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보수적인 경영을 해왔던 롯데는 올 초부터 기존 사업에 위생용 섬유제품 제조와 판매, 인삼제품 판매 등을 추가시키고, 공장 생산라인을 증설하는 등 공격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롯데의 변화를 두고 ‘보수의 옷을 벗는다’는 표현을 썼을 정도다. 이런 와중에 오너 1세대와 2세대 간의 지분 이동이 빠르게 이뤄지자 업계에서는 그 배경에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 신격호 롯데 회장(오른쪽)이 처분한 주식을 신동빈 부회장 (왼쪽) 등 자녀들이 모두 인수해 2세 경영의 막이 올랐음을 시사했다. | ||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신 회장은 지난 3월26일 롯데제과 주식 7천 주, 27일 6천 주, 28일 4천 주 등 3일 동안 총 1만7천 주를 장내 거래를 통해 팔아치웠다. 이는 신 회장이 보유중인 롯데제과의 전체 지분 14.38%(20만4천4백19주) 중 1.2%에 달하는 물량이다.
그런데 장내 거래를 통해 팔아치운 이 주식은 고스란히 세 자녀에게 넘어갔다. 정확히 말하면 신 회장이 처분한 주식만큼 두 아들과 딸이 사들인 것.
거래내역을 구체적으로 보면 신동빈 부회장은 신 회장이 처음 7천 주를 판 지난달 26일 3천 주를 사들인 데 이어, 이날 신동주 부사장과 신영자 롯데백화점 부사장이 각각 2천 주씩을 매입했다. 신 회장이 매도한 7천 주를 동빈, 동주, 영자씨가 그대로 매입했다는 얘기.
이런 거래는 다음날인 3월27일에도 이어졌다. 이날 신 회장은 6천 주를 다시 매도했으며, 같은날 신동빈 부회장은 2천6백 주를, 신동주 부사장과 신영자 부사장이 각각 1천7백 주를 사들여 균형을 맞췄다.
사흘째인 지난달 28일 역시 신 회장은 4천 주를 다시 시장에 내놓았고, 이를 신동빈 부회장이 1천7백 주를, 신동주-신영자 부사장이 똑같이 1천1백50주씩 매입했다.
공교롭게도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사흘 동안 이뤄진 거래에서 신 회장이 팔아치운 1만7천 주가 고스란히 동주, 동빈, 영자씨 세 사람에게 넘어간 것이다. 이 거래 결과 신 부회장의 롯데제과 보유 지분은 기존 4.37%에서 4.88%로 늘어났고, 신동주 부사장의 지분은 3.14%에서 3.48%로, 신영자 부사장은 2.32%에서 2.52%로 각각 늘어났다.
이 같은 거래 사실이 드러나자 일각에서는 본격적인 경영권 이양을 위한 준비작업이 아니냐는 시각을 던지고 있다. 그동안 보유지분에 대한 처분실적이 거의 없던 신 회장이 갑작스레 지분을 줄였기 때문에 제기된 당연한 해석이었다.
물론 이에 대해 롯데측은 ‘확대해석’은 말아달라는 분위기. 최형 롯데그룹 이사는 “롯데제과의 거래량이 적어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위험이 있어 거래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거래량을 늘리기 위해 신 회장이 주식을 자녀들에게 나눠준 것뿐 경영권 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거래량을 늘리기 위해 자녀들에게 주식을 나누어준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주식을 나누어 준다는 것’은 증여행위이고, 증여행위라면 증여세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장내거래를 통해 주식을 매매할 경우 1%에 불과한 증권거래세만 물면 된다.
만약 이번 거래가 경영권 이양을 위한 지분이동을 목적으로 했을 경우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 장내매매 형식을 빌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 이 기간의 거래내역을 보아도 신 회장이 내놓은 물량과 자녀들이 사들인 물량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에서 의혹을 낳고 있다.
그러나 롯데측의 말처럼 거래량 부족으로 인한 관리종목 편입을 피하기 위한 거래일 수도 있다. 실제 롯데제과의 기존 거래량을 보면 이 같은 설명은 일리가 있다.
증권거래소는 지난 2월 ‘롯데제과가 거래량 요건에 미달돼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수 있다’며 한 차례 경고조치를 내렸다. 거래소 유가증권 상장규정에 따르면 ‘거래소를 통해 거래된 상장주식의 월평균거래량이 상장주식수의 1백 분의 2를 미달할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제18조)’고 돼 있다.
지난해 12월을 기준으로 롯데제과의 총 발행주식수는 1백42만1천4백 주. 한 달 동안 최소한 2만8천4백28주가 거래돼야 한다는 말이다. 얼핏 보면 거래소에 상장된 주식 중 한 달에 2만8천여 건의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기업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롯데제과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백운목 대우증권 차장은 “롯데제과의 경우는 자본금이 71억원대에 불과한 데다, 대주주와 외국인 지분이 높아 시장유동성이 지극히 낮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1∼2월에는 월 평균 거래량이 2% 미만이어서 ‘투자유의’ 지정을 받은 것.
이런 이유로 미뤄보자면 신격호 회장이 지분을 팔고, 신동빈 부회장과 신동주 일본롯데 부사장이 지분을 인수한 이유는 거래소에서 롯데제과 거래량을 늘리기 위해서였다는 얘기가 타당하다. 실제로 지난달 26일 신 회장과 2세들간의 거래가 이뤄지기 전까지 롯데제과의 월 평균 거래량은 최소치인 2만8천여 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번 지분이동이 단순히 거래소의 ‘투자유의 조치’ 때문만은 아니라는 지적. 증권거래소 상장공시부 관계자 역시 “월 평균 거래량을 문제로 투자유의를 지정 받은 기업은 남양유업 등 30여 군데나 된다”며 “실제적으로는 별 효력이 없다”고 말했다.
때문에 업계의 시각은 2세들로의 경영 이양작업이 본격화되는 신호가 아니겠냐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부터 롯데가 부쩍 사업영역을 확대하면서 흘러나왔던 얘기다. 롯데측은 이에 대해 “경영권 이양 등의 상황은 절대 아니다”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신 회장이 주식을 2세들에게 판 점에 대해 세간에 떠돌던 경영권 승계 쪽으로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백운목 대우증권 차장은 “롯데제과의 지분 변동은 2세 경영이 시작됐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황찬 SK증권 차장도 “다른 기업들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티를 안내면서 2세 체제로 가기 위한 수순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보통 주가가 낮을 때 거래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번의 지분 변동을 그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