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수 전 총리도 입각 전까지는 삼성그룹의 ‘중량급 사외이사’였다. 지난해 9월 총리 취임식 을 가지러 정부청사에 들어서는 김 전 총리. | ||
재계에서는 삼성 계열사 사외이사를 ‘막강 군단’으로 부른다. 삼성 계열사의 사외이사 명단에는 전직 총리를 비롯해 국세청장 출신, 시중은행장 출신, 유명 교수, 법조계 인사 등 내로라는 거물급 인사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정기 주총이 대부분 매듭지어지면서 다시한번 삼성 사외이사들이 관심을 끌고 있다. 2003년 삼성의 사외이사로 활동할 거물은 누구인지 알아본다.
삼성은 올 주총에서도 여타기업들을 능가하는 관·법조·학계의 거물 인사들을 대거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전문 경영인에만 머물던 ‘삼성 인재풀’이 사외이사 제도를 통해 확대되고 있는 것.
삼성그룹의 핵심이자 간판인 삼성전자는 이번 정기주총에서 김석수 전 총리의 입각으로 공석이 됐던 사외이사 자리에 대법관 출신인 정귀호 변호사(65·법무법인 바른법률)를 선임했다. 지난 93년부터 99년까지 대법관을 지낸 정 변호사는 김 전 총리와 같은 무렵 대법관을 지낸 데 이어 사회 경력까지 같게 되는 셈이다. 정 변호사 외에도 서울지방국세청장 출신의 황재성 김&장 법무법인 상임고문, 임성락 전 국은투신운용 대표이사 등이 삼성전자 사외이사에 재선임됐다.
삼성 사외이사단에서 눈에 띄는 인맥은 법조인 출신과 국세청 출신, 고위 관료 출신들. 올해 새로 영입된 인물들로 삼성물산의 서상주 전 대구지방국세청장과 안병우 전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장을 꼽을 수 있다. 삼성중공업은 박석환 전 중부지방국세청장을 사외이사로 뽑았다.
▲ 정귀호씨(왼쪽), 송정호씨 | ||
삼성 계열사 사외이사 중에는 유난히 국세청 출신 인물이 집중적으로 영입돼 있다. 지방국세청장 출신을 모두 나열하면 전국 지방국세청 몇개는 만들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정도다.
올해 삼성에 새로 영입된 국세청 인맥은 서상주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삼성물산 사외이사)과 지난 99년 국세청을 퇴직한 박석환 전 중부지방 국세청장(삼성중공업), 황재성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삼성전자). 기존 국세청 인맥은 서울지방국세청장을 거쳐 국세청 차장을 지낸 박경상씨가 지난 99년부터 삼성전기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고, 박래훈 전 대구지방국세청장도 삼성중공업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또 부산지방국세청장을 지낸 이제홍씨는 지난 98년 국세청 퇴직 뒤 현재 안건회계법인 회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삼성화재 사외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 다른 인맥은 법조 출신 인사들이다. 김석수 전 총리나 정귀호 전 대법관의 면면에서 알 수 있듯 삼성은 사외이사제를 활용해 거물급 인물도 삼성 인재풀에 등록시켰다.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법무실장과 삼성생명 법무실장을 지낸 송응순 변호사는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삼성이 대주주인 한미은행 사외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 같은 법무법인의 김두식 변호사는 삼성테크윈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서정우 변호사(법무법인 광장)는 지난 98년부터 삼성중공업 사외이사로 일하고 있다. 서 변호사의 경우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이회창 대통령 후보 법률고문을 지낸 점이 눈길을 끈다.
▲ 왼쪽부터 백원구씨, 이수휴씨, 배찬병씨 | ||
또 동력자원부 차관을 거쳐 지난 97년 5월까지 산업은행 총재로 일했던 김시형씨도 2000년 2월부터 삼성전기 사외이사로 일하고 있다.
또다른 삼성의 차관급 사외이사로는 백원구 전 재무부 차관(법무법인 세종 고문)을 들 수 있다. 지난 94년부터 96년까지 증권감독원장을 지낸 백 전 차관은 2000년 6월부터 삼성생명 사외이사로 활동하는 한편 LG증권 사외이사로도 뛰고 있다.
재무부 차관과 보험감독원장, 은행감독원장 등을 거친 이수휴씨도 지난 99년 삼성중공업 사외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법조나 관료, 국세청 출신만큼 많은 것은 아니지만 금융계 출신의 사외이사도 삼성 사외이사진에 간간이 눈에 띈다. 배찬병 생명보험협회장은 상업은행장을 지냈다. 그는 지난 99년부터 삼성증권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또 산업은행에서 검사부장을 지내다 퇴임한 변중석 하나회계법인 고문도 지난 2001년부터 삼성증권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삼성 사외이사진의 면면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법무법인들의 고문단과 비교해도 처지지 않는다. 국내 대형 로펌들은 업무 진행과 경험 활용이라는 이유로 고위직 법조인은 물론 고위직 관료 출신과 정치인들을 고문이라는 직책으로 집중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이런 삼성식 사외이사제 활용에 대해 일각에선 사외이사제 도입이 사회적인 이슈로 등장하자 이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삼성의 ‘인재풀’을 넓히는 데 활용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삼성 사외이사의 특징은 다른 재벌과 달리 엄격한 자사 기준에 의해 영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SK그룹 등 다른 재벌들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는 것과는 다르다는 얘기.
실제로 지난 99년 사외이사제를 도입한 삼성전자는 당시 참여연대가 선임한 장하성 고대교수의 사외이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 김석수 전 대법관 등 회사에서 선임한 인물을 앉혔다. 반면 비슷한 요구를 받은 SK텔레콤은 참여연대가 제안한 남상구 고려대 교수를 사외이사로 받아들였다. 결국 삼성은 삼성식으로 사외이사제를 받아들인 것.
어쨌든 지난 99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사외이사제는 삼성의 인재풀로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월급 이상의 활약을 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