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전선이 1천억대의 금전거래를 하면서 증시 공시를 안한 것으로 드러나 증권거래소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 공시가 투자자들의 눈길을 끈 이유는 대한전선이 무슨 연유로 그 같은 조치를 받게 됐느냐는 점. 이 회사는 재계에서 전통 재벌로 분류되는 데다, 기업 특성상 금융 부문에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거의 없는 기업으로 인식돼온 때문.
뜻밖에도 이 회사가 거래정지라는 중징계 조치를 받은 이유는 ‘증권거래법 상 타인에게 금전을 대여한 사실을 공시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증권거래소는 이와 함께 “한 번 더 위반할 경우는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는 경고도 내렸다.
도대체 어떤 금전거래이기에 이런 중징계를 받은 것일까. 또 전선을 만드는 전통산업 기업이 무슨 금전거래를 한 것일까.
문제의 거래는 지난해 6월 대한전선이 한미은행과 1천3백억원의 특정금전신탁계약을 맺고, 이 돈을 (주)지포럼에이엠씨라는 회사에 지정 대출토록 한 것. 특정금전신탁은 돈을 맡긴 사람이 특정인을 지정해 대출토록 하는 금융상품이다. 대한전선은 이 사실을 공시하지 않았다.
증권거래소는 “회사 자본금(2002년 12월31일 기준 8백억원)보다 훨씬 많은 금액인 1천3백억원을 타인에게 빌려준 사실은 일반 투자자의 투자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내용임에도 이를 공시하지 않은 사실은 법에 저촉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한전선은 왜 이 사실을 공시하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대한전선은 “할 말이 없다”며 입을 다물고 있지만, 증권가에서는 최근 몇 년간 대한전선에서 일어난 일련의 자금운용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의하면 대한전선은 지난 99년부터 올해까지 열 차례에 걸쳐 회사채를 발행했다. 지난 99년 3월 3백70억원, 2001년 4월 3백억원, 그해 8월 6백억원, 지난해 2월에 8백억원, 3월 2백억원, 올 들어 지난 3월 1천억원을 발행했다. 대한전선은 사채 발행 용도에 대해 ‘운영자금과 차환용’이라고 공시했다.
이렇다보니 업계에서는 대한전선이 ‘본업’인 전선, 케이블 사업보다는 ‘부업’인 자금운용에 치중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하고 있다.
업계가 이 같은 비판을 하는 것은 대출조건 때문. 사채 발행 이자가 최대 7%선임에도 대한전선이 빌려준 돈에 대한 이자는 무려 25%선에 이르니 당연히 시비거리가 될 만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대한전선측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 김성구 대한전선 홍보실 상무는 “판단을 잘해서 자금을 운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회사채를 싸게 발행해 비싼 이자로 돈을 굴린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며 반박했다.
또 그는 “단기자금과 장기자금의 금리 차이가 있어 이를 이용해 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것이다. 은행 등이 소매업을 위주로 방향을 바꾼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물론 현재 대한전선이 회사채를 발행하는 데 있어서 법적 문제는 없다. 현행 증권거래법 상 회사채의 발행 기준은 자본금 5억원 이상, 발행 액면총액이 3억원 이상, 발행 후 경과수가 1년을 넘지 않을 것 등이다. 대한전선의 경우 자본금이 8백억원이고, 발행 총액이 각각 1천억원, 발행일에 상장한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기업의 경영메커니즘이 생산, 제조, 영업활동에 기반을 둔 것이냐, 아니면 자본 운용을 중점으로 두느냐하는 부분에 있다. 대한전선은 경영활동을 통한 이익창출보다는 금융기관처럼 돈놀이에 더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인 것.
더욱이 이 회사는 1천4백여억원을 들여 무주리조트를 인수한 여파로 추가 투자문제가 불거지면서 금융가에서는 단기 유동성 부담에 대한 우려를 받기도 했다. 증권 관계자는 “대한전선의 경우 자본조달의 적절성에 관해 의구심을 나타내는 투자자들이 많다”고 말했다.