를 직접 집필하지만 출판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전체 판매부수나 인세도 정확히 모른 채 돈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교재에 참여도 하지 않은 교수도 공동저자로 등록돼 있다.
강사들은 출판계약서 뿐 아니라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못한 채 업무를 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임금, 근로시간 등이 명시된 근로계약서를 근로자에게 교부해야만 한다. 이에 대해 경희대학교 관계자는 “(일부 강사들은) 과거 계약서를 작성한 후 자동으로 갱신 중이며 작년부터 계약서에 현실을 반영해 문구를 수정하고 있는 과정”이라며 “계약서는 개인마다 상황이 달라서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사 B 씨는 “계약서는 2009~2011년 사이 입사한 약 20명 정도를 제외하곤 한 번도 쓴 적이 없다”며 “강사들의 상황이 다르다면 그 조건에 따라 세부 내용이 다른 계약서를 각각 쓸 일이지 계약서를 쓰지 않은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고 반발했다.
강사들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근로자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강사 C 씨는 “한 기관에서 1년 이상 지속적으로 강의를 배정받고 있음에도 사업소득이 아닌 기타 소득으로 잡혀 대출 등 근로자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며 “사업소득이라면 3.3%를 원천징수하지만 기타소득이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원천징수가 부과된다”고 호소했다.
참다못한 강사들은 지난해 10월 근로계약서를 요구했다. 이들에 따르면 계약서에는 갑(회사)이 시키는 모든 제반 업무를 담당하라는 등의 내용이 있었고, 국제교육원 측은 1~3일 내로 계약서에 사인하라고 압박했다. 결국 다수의 강사들은 사인을 하지 않았고, 12월 노조를 결성했다. 노조 측에 따르면 100명 이상의 강사들이 노조에 가입했다.
노조는 지난 4월 말 국제교육원 측에 의사를 전달했다. 이에 국제교육원 측은 노사협의회를 구성하자고 했지만 한 달이 지난 현재(5월 31일)까지도 노조에게 특별한 입장을 전달하지 않았다. 이에 노조는 호소문을 작성해 경희대학교 구성원들에게 알리고 있다.
노조는 호소문에서 “국제교육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약 110명의 강사들은 4대보험과 퇴직금은 커녕 근로계약서조차 없이 20년이 넘는 세월을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묵묵히 일해왔다”며 “노동인권이 무시되고 불법이 판치는 이런 기막힌 교육 현장에서 내가 이러려고 학비 대출까지 받아서 힘들게 석·박사 공부를 했나하는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이어 “시간강사도, 교원도, 직원도 아니고 정규직도, 무기계약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우리는 경희대학교의 유령”이라며 “불법, 위법적인 노예 상태를 법에라도 따지고 싶지만 우리는 근로계약서조차 없기 때문에 이것도 벽에 부딪치는 게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고용노동부는 2011년 “대학 부설 어학당 강사는 교내·외 수강생 모두를 학습대상으로 하여 정규 교육과정 외의 과목을 강의하므로 시간강사로 보기 어렵다”며 “이를 감안할 때 대학부설 어학당 강사가 2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안에서 기간제 근로자로 사용할 수 있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따라서 어학당 강사의 근로 기간이 2년 이상이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편, 올해 초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강사들은 무기계약직 전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시간강사로 볼 수 없다는 고용노동부의 해석에도 불구하고 시간강사와 같이 학기마다 계약서를 쓰면서 수업 시간을 기준으로 임금을 받아왔다.
고용노동부는 이번에도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의 시간강사는 학부(대학원)의 교육과정을 담당하지 않고 언어교육원 자체 프로그램의 강의를 담당하고 있으므로 해당 강사는 고등교육법에서 규정하는 강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고 전했다. 서울대학교는 현재 언어교육원 강사들의 무기계약직 전환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경희대학교에서는 강사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 경희대학교 관계자는 “한국어강사들이 강사인지 교직원인지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규정이 없고, (서울대학교는 유권해석을 받았다지만) 어떤 직군에서 일했는지 다를 수 있어서 대학교 별로 다시 유권해석을 해야 할 거 같다”며 “우리도 학교 내에서 강사들과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강사들은 교육원 측과 진행 중인 논의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희대 국제교육원의 한 강사는 “사실 서울대학교나 경희대학교 등은 알려진 곳이기 때문에 이렇게 공론화가 가능하지만 지방에 있는 어학원 강사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체 한국어 강사의 판이 바뀌어 인간다운 대접을 받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