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듈형 매트리스를 체결하는 임 씨
임 씨의 첫 미션은 따뜻한 침대 만들기였다. 임 씨는 겨울만 되면 침대 속 냉기가 너무나도 싫었다. 그래서 나온 게 경동나비엔과 공동 개발한 온수 매트리스였다.
시장에는 당시 온수 매트나 전기장판이란 대안이 있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면 집 한구석을 큼지막하게 차지하기 마련이다. 온수 매트가 매트리스에 삽입됐다. 매트리스는 뒤집으면 다른 계절에도 쓸 수 있도록 제작됐다.
불편은 쉬 가시지 않았다. 온수 매트리스는 매트리스와 보일러가 따로 분리돼 있어서 계절이 바뀔 때면 보일러를 따로 떼어 어딘가에 보관해야 했다. 기존 온수 매트나 전기장판에 비해 공간을 덜 차지했지만 이것조차 임 씨는 불편했다.
온열 매트리스 온도를 측정하는 임 씨
분리해서 어디에 보관할 게 없어진 셈이었다. 뒤집으면 인견이라 여름에도 사용 가능하다. 패드에 연결된 전선만 뽑으면 세탁기에도 돌릴 수 있도록 제작됐다.
온열 패드 출시는 침대 시장의 혁명이었다. 발열실을 넣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짜 혁명은 ‘모듈형 매트리스’의 탄생이었다. 모듈형 매트리스란 스프링과 그 위에 매트리스용 요 ‘토퍼’, 토퍼 위의 패드를 각기 분리, 합체가 가능한 매트리스를 말한다.
이전까지 매트리스는 스프링과 덮개뿐이었다. 그러다 푹신한 느낌을 원하는 수요가 늘자 시장은 토퍼를 내놨다. 문제는 토퍼가 늘 수면 과정에서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시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 매트리스와 토퍼를 결합한 토퍼 일체형 매트리스를 탄생시켰다.
토퍼 일체형 매트리스는 완벽한 대안이 아니었다. 임 씨는 고객 집을 수십 곳 방문하며 불편을 접수했다. 특히 침대가 버려지는 순간에 주목했다.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 스타일(쓰레기 줄이기)을 고수하는 임 씨의 성향도 한몫 했다.
임 씨는 깨달았다. 고객 대다수는 더러워진 매트리스 윗면이나 분리가 불가능한 토퍼 때문에 매트리스를 버리고 있었다. 자녀나 반려 동물이 남긴 오줌 자국 등의 오염을 버티다 토퍼가 꺼지면 매트리스를 통째로 버렸다. 임 씨는 거리에 버려진 매트리스도 수도 없이 만져봤다. 모두 스프링은 온전했다. 모듈형 매트리스는 이런 고민 끝에 탄생했다.
사실 기초적인 형태의 모듈형 매트리스는 몇몇 브랜드에서 이미 생산되고 있었다. 하지만 토퍼에 패드까지 분리, 합체할 수 있는 매트리스는 없었다. 게다가 접합 방식은 대부분 불편한 단추형이었다. 임 씨의 활약 덕에 나온 모듈형 매트리스에는 토퍼뿐만 아니라 패드도 교체 가능하며 지퍼까지 달렸다. 더 편한 매트리스를 더 오래 편히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강아지와 알러지 케어 패드를 시험하는 임 씨
반려동물이 긁어도 손상이 적은 매트리스 파운데이션 개발에 골몰하는 임 씨
그래서 탄생한 게 알러지 케어 패드였다. 알러지 케어 패드는 반려동물의 털이나 먼지가 매트리스 안으로 스며들 수 없도록 얇은 실로 촘촘히 짜였다. 진드기의 생존을 틀어막은 셈이었다.
요즘 임 씨는 ‘반려동물 방탄 매트리스’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한 선배의 “고양이 발톱 공격에 하단 매트리스 옆 부분이 남아나질 않는다”는 불만을 접수한 까닭이다. 하단 매트리스는 최근 유행인 매트리스 위에 매트리스를 올리는 호텔식 침대의 하부를 가리킨다.
하단 매트리스 옆면은 굵은 실로 직조된 원단으로 마감돼 있는 게 대부분이다. 굵은 실 사이 공간은 고양이나 개가 발톱으로 긁기 딱 좋은 공간이다. 그는 요즘 고양이나 개의 발톱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17년쯤부터 에이스 침대와 시몬스가 양강 구도를 형성해 온 침대 시장이 분열되기 시작했다. 2017년 에이스 침대의 침대 부문 매출은 1863억 원이었는데 한샘은 1500억 원을 넘어섰다. 2011년 침대 부문 매출이 250억 원에 불과했던 한샘은 2015년 900억 원, 2016년 1400억 원을 넘겼다.
그 중심에는 매트리스팀과 임 씨가 있다. 임 씨는 “나의 불편함을 같이 공감해주고 사용자를 위한 해결책을 같이 고민해 준 팀 동료들 덕에 불편이 불만에 그치지 않을 수 있었다. 생활 속에서 느끼는 불편에 집중하는 게 상품기획자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불편함에 무뎌지지 않는 MD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