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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판매량은 지난 2월까지만 해도 상승세를 이어가다가 이달 들어 일부 차종의 재고가 쌓이는 등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에쿠스 그랜저XG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하루 만에 출고가 이뤄질 정도로 재고가 늘고 있다는 것. 이를 반영하듯 1년 전인 지난해 4월24일 장중 5만4천2백원까지 올라갔던 현대차의 주가가 최근 2만3천원대로 꺾였다.
최근 메리츠증권 이영민 연구원은 현대차의 목표 주가를 4만원에서 3만8천원으로 낮췄다. 계열사인 현대카드의 올해 적자가 1천2백76억원으로 예상돼 주당 4.9%의 순익이 줄어들 것으로 판단, 목표주가를 낮췄다는 것.
이런 비관적인 전망은 주가에만 그치지 않는다.
국내 자동차 재고 수준은 7만8천 대 수준이라는 게 증권가의 추정이다. IMF 때 10만 대에 육박했던 것에 비하면 아직 최악의 상황은 아니지만 업계에 비상신호등이 켜진 것은 분명하다.
이중 현대차의 재고 비중은 4만 대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현대차가 최근 들어 내수 판매에 현금할인 등 다양한 판촉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
현대차는 지난 3월21일부터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비상대책반’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불요불급한 비용을 제외하고는 지출을 동결하고, 핵심임원들이 직접 현장경영에 나서는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
김동진 사장과 정순원 사장 등 현대차 각 부문의 경영진 7명이 매일 아침 7시에 대책회의를 열고 국내외 판매동향과 유가 환율 이라크전 괴질 등 국내외 영업 변수에 종합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 정몽구 회장 | ||
국내 시장이 불경기로 판매 감소가 완연한 상황에서 해외 수출은 현대차의 마지막 비상구이기 때문. 현대차는 내수부문에서 지난 1분기 실적이 예상보다는 선방이라는 게 대체적인 증권가의 평이다. 3월만 놓고 따져도 6만2천여 대를 판매해 지난해 동월 대비 5.18%의 감소에 그쳤다. 반면 미국 시장의 판매 실적은 지난 3월 전월 대비 20%나 증가하고 지난해 동월대비 무려 68%가 늘어나는 성장세를 보였다.
삼성증권의 김학주 연구원은 “현대차의 최근 미국 내 판매 내용이 좋고 시장점유율이 사상 처음으로 2.6%가 넘어서는 등 해외 판매가 좋아지고 있어 내수 부진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현대차는 올해 국내 시장 여건이 불리하기만 하다. 불경기가 예상보다 길고 심해지면서 자동차 신규 수요도 특소세 붐이 일었던 지난해와 비교할 수 없는 상황.
현대차로선 할인 혜택 등 제살깎아먹기식 판촉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 아직 다른 국내 차판매업체와는 달리 무이자할부판매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인 셈이다. 때문에 현대차로선 해외시장 판매에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현대차를 괴롭히는 또 하나의 악재는 ‘카드빚’이다. 현대차가 금융사업을 염두에 두고 야심차게 인수했던 현대카드가 단물도 맛보기 전에 휘청거리고 있는 것.
지난달 말 현대자동차는 현대카드의 1천8백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5백40억원을 냈다. 애초 현대차의 증자참여 예상액은 4백50억원이었지만 자산관리공사가 증자 참여를 포기해 현대차의 부담이 더 늘었다. 현대카드는 앞으로 2천8백억원 정도의 유상증자를 더 할 예정이어서 현대차의 부담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대카드 문제는 현대차 주가하락에 직격탄을 쏜 격이 됐다. 최근 들어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현대카드에 대한 부담 때문에 현대차의 목표주가를 4만원대에서 3만7천~3만8천원대로 낮췄다. 자동차 판매에 쏠려 있는 현대차그룹의 현금수입원을 더욱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 시작한 금융사업이 되레 현대차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셈.
현대차는 자사에서 마케팅 영업을 담당했던 임원을 현대카드로 발령내는 등 현대카드 경영정상화에 온힘을 쏟고 있지만 올해 적자 예상액은 이미 1천억원대를 넘어서고 있는 등 당분간 고전을 면키 어렵게 됐다.
물론 현대차의 경영 환경이 온통 적신호로만 둘러 싸인 것은 아니다. 미국 GM이 60개월 무이자 할부판매를 선언하고 나선 이후에도 추가적인 마케팅 비용이나 판매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미국 내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어 수익성에 대한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 또 미국 내 판매에 큰 영향력을 지닌 <컨슈머 리포트>에서 산타페나 그랜저XG에 대한 평가를 미국내 판매차량 가운데서도 톱클래스로 분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수 부진과 이라크전이 장기화됐을 때 미국시장과 유럽시장이 지금까지와 같이 현대차의 숨통이 돼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현대차의 경우 2세 경영자인 정의선 부사장에게 현대차 지분을 넘겨주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국내외, 사내외에 난제가 산적해 있는 것.
양재동 경부고속도로 나들목 입구에 서있는 현대차 본사 상단부에 켜져 있던 현대·기아차 로고는 밤에 서울로 들어오는 랜드마크 구실을 했다. 하지만 요즘은 밤 12시가 넘으면 꺼진다. 비상경영 체제로 들어간 현대차가 네온사인을 끄고 있는 것.
현대차가 본사 사옥의 파란 네온사인을 다시 켜게 될 날이 얼마나 앞당겨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