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쇼핑과 이마트는 ‘잔인한 5월’을 보냈다. 5월에만 신용등급 강등과 주가 급락을 동시에 겪었다. 오랜시간 유통업계 ‘절대강자’로 자리 잡고 있던 두 회사가 체면을 크게 구길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은 올해 초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었지만, 실제 받아든 성적표는 더 초라했다는 게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난 5월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일제히 롯데쇼핑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사진=박정훈 기자
# 유통 공룡들의 추락
신용등급이 떨어진 건 롯데쇼핑이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5월 29일 롯데쇼핑 등급을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으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이보다 앞서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국신용평가는 5월 초 한기평과 같은 등급으로 낮췄다. 롯데쇼핑의 신용등급 강등은 2000년 평가를 시작한 이후로 처음이다.
신용등급 조정은 자금 조달과 사업 성과는 물론 회사 자존심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특히 롯데쇼핑의 경우 이번 신용등급 하락이 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롯데쇼핑은 롯데지주의 자산과 매출비중의 45% 내외를 차지하고 있는 롯데그룹의 ‘간판’이라 그룹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실제 NICE신용평가와 한국신용평가는 롯데쇼핑 등급을 하향 조정하면서 롯데지주 연대보증채권에 각각 AA0(안정적), AA+(부정적) 등급을 매기면서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NICE신용평가는 지주가 연대보증을 서고 있는 롯데제과와 롯데푸드 등 일부 계열사들의 회사채 등급을 무더기로 강등하기도 했다.
한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신용평가사들이 2018년 10월 롯데지주 자회사로 편입된 롯데케미칼(AA+(안정적))을 그룹의 또 다른 한 축으로 평가하면서 롯데는 그룹 전반의 신용도 하락 방어에 겨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다만 롯데쇼핑이 지주에 미치는 영향력 변화는 크지 않았던 만큼 이번 롯데지주 신용등급 평가가 적절했느냐에 대한 논란이 나오고 있다. 결국 롯데쇼핑의 신용도 하락에 따른 그룹 전반의 부담과 충격은 적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롯데쇼핑은 주가마저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24일 15만 7000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2009년 3월 10일, 16만 1000원) 이후 가장 낮은 기록이다. 6월 7일에도 15만 9000원을 기록했다. 정확히 1년 전인 지난해 6월 7일은 롯데쇼핑이 최고가(22만 9000원) 기록을 세운 날이다. 이날과 비교하면 불과 1년 사이 주가가 31% 급락한 셈이다.
이마트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5월 30일 이마트의 신용등급(AA+)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이마트의 신용등급 변화는 2011년 신세계로부터 분리된 이후 처음이다. 한국신용평가와 NICE신용평가는 신용등급을 기존대로 유지했지만, 실적 추이에 따라 신용등급 재조정 가능성을 열어뒀다. 업계에선 최근 실적과 향후 전망을 종합하면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마트의 주가도 바닥을 헤매고 있다. 지난해 4월 10일 29만 500원이었던 주가는 올해 5월 들어 10만 원 중반대로 떨어졌고, 같은달 30일에는 14만 1000원을 기록하면서 최저치를 기록했다. 6월 7일에도 14만 5500원을 기록하는 등 여전히 회복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마트 입장에서 주가 급락은 특히 충격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주식을 대거 매입했는데도 하락세 방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 4월 4일 장내 매수를 통해 이마트 주식 14만 주(약 241억 원)를 매입했다. 올해 초부터 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자 대주주 책임경영 차원에서 주식을 사들였다. 그러나 이마트 주식은 지난 4월 3일 17만 3000원, 9일 18만 1500원까지 오르다 다시 내리막에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정 부회장의 주식 가치는 4740억 원(4월 3일 기준)에서 한 달 사이 790억 원이 증발했다.
이마트는 1분기 어닝쇼크를 기록한 이후 주가가 급락했다. 사진=일요신문 DB
# 실적 회복 어렵지만 ‘기회’ 없진 않아
이 같은 롯데쇼핑과 이마트의 초라한 성적표는 실적 부진 탓이다. 롯데쇼핑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2053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2211억 원)보다 7.1% 줄었다. 같은 기간 매출은 2.6% 늘어난 4조 4468억 원으로 집계됐다. 마트부문에선 지난해 1분기보다 영업이익이 48.9% 늘어난 90억 원을 기록했다. 다만 이는 실적 개선보다는 구조조정에 따른 결과라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분석이다. 롯데쇼핑은 지난해부터 점포 폐업과 직원평가 방식 변경 등 강도 높은 내부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이마트는 올해 1분기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매출은 4조 5854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1.7%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51.6% 줄어든 743억 원에 그쳤다. 특히 영업이익은 시장 예상치 1504억 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최근 수 년 사이 마트 외에도 복합쇼핑몰과 창고형 매장, 전문점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몸집은 커졌지만 수익성은 크게 악화된 것이다.
앞서의 신용평가사들은 공통적으로 롯데쇼핑과 이마트의 실적 회복은 한동안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소비 패턴이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새로운 온라인 유통 업체들의 성장과 사업 확대 속도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이러한 추세에 반응했고, 이에 따라 신평사들이 앞서와 같은 결과들을 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온라인 채널들이 공격적으로 취급 품목을 늘리고, 가격도 낮추면서 소비자 만족도가 높아졌다”며 “매출이나 이익 규모는 여전히 오프라인 업체들이 앞서지만 최근 소비 패턴에 맞춰 경쟁하려면 결국 가격을 점점 더 낮출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임대료나 인건비, 관리비 등의 비용을 더 많이 써야하는 롯데쇼핑이나 이마트 등은 결국 적자를 피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반면 롯데쇼핑과 이마트에게도 아직 ‘기회는 남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두 업체가 온라인 대응에 한 발 늦은 모양새지만, 국내에는 미국의 아마존과 같은 ‘절대강자’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롯데쇼핑은 2017년 사드 여파로 크게 손실을 냈던 중국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이커머스 등 온라인 채널에 조 원 단위 투자를 진행 중이다”며 “이마트 역시 온라인 사업과 함께 창고형 할인점, 전문점 등 유통 채널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다만 당분간 실적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고, 자칫 대규모 투자와 몸집 불리기가 또 다시 실적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면서도 ”최근 두 업체의 시장 대응과 변화 시도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