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선 현대백화점 부회장 | ||
증권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31일 기준으로 현대백화점의 지분은 오너인 정몽근 회장이 전체의 23.48%(1백30만1천2백64주), (주)현대쇼핑 9.19%(50만9천48주), 아들 정지선 부회장이 1.25%(6만9천1백68주)를 각각 보유했다.
그러나 불과 석달 뒤인 지난 3월 정 부회장의 지분은 6.22%로 무려 4.97%가 늘어났다. 반면 그의 부친인 정몽근 회장은 23.98%에서 19.01%로 4.47%가 줄었다.
정지선 부회장의 지분 변동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난 2월11일 4천1백60주, 2월13일 2천2백80주, 14일 10만4천2백90주 등 총 11만7백30주를 3일 동안 장내에서 매입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정 부회장의 장내 매수 주당 매입가격은 각각 2만4백∼2만6백원대. 주식 매입을 위해 그가 투입한 돈은 모두 22억6천만원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 부회장은 이와 함께 지난 2월부터 3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부친 정몽근 회장으로부터 주식을 증여받았다. 지난 2월21일 67만 주, 2월24일 10만 주를 증여받은 데 이어 한 달 뒤인 지난달 3월24일 다시 22만 주를 추가로 증여를 받았다. 증여받은 주식수는 99만 주.
이에 따라 정 부회장의 지분은 당초의 1.25%에서 4.97%가 늘어나 6.22%가 됐고, 부친 정몽근 회장에 이어 이 회사의 2대 주주로 성큼 올라섰다.
이처럼 정 부회장의 지분이 단시간 내에 급격히 늘어나자 업계는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 재벌가의 재산이양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하면서 대다수 재벌들이 자식에게 오너십을 넘기는 것을 조심스러워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감하게’ 증여에 나선 현대백화점의 행동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앞서 현대백화점은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지난해 12월 지선씨를 ‘부사장’에서 일약 두 단계나 뛰어넘어 ‘부회장’으로 초고속 승진시키는 강공을 펴기도 했다.
정 부회장의 고속승진 사건은 당시 재벌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는 촉발제가 되면서 삼성·현대자동차 등 다른 재벌들의 2세 승진인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 현대백화점 정지선 부회장이 지난해 말 초고속 승진에 이어 올 초에는 백화점 지분을 대거 매입하고 증여받으면서 2대 주주로 떠올라 확실한 ‘3세체제’ 구축에 들어섰다. | ||
특이한 점은 정 부회장의 경우 장내매수와 증여라는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택했다는 점. 이런 혼합식 방법을 택한 것에 대해 증권가에서는 장내 매입 비용으로 22억원을 투입한 것이 자칫 자금출처 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있어 ‘증여’라는 방법도 끼워넣기한 게 아니냐는 분석.
특히 지분 확보 시점을 지난 2월을 전후해 잡은 것도 주가 하락기라는 시기를 고려, 증여세 등 절세를 위한 적기로 판단해 주식 매입과 증여에 나선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에 대해 현대백화점측은 “정 부회장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지분 늘리기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정 부회장은 지난해 말 부회장에 오른 이후 일주일에 3개 경영회의를 주재하는 등 본격적인 경영권 이양을 위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정 부회장은 현재 백화점 내부 경영기획회의, 현대백화점 계열사 회의, 통합회의 등 주요 경영회의를 주재하는 등 경영자 수업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백화점의 정식 출근시간은 오전 8시30분이지만 정 부회장은 이보다 30분 이른 오전 8시에 회의를 주재하는 등 사업에 열의를 보여 임원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의 또다른 관계자는 이번에 이뤄진 정 부회장의 지분 확보는 “초고속 승진에 이은 초고속 경영권 확보”라고 평가하며 새 정부의 정책에 대해 상당히 부담스러워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최근 참여연대 등 국내 재벌기업에 대해 견제하는 시각들이 많아지면서 회사의 경영권을 승계하는 방법과 관련해 여간 눈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정 부회장이 올 들어 지분을 크게 늘리고 있는 현대백화점은 온·오프라인 백화점 운영을 전담하기 위해 지난해 출범한 신설법인. 기존의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11월 기업분할을 실시해 현대호텔 등 부동산 운영업체인 (주)현대백화점H&S와 백화점 운영업체인 현대백화점으로 쪼개졌다.
정 부회장의 경우 현대백화점에 대해서는 적극 지분을 늘리고 있는 반면 현대백화점H&S에 대해서는 전혀 지분을 늘리고 있지 않아 여러 가지 해석을 낳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현대백화점이 주력기업인 데다, 현대백화점H&S의 경우 정 부회장의 동생인 교선씨(현재 유학중)의 몫이기 때문일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해 11월 현대백화점이 기업분할을 공시했을 당시에도 오너 2세 형제의 재산분할을 위한 사전정지작업이라는 분석이 오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